시. 산문. 편지글.

우리 사회의 막말 수준, 정화하여야 한다.

碧 珍(日德 靑竹) 2022. 6. 18. 15:11

 

우리 사회의 막말 수준, 정화하여야 한다.

 

우리 사람의 말이나 행동은 남을 돕고 지켜주기 위하는 뜻에서 나오는 것과 남을 해롭게 하여 밀쳐 내기 위한 나쁜 저의에서 나오는 것, 즉 크게 나누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즉 ‘사랑이 담기 말 한마디는 한 겨울 두터운 솜옷보다 따뜻하다’ 는 말이 있듯이, 이 속담은 말의 순기능(順機能)을 표현하는 것이고, 중상모략이나 독설은 말의 역기능(逆機能)을 나타내는 말이다.

 

근래 들어 TV 방송뿐만 아니라 토론. 집회. 인터넷 광장에 등장하는 말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이 듣고 볼까 걱정스러운 저급한 말로 표현하는 것이 두려울 때가 빈번하게 느끼고 볼 수 있지만, 세련되고 멋있고 풍자나 위트와 절제 있는 비판 같은 高품격 언어를 기대하는 것조차 할 수 없는게 오늘날우리 사회의 현 주소이다.

 

다만 우리말인 한국어와 한국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 예의는 있어야 하는데 최근 이것마저 실종되고 있기에. 더욱이 일부의 일탈이 아니고 대체적으로 전반적 풍토로 비화되는 모양새마저 보여 주기에 참으로 우려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TV와 라디오 및 신문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여야(與野) 국회의원들의 언동(言動)이나 drama속 대화와나 interview 등은 역기능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많아 국민들에게,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해로움을 많이 주기에 사회적 큰 문제인 것이다.

 

지나간 어느 날 신문과 TV에서 내 눈을 의심할 만한 기사를 읽고 보고 어떻게하여 우리 사회가 이렇게도 중병을 앓는 사회가 되었는가 하고 한동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든 일이 있다.

 

신문지상에 자주 보도 되어온 광고주 협박사건을 재판하였던 판사가 오죽이나 하였으면, 광고주 협박 세력들의 욕설과 저주가 市民運動이냐고 하였겠으며, 또한 아무리 인기가 떨어진다 하여도 국가원수인 대통령에 대하여 한 욕설은 우리 사회가 썩고 병들은 모습의 한 단면을 보여 주기에 암담한 마음이었다.

 

즉 어느 만화가는 원주시 홍보지에 ‘李명박 XX놈, 이명박 개○○’ 라는 문구를 교묘히 숨겨놓았는 것을 읽어 보고, 이 만화가도 대한민국 국민인가 하고 생각하게 하였으며, 또 盧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차려진 大韓門 인근엔 ‘학살정권 독재정권 살인마 ○○○은 물러가라’ 는 검정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남의 생명 문제를 거리낌 없이 언급하는 것도 큰 문제로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以言傷人者,(이언상인자)   /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利於刀斧. (이어도부)         /   칼이나 도끼보다 날카롭고.

    以術害人者,(이술해인자)   /  술수로 남을 해치는 것은

    毒於虎狼. (독어호랑)         /   호랑이나 승냥이보다 사납다.

 

라고 쓴 중국 송나라 임포(林逋)의 성심록(省心錄)이 마음에 와 닿는다.

 

문제는 언제인가부터 자신과 생각과 행위가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하여, 자신의 이기와 아집으로 남에게 함부로 듣기 민망할 정도의 욕설과 남의 의사에 상관하지 않고 협박을 자행하는 사회 공동체는 중병을 앓는 병든 사회라 하겠다.

 

특히 몇몇 사람이나 단체가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지키려고 한다면, 그런 사회 공동체는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나쁜 균이나 독소의 서식지가 될 것이 자명하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원칙의 하나가 자기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는 것도 원칙의 하나이기 때문에, 요즘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 입으로는 民主와 人權을 달고 다니면서도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에 대하여는 형언하기 어려운 언어폭력을 가하는 일부 개인이나 세력의 행태는 東方禮義之國이란 말이 부끄러울 정도니 개탄스러운 사회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인성교육의 부재를 부추기는 입시교육에 빼앗긴 예절교육이나 제동 장치가 부실한 인터넷 공간과 시청률에 정신을 빼앗긴 막장 드라마에다가,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우리나라 정치판 등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말의 수준이 사회의 수준이다’ 고 생각한 번 해보자, 즉 말의 수준이 사회의 수준이란 것은 비판은 모양새가 건전하여야만 치유력을 갖는 것이기에, 그러기에 자극과 자극이 막 부닥치면 더 심한 자극으로 되는 것이므로 그러면 논지(論旨)는 사라지고 갈등의 골만 심화하게 되는 것이다.즉 언어의 건전한 치유력이 사라지면 공동체의 병만 깊어지고 피해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될 뿐인 것이다.

 

또한편으로 우리 사회에서 화이트칼라 노조 등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종교단체들은 자기들이 사회적 약자인 것처럼 행세하여 왔지만, 사실상은 집단시위나 파업이라는 거대한 물리력을 갖고 국가나 기업과 전체 사회를 몰아붙여 자기 이익을 관철하는 특권 이익집단화 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걸핏하면 정부나 기업 상대로 파업 등 집단행동이나 공권력에 전쟁을 방불케 하는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로 가지 못하고 엇길로 가다보니 사회 저변부터 병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는 원인 분석이나 자유 치유에만 의존하거나 매달릴 때가 아니고, 우리 선조들이 중이 여겨 듣든 東方禮義之國의 품위 있는 말과 행동을 위하여 정부와 온 국민이 대오각성하고 대대적인 국민운동을 벌여야 할 때라고 생각 하고프다. 우리 사회의 막말 수준이 이제 도를 넘어 위험수위까지도 넘어섰다고 생각하기에, 그래도 안 된다면 강력한 공권력을 적절히 구사하여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일 인 것 아닌가?.

 

생각하기에 신문과 방송 및 TV는 사회의 公器이다, 사실을 보도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봉사를 해야 하는데, 社是社益 에만 집착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한다거나, 편파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국가 사회 발전을 위하여 이제 도를 넘어 위험 수준에 와있는 막말 쓰는 수준을 정화하는데 앞장을 설 의무가 있다고 보기에, 국가나 사회보다 앞장을 서서 막말 정화운동에 기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