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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답하라 21세기가 묻나니.

碧 珍(日德 靑竹) 2008. 12. 1. 06:27

    20세기는 답하라 21세기가 묻나니.

    한배호 교수, 한국 현대史에 10가지 질문 던지다

     

     


    유석재 기자

    학자들은 최근의 현대사일수록 좀처럼 평가를 내리지 않으려 한다. '후세 사가(史家)에게 맡긴다'는 말도 그래서 유행했다. 원로 정치학자 한배호(韓培浩·77) 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새 연구서 《자유를 향한 20세기 한국정치사》(일조각)는 전혀 다르다. 어느 한 대목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그는 한국 현대정치사에 '10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놓았다.


    ① 식민 통치는 무엇을 남겼는가?

    일제의 식민 지배는 우리에게 폭력적인 권위주의와 상하 위계적인 관료주의의 폐해를 남겼다. 일제의 근대화 개발은 조선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조선인의 분열을 획책한 일제의 통치 방식은 반목과 불신의 유산을 남겼으며, 이미 극심한 이념 대립의 씨를 뿌렸다.

    ② 38선은 왜 갈렸는가?

    일본의 패망으로 극동 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겨나자, 이를 채우기 위한 미·소 사이의 각축 속에서 하나의 타협으로 38선이 그어졌다. 그것은 루스벨트와 미국 정부의 조선에 대한 무관심, 안이한 대소(對蘇) 정책의 산물이었다. 반면 스탈린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었다.

    ③ 해방정국, 무엇을 얻고 잃었는가?

    해방 직후의 정국은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을 낳았다. 그러나 이승만이 미·소의 대립 속에서 가장 실현성이 높다고 본 '남한 단독정부안'을 추구해 성공했다는 점은 평가받아야 한다.

    ④ 6·25 전쟁은 왜 일어났나?

    최근 공개된 소련·중국측의 자료는 '김일성이 계획하고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얻어 남침을 감행한 전쟁'이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것은 무력에 의한 '침략 전쟁'이었고,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은 한반도를 공산화해 아시아에서의 전략적 지위를 확보하려 했다.

    ⑤ 4·19는 누가 왜 일으켰나?

    고등교육에 의해 형성된 학생들의 도덕적 기준이 위정자들의 정치 행위와 너무 거리가 멀었고, 교육과 신분의 불일치에서 생겨나는 좌절감도 커졌다. 여기서 의분을 느낀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배후세력이 선동하거나 새로운 지배체제로 바꾸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⑥ 5·16은 왜 일어났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장교 집단의 불만이 팽배한 반면, 장면 정부는 부패한 상급 장교를 숙청하려는 군부 내의 정군(整軍)운동을 반대했다. 여기에 정치·사회적 혼란이라는 외부적 자극이 생겨 5·16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후 3공화국 정부는 경제 근대화를 위해 국가의 자원과 능력을 동원하려는 '개발주의 국가'의 모습을 띠게 됐다.

    ⑦ 박정희 개발주의 국가가 이룩한 것은?
    ▲ 1961년 5·16 당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당시 육군 소장). /조선일보DB

    박정희 정부는 단기간에 획기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냈지만,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억제한 채 이뤄진 경제개발이었다. 또한 무엇을 위한 경제개발인가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보여주지 못했고, 더 자유롭고 개방된 정치 질서의 창출에는 실패했다.

    ⑧ 유신체제는 왜 붕괴했나?

    유신체제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양쪽에 모두 해당되지 않았던 권위주의 체제였고, 그 때문에 확고한 정당성이나 이념을 갖추지 못했다. 여기에 지식인층이 등을 돌리고 지배 연합 세력이 내분을 일으킨 결과 체제 말기에는 권력의 동맥경화증이 나타났다.

    ⑨ 한국의 민주화는 어떻게 달성됐나?

    민주화는 1980년대 말에 정치 세력들이 협상을 통해 도달한 전략적 선택이었으나, 그동안 한국 사회가 겪은 '근대화' 과정이 한국의 사회구조를 바꿔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산업화와 통신·교통의 발달, 중산층의 성장이 민주화의 요인들이었다.

    ⑩ 21세기 한국정치의 과제는?

    ▲확고한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한 책임정치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는 정부 형태의 확정 ▲자율성을 지닌 시민사회의 형성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대한 대응 등이다. 이를 위해선 국민이 적절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지도층을 배출해야 한다.

     

    한배호 교수는
    미 프린스턴대 정치학 박사다. 중앙대·고려대 교수, 고려대 대학원장, 한국정치학회 회장, 통일원 정책자문위원장, 세종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정치학 교수 30년 동안 "비교정치학 이론 연구에 10년, 일본 정치 연구에 10년, 한국 정치 연구에 10년을 매달렸다"고 한다. 현재 유한재단 이사장. 저서:《이론정치학》《한국현대정치론》《한국정치변동론》《세계화와 민주주의》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