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은 최근의 현대사일수록 좀처럼 평가를 내리지 않으려 한다. '후세 사가(史家)에게 맡긴다'는 말도 그래서 유행했다. 원로 정치학자 한배호(韓培浩·77) 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새 연구서 《자유를 향한 20세기 한국정치사》(일조각)는 전혀 다르다. 어느 한 대목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그는 한국 현대정치사에 '10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놓았다. ① 식민 통치는 무엇을 남겼는가? ③ 해방정국, 무엇을 얻고 잃었는가?
해방 직후의 정국은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을 낳았다. 그러나 이승만이 미·소의 대립 속에서 가장 실현성이 높다고 본 '남한 단독정부안'을 추구해 성공했다는 점은 평가받아야 한다. ④ 6·25 전쟁은 왜 일어났나? 최근 공개된 소련·중국측의 자료는 '김일성이 계획하고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얻어 남침을 감행한 전쟁'이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것은 무력에 의한 '침략 전쟁'이었고,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은 한반도를 공산화해 아시아에서의 전략적 지위를 확보하려 했다. ⑤ 4·19는 누가 왜 일으켰나? 고등교육에 의해 형성된 학생들의 도덕적 기준이 위정자들의 정치 행위와 너무 거리가 멀었고, 교육과 신분의 불일치에서 생겨나는 좌절감도 커졌다. 여기서 의분을 느낀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배후세력이 선동하거나 새로운 지배체제로 바꾸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⑥ 5·16은 왜 일어났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장교 집단의 불만이 팽배한 반면, 장면 정부는 부패한 상급 장교를 숙청하려는 군부 내의 정군(整軍)운동을 반대했다. 여기에 정치·사회적 혼란이라는 외부적 자극이 생겨 5·16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후 3공화국 정부는 경제 근대화를 위해 국가의 자원과 능력을 동원하려는 '개발주의 국가'의 모습을 띠게 됐다. ⑦ 박정희 개발주의 국가가 이룩한 것은? 박정희 정부는 단기간에 획기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냈지만,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억제한 채 이뤄진 경제개발이었다. 또한 무엇을 위한 경제개발인가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보여주지 못했고, 더 자유롭고 개방된 정치 질서의 창출에는 실패했다.
한배호 교수는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웅크린 퇴근길, (0) | 2008.12.01 |
---|---|
'조계사 탈출' 촛불 수배자들 호텔방서 화투치다 붙잡혀. (0) | 2008.12.01 |
종교편향 금지’ 공무원행동강령 5일 시행. (0) | 2008.12.01 |
불교계의 종교차별금지법 제정요구, 이렇게 시행해야.... (0) | 2008.12.01 |
중(中)·대만, 59년만에 3통(通) 전면 실시 (0) | 2008.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