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여름과 가을 사이에 서서.

碧 珍(日德 靑竹) 2022. 8. 23. 08:24

여름과 가을 사이에 서서.

 

 

 

 

어느 듯 무섭도록 작열하던 8월 여름 태양은 처서(處暑)를 고비로 여름은 이젠 우리 곁을 떠나려 하고 있다. 봄여름 가을 겨울이 바뀜에 있어서는 그 차례가 분명해서 엇나감이나 뒤틀림이 없으며, 계절은 말없이 순환하며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온갖 것이 생성소멸 함에 있어서도 다 그러한 이치를 지니고 있다, 大邱의 특이한 혹서도 세월의 흐름을 거절만 할 수 없었는지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은 가을의 문턱임을 예고하니 비 생각과 더위와 adieu할 때가 되었는가 보다.

 

처서를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써늘한 기운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낮에는 고추잠자리가 맑고 높은 가을을 만끽하며 날고, 밤에는 찌르르 귀뚜라미가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노래를 하니 벌써 가을이구나 하는 마음에 참으로 세월은 유수같이 간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이러하듯 자연은 이렇게 때(時)를 어기지도 않고, 엇갈리지도 않으며 진실한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뜨거운 열기의 혹서를 지나면 어느 날 새벽녘 시원한 바람 따라 청명한 하늘이 열리고, 들녘에 들국화 코스모스 구절초가 어지러이 피고 많은 생각을 낳고 결실의 기쁨을 그리는 가을이 소리 소문 없이 우리 곁으로 옵니다.

 

가을도 온 山河 단풍도 들녁의 이름 모를 꽃들도 우리를 일깨우면 우리의 진솔한 삶은 마음을 살찌우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이렇게 생각이 깊어지면 그 생각의 틈새에서 사랑이 자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일 년 중 여름은 더운 계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위를 무작정 피하려고 만 한다. 그럴수록 더위는 집요 하리 만큼 사람 곁으로 다가온다. 올 大邱의 여름은 예년에 비하여 비가 내리지 않아 삼라만상이 가뭄에 찌들고 혹서(酷暑)가 더하여, 전형적인 大邱 무더위를 맛보게 하는 무척 더운 날씨가 계속되니 차라리 태풍이 오고 집중호우라도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늦여름이 가는 가을의 길목에 서게 되면 산에 산에 단풍이 봄꽃보다 더 붉게 물들고 들녘은 누르게 변하면,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도 한번쯤 자신을 뒤돌아 볼 여유를 가질만한 때라고 생각이 든다.

 

아직도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걸 보니, 그리 춥지도 덥지도 않아 사람이이 살기 좋은 계절인 가을이 다가오는 듯하다, 가을은 파란 하늘과 새털구름, 들국화, 단풍, 벼가 누르게 익은 논, 추수, 한가위, 코스모스 등만 생각하여도 마음이 넉넉하고, 가을이란 말만 들어도 가을 냄새를 느낄 수가 있으며 더욱이 가을이면 떠오르는 것으로 서릿발이 심한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홀로 꼿꼿하다는, 즉 오상고절(傲霜孤節)의 九節草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게 靑雲의 꿈을 꾸던 60여 년 전부터 그의 마음이다.

 

가을이 성큼 곁에 다가 오고 있다, 나는 가을 들녘을 무척이나 좋아 한다, 흘린 땀의 결실을 수확하는 계절이라 농촌에서는 벼 과일 채소 등 갖가지 농작물을 수확하느라 손이 모자라도록 즐거운 계절이 가을이라 더욱 좋아한다. 그리고 맑고 푸르며 높은 하늘과 따사한 햇볕, 또한 가을바람이 주는 살찌는 마음은 가을이 주는 첫째 즐거운 맛이고, 가을이 깊어 가므로 주렁주렁 달린 누른 배. 빨아간 사과 등 탐스럽고 달콤새콤한 맛과 그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가을이 주는 둘째 즐거운 맛이고, 가을을 진솔하게 느낄 수 있는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 핀 길,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山河를 보며 걷다가 맑게 흐르는 계곡물에 들국화송이 띄워 보내려 손을 담그며 마음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전하는 무심히 흐르는 물소리는 가을이 주는 셋째 번 즐거운 맛이다. 이모두가 마음을 살찌우고 웃음을 다 함께하는 자연이 주는 가을의 세 가지 맛(三味)이 참으로 좋다.

 

가을이 되면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 天高馬肥之節이라고 하는데, 이는 등화가친지절(燈火可親之節)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수학(修學)하는 이는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라는 말이고, 특히 평소에 책을 멀리하던 사람이라도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이 되었으니 책을 읽어 마음의 양식을 마음 가득히 담아 두라는 말이다, 그런데 귀뚜라미와 이름 모를 풀벌레 울음소리 들리는 밤에 국화 향기 그윽이 취하여, 풍성한 안주가 있는 술잔을 기울이는 계절이라 술을 멀리할 수도 없는 계절이기도 하다.

 

五更녁에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에 창을 여니 이제 바람이 여름을 날려 보내고 가을 초입새를 맞이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이 새벽녘, 山居에서 뵈옵고 잔 올리고 온지가 벌써 여러 달이 지나가고 있어 그런지 지금 당신님이 보고 싶고 그리워 달려가고 싶어집니다. 올 지루하던 무더위에 그래도 잘 참고 보내어준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위의 모든 인연의 님들도. 오는 가을에 가슴을 활짝 열고 맞이하여 부처님의 가피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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