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해거름 녘 술이 그리워지면 인연들도 그립다.

碧 珍(日德 靑竹) 2022. 5. 21. 21:24

해거름 녘 술이 그리워지면 인연들도 그립다.

 

 

일 년 중 만물이 점차로 생장하여 가득 차게 된다는 소만(小滿)을 지나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는 하지(夏至)를 이십 여일을 앞두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느낌이 들 만큼 산산하나 낯에는 여름 못지않게 더우니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라, 오가며 지나는 길옆 담장위에는 붉은 사계절 장미가 한창 만발하고, 산에는 철쭉과 산에서나 띄엄띄엄 볼 수 있다가 근래 들어 가로수로 정원수로 또 빈 공지를 메우고 있는 이팝나무의 꽃이 한참피고 있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도, 해질 무렵이 되니 古稀를 넘기고 인생 황혼기에 삶을 사는 사람에게도 무언가 아쉬운 마음으로 가득하여진다.

 

이러히 공허한 마음이 되는 날 해질 무렵이면 정종 대포에 꼬지를 곁들여 마시면 입 언저리에 달콤하고 정종의 특이한 향내가 코를 찌르는 그 술이 그리워지기만 하기에, 친구와 헤어져 귀가하다가 대포집에 혼자 들리다보니 속담에‘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술을 좋아하는 그로서 술이 있는 집, 대폿집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혼자 빙그레 웃어본다.

 

아무튼 대폿집을 좋아 한다, 대폿집, 대폿집하고 생각만 하여도 술꾼들의 삶에 애환이 서려 있고 정이 넘쳐흐르는 장소가 아닌가, 간단하게 안주를 주문하여 단숨에 한두 잔 마시니 지난날 자주 들리던 정종대포 집을 찾아 따끈한 정종에다 구운 노가리를 안주 삼아 한잔 쭉 들이기고 나면 만사가 내 마음이고 내세상이 되며 무엇인가 집히지는 않지만 아쉬운 마음이다,

 

한잔두잔 들이키는 대포잔 속에 떠오르는 대폿집에서 만나 즐거웠던 인연들, 잘 살지는 못하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정직하고 정도 많았던 대폿잔 술친구들이 보고 싶고, 더욱이 30여년 넘게 들랑날랑하였던 별이할매가 운영한‘무림주막’이 떠오르며‘무림주막 인연들’이 생각나고 보고 싶어진다.

 

人生(삶)이란 바람처럼 무심하게 와서 잠시 머물다가 바람 따라가는 구름처럼 덧없이 흘러 다니다가, 한 줄기 비 뿌리듯이 팔고(八苦) 아픔을 주고서 홀연히 떠나버리는 게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사람은 빈손으로 태어나 인생이란 길을 가면서 그 끝인 죽음으로 빈손으로 가는 한 생을 살아가는 중, 우연하게 접하는 많고도 많은 인연들 중 그 하나가 술과 만나는 인연이다.

 

한두 잔 마시고 나니 취기와 더불어 자신이 출가하여 승려(僧侶)가 되었다면 하고 자화상을 그려본다, 佛家에서 승려들이 등에 바랑하나 짊어지고 구름과 물처럼 세상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 하는데 늘 부러웠었다, 운수행각을 하는 것은 밑바닥 人心을 알고 民心이 어떻게 형성 되는가를 알고자 하는 것 아닌가 한다. 道敎의 道士들은 운수행각을 표주(漂周)라고 한다.

 

사람의 한 生이란 千里馬가 문틈 사이를 지나가는 찰라와 같다 하고, 또 누구는 인간의 부귀영화는 하늘에 흘러 다니는 한 조각 뜬구름과 같다고도 하였는데, 사람의 일생이 겪고 누리는 부귀영화나 신산고초(辛酸苦楚)는 모두가 한 순간의 일이요 부질없는 집착에 지나지 않는 것은 우리 보통사람의 삶이다. 그렇다면 너와 나, 과연 우리는 무엇일까?, 세월(歲月)이란‘흘러가는 시간’이나‘살아가는 세상’을 뜻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人生이란 흐르는 강물처럼 멈추어 지지 않는 길 다면 긴 세월 속에 사람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버리고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기 전에 부질없는 욕심보다는 작은 단하나의 소망으로서 흐르는 강물처럼 영원한 사랑이란 참 마음을 만들어 고이 간직하는 꿈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었던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세월의 빠름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문득 그가 머물러 있는 지금의 이 세월이 어떻게 흘러 왔는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지난 시절들이 오래토록 곁에 있어 주리라 생각하였던 그 젊음이 어느덧 내 곁을 떠나갔다는 것을 古稀를 지난 지금에야 깨닫는다, 시간이라는 작은 시냇물이 모아져 세월이라는 강물을 만들고 바다로 흘러들어 가듯이, 인생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따라 사람도 삶이란 바다로 흘러 들어가 인생이란 끊임없이 흘러감을 늘그막에 실감하는가 보다.

 

인생노정(人生路程)에서 마지막 生을 생각하며 지나온 삶을 되새겨보면, 사람과 술(酒)은 불가분 관계를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이 된다. 사람이 술(酒)과 만나는 인연은 서둔다고 천천히 하고 싶다고 맺어지는 인연이 아니다, 즉 孟子에‘천천히 할 일은 천천히 하고 서두를 일은 서둘러야 한다(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가이구즉구 가이속즉속)’는 말이 있듯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인연이 술이 아닌가 한다. 우리, 너와 나의 인연도 덧없이 바람처럼 흘러가는 게 사람의 삶이기에 일장춘몽과 무엇이 다른가 한다.

 

아무튼 술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며 되는대로 쓰다 보니 술 생각이 간절한데, 세상에 있는 술을 다 마셔버리면 나도 酒仙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과연 옳은 생각일까. 酒仙이 될 수는 없지만 꿈속에서 하루만이라도 酒仙의 경지에 머물러 한 잔의 술을 마시고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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