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원골로에서 맞이한 생일상.

碧 珍(日德 靑竹) 2021. 10. 17. 19:24

 

원골로에서 맞이한 생일상.
                                                      -- 生日에 그 사람과 더불어 어머님 山居 省墓하다.


어느 듯 10월 중순을 들어서니 싸늘한 기운이 조석으로 느껴지는 늦가을 이른 새벽녘 이름 모를 풀벌레. 여치. 귀뚜리 울음소리 잔잔한 가운데 따듯하게 잘 잤다며 일어나다, 벌써 또 한해가 가는가하다 14일이면 일흔여덟 번 맞는 생일이 되는가하다 지난 2011년 생일 다음날 쓴‘베개와 이불’이란 글이 생각나,

          ‘지난해 보내어준 정성을 침상에 펴고 / 날마다 그 위에서 당신을 느끼면서도
                                                                                      / 고마움을 잘 알지도 못하고 지나는데, 

              그저께 보내어준 폭신한 베개를 벼고 / 따사한 이불을 덮고 자고서 일어나니
                                                                                      / 편안이 당신과 함께 잔 듯한 마음이네,  

              침상 위 이내몸 아래도 위도 당신이라 / 이사람 당신의 포로가 되었나 보이니
                                                                                      / 이미 당신을 사랑한지 오래 되었다 하네.’

라고 되새겨보다 문득 원골로 그 사람의 사려 깊은 배려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가슴으로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이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흘러가는 계절, 특히 늦가을 길목에 서면 자연스레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그 사람이 보고 싶어지고 어머님이 그리울 때면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도 한번쯤 뒤돌아 생각하다보면, 불현듯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마음이 허전할 때면 더욱 그렇다.

돌아보면 지난 2020년 2월을 들면서 전고미문 어려움인 중국 무한발 Corona virus 감염 확산으로 국민들은 지역 간 이별에 준하는 생이별을 잠시나마 맞아, 삶이 어려워지고 만나고 싶어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기막힌 이별을 너와나 우리 모두가 겪고 있다는 게 현실이라, 그도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어 편하지 않은 생활을 2년여를 이어가고 있다.

그 사람을 본지도 반년이 넘었는가, 어머님을 근참(覲參)하려 山居에 다녀 온지가 벌써 한해 반이 되었다, 그 사람이 다녀 간지가 어언 반년이 지나가니 보고픈 마음 더욱 간절하여지니 코로나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 사람이나 어머님이 뵙고 싶으면 때를 가리지 않고 상경하여 의왕 원골로에 들려 늘 그 사람과 더불어 사당동에서 버스를 타고 경기도 광주 오포읍 문형리에 있는 時安묘지공원 山居에 곧잘 다녀왔었던 게 엊그제 같기만 하다는 생각이 잦게 마음을 스쳐가곤 한다.
 
그러던 참에 원골로 그 사람으로부터 14일이 생신이니 다녀가라는 말에 염치불구하고 14일 이른 아침녘 1년 반 만에 상경 KTX를 승차하니 유치원생 가을 소풍가는 마음이었다, 지나쳐가는 차창 바깥 펼쳐지는 누렇게 물들어가는 가을 山野와 노랗게 익은 벼논 등 농촌 풍경에다 유유자적 흐르는 낙동강을 지나며 햇살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풍치에 취하다, 지난 칠십 수년 삶에 잠기다보니 어느 사이 서울역에 도착하여 의왕 원골로로 직행하였다.

되돌아보면 늘 원골로 그 사람에게 가거나 山居에 가면 마음이 그리도 안락하여진다. 산거에 자리하고 그 사람이 사온 고운 꽃묶음을 화병에 꼽고 소주 잔 올리고 마른 잔디를 돗자리 삼아 함께 예를 올리며 잠시나마 어머님 곁에 있다가 올수 있었던 게 그저께 같은데, 지난해와 여히 올해도 코로나 감염 때문에 올수가 없어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어 새벽녘 잠들기도 하였는데, 느닷없이 오늘 그 사람의 배려로 푸짐한 생일상도 받고 山居에도 가서 어머님을 뵈올 수가 있었기에 고맙기가 그지없는 마음이었다.

모름지기 우리 사람은 누구나 부모의 은혜를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가는데, 삶을 마치면 영혼과 육신은 다시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기에 하늘과 땅. 부모는 사람이 태어나 돌아가는 바탕이요 고향인 것인데 山居에도 갈 수가 없으니 불효 중 불효가 되어버렸다는 마음이라 아팠던 지난 일 년 반이었다.

그 사람과 더불어 山居를 뒤로 하고 下山하는 발길은 늘 가볍고 행복하였다, 이것이 사람 사는 보람이고 행복이 아닌가 하니 더욱 즐거운 마음이다. 더욱이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혼자 외로울까 아니 아프기나 할까 하는 고운 마음으로 山居를 올 때마다 동행을 하여주는 그 사람이, 오늘따라 참으로 예쁘고 고마운데도 고맙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하는 심정을 이해하여주어 더욱 고마울 따름이다.

人生이란 무심히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간다는 말처럼 벌써 칠십 팔년이란 삶을 살았는가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젊음도 파란 꿈도 그 많았든 시간도 어느덧 내 곁을 떠나갔다는 것을 깨닫는 무렵에서야 인연(因緣)의 중요함을 알게 되며 아쉬워하는 것이 사람의 삶인가 한다. 그래도 어머님의 자비와 가호로 늘그막에 좋은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정겨운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 여러모로 행복하게 살수가 있어 그래도 운이 좋은가보다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게 지금의 그의 자화상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번의 여러 형태로 만나는 인연(因緣)이 있다고 들 한다. 혹여는 인연이 없는 사람도 인연이 늦어 막에 닿는 사람도 있나 본다. 아니 성격이나 주위 사정 등 여러 여건 때문에 인연이 닿지 않는 사람, 인연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가 다시 운이 좋아서 숙명적으로 좋은 인연을 마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인연도 만날 수가 있기에, 만나는 인연에 따라 희비애락이 따르는 게 우리 인생이고 사람이 사는 세상인데, 그는 그 사람을 늦게나마 만난 것은 행운중 행운이며 복중 복이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많지 않은 여생을 그 사람을 위하며 살아가고프다.

세월 탓인지 나이 탓인지 어떻게 살아 왔는가 하고 생각에 잠겨보기도 이따금 한다, 되돌아보니 그는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늦게나마 참으로 좋은 인연을 만났다는 생각이다, 아니 늦게 만나 인연인데도 마음이 한 결 같이 곱고 이해심이 깊고 사리에 밝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한 마음의 인연이라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마음에 부담이 없어 평온하고 아늑함을 느끼기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떨어져 살고 있어도 늘 같이 있는 마음이며, 늘 그 사람의 따사한 체온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혼자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이것이 참 인연으로 만나 함께하는 참 행복이고 참 사랑이 아닌가 한다. 흘러가는 세월을 보듯이 下邱하는 KTX차창 밖을 무심히 내다보노라니 그 사람과 어머님의 사랑은 참으로 크시며 따사하다고 느껴지는 기운이 가슴으로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