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불교에서 세속적 의미인 ‘일반적인 사랑’ 이란.

碧 珍(日德 靑竹) 2021. 9. 24. 21:18

불교에서 세속적 의미인 ‘일반적인 사랑’ 이란.

 

(1).

佛敎에서 말하는 ‘자비(慈悲)’ 와 세속의 ‘일반적인 사랑’ 을 어떻게 표현하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佛敎에서 慈悲는 지혜(智慧)와 더불어 불교의 근본적이고 실천적인 思想으로,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중생의 즐거움을 같이 즐거워하는 것이 ‘자(慈)’ 이고, 중생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고통을 없애 주고 그들이 고통으로 괴로워할 같이 괴로워하는 것이 ‘비(悲)’ 이듯, 慈悲는 중생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고락을 함께하고 그들이 복락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기에 ‘慈悲’ 는 나와 남을 구분하여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이 본래 둘이 아님을 깨달아서 알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 을 뜻하며, 慈悲를 표현할 때 ‘동체대비(同體大悲)’ 라고 흔히들 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아픔이 곧 내 아픔으로 와 닿기에 부처님의 자비를 달리 ‘무연자비(無緣慈悲)’ 라고도 하는데, 無緣慈悲는 어떠한 원인도 어떠한 조건조차 없는 자비, 즉 인연이 없는 자비라는 뜻이다.

 

이러한 자비는 진실로 나와 남이 다르지 않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하나’ 라고 아는데서 시작되는 ‘不二’ 의 말씀인 것으로,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이 바로 ‘佛敎의 慈悲’ 라고 할 수 있다. 즉 자비란 상대를 구별하고 차별하는 마음이 아니며 절대 평등한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미에서 ‘사랑’ 은 감각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애욕에 치우쳐 이기적으로 흐르는 것으로, 부모의 사랑이나 남녀 간의 사랑 등 무수한 갈래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면서 남을 돕고 사랑하는 것이 佛敎에서의 ‘慈悲’ 라고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 자비는 세속적인 의미의 ‘일반적인 사랑’ 과는 구분되는 가장 높은 차원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완전한 사랑’ 이라 말할 때 조건 없는 사랑, 즉 무조건적인 사랑을 ‘진정한 사랑’ 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는 불교의 자비와 사랑은 달리 구분할 필요가 없을 것이나, 오늘날 사랑의 의미는 어떤 특정한 대상을 향한 사랑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기에 불자의 마음이란 차별하고 분별하지 않으며 진정한 사랑으로써 자비의 마음을 항상 간직하는 것이다, 불자는 나아가 어렵고 고통스런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자비를 실천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佛敎에서 말하는 ‘금기된사랑’ 즉, 세속의 ‘일반적인 사랑’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사랑은 특정한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인 일체에 대한 조금도 차별 없는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을 하되 사랑에 머물러 집착하는 것은 애욕이라 하여 금기시하며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 이성을 상실하고 감정으로 치우쳐진 감정의 사랑인‘금기된사랑’은 불자로서는 하지 않기를 당부하고 있다.

 

불교는 사람(衆生)들이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세상(속세)인 世間에서 속세의 생사 번뇌에서 해탈하여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는 法界인 出世間으로 가는 가르침으로 그것을 실현하는 데는 사성제(四聖諦)가 근본이며 궁극적 가르침이다. 따라서 해탈(解脫), 열반(涅槃)을 목적으로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간에 일어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다 생멸하는 것으로 괴로움이기에 사랑도 괴로움이다.

 

이것은 사람이 욕구하는 비단 색욕뿐만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식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도 모두 괴로움이라고 보기에 결국 이들은 얻어도 괴로움이며 얻지 못해도 괴로움인 것이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의 수준은 出世間의 수준이 아니고 世間의 좋은 것을 얻으려고 하는 삶이라서,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에 이성적으로는 동의는 하지만 심정적으로는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서 중도의 균형을 갖춘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한 佛敎思想을 담고 불자의 금기된 사랑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 여러 문학작품을 통하여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사상은 같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작가에 의하여 제각각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 작품들을 비교 분석하여 불교에서 괴로움이라 하여 지양되는 사랑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아보고 그에 반한 우리의 생각을 전개하여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

 

(2). 불교에서 말하는 ‘불자의 금기된 사랑’ 이란.

 

불자도 사람이기에 세속에서 하는 ‘일반적인 사랑’ 을 한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불자의 금기된 사랑’ 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회주 無一 우학 큰스님의 저서에서 세속의 ‘일반적인 사랑’ 을 한층 더 승화시킨 이야기를 나름대로 적어본다.

 

불교의 자비 사랑과 ‘불자의 금기된 사랑’ 에 대하여 우학 큰스님이 ‘보문사 회정(懷正)대사의 전설’ 을 소설로 풀어 쓴 저서가 ‘이야기 관세음보살’ 이다. 그런데 ‘회정대사의 전설’ 은 회정대사가 관음보살을 찾는 과정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비하여, 우학 큰스님의 소설 ‘이야기 관세음보살’ 은 회정스님과 보덕각시의 완전한 사랑이야기가 글 전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야기 관세음보살’ 에서는 회정스님과 보덕각시의 시공을 초월하는 완전한 사랑을 통하여 펼치는 진리와 깨달음에 관한 사랑이야기로, 이 책에서는 세상에 던져지는 모든 일들의 만남은 우연(偶然)히 아니라 반드시 필연(必然)속에서 이루어짐을 강조하므로 금기된 사랑을 완전한 사랑으로 승화시켰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관세음보살’ 의 줄거리는, 어느 날 사찰에 놀러 온 유치원생들 중에 한 명이 동물들과 대화를 나눈듯한 장면을 보고 큰스님이 의아해 물어보았더니, 그 어린애가 이야기하기를 회정(懷正)과 마랑이었을 때부터 동물들과 이야기를 잘 했다고 한다.이에 큰스님은 크게 놀라며 회정과 마랑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어린애가 회정과 마랑이 환생한 것이라는 설정으로부터 시작이다.

 

“회정(懷正)의 전생으로 나오는 마랑은 이미 정혼여(定婚女)가 있는 시골 총각이다. 그 동네에 곱고 아름다운 처자가 한 명 이사 왔는데 그가 바로 보덕각시이다. 동네의 남성들이 그녀의 사랑을 차지하려고 애를 태우고 있는 가운데 정혼여가 있긴 하지만 마랑도 보덕각시에 맘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자 보덕각시는 동네의 많은 남자들이 자신 때문에 시기하고, 다투는 것을 보자, 자신이 내는 시험을 통과하는 자한테 시집을 가겠다고 하는데 다름 아닌 佛經을 외우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 이후 책을 멀리한 마랑이지만 그 또한 도전하면서, 그는 불경을 읽으면서 숨어있던 세상을 만나게 되면서 깨달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결국 최종 승자는 마랑이 되어 마랑은 보덕각시와 혼인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질투를 느낀 마랑의 정혼여는 보덕각시의 집에 불을 내어 보덕각시를 죽이게 된다. 보덕각시가 죽은 후 마랑은 보덕각시의 무덤 곁에서 계속 살았다.

 

어느 날 길을 지나던 老스님의 무덤을 파보라고 하자, 그 무덤에는 보덕각시는 없고, 관세음보살 금상(觀世音菩薩 金像)이 있었다. 보덕각시는 관세음보살이 환생한 것이었고, 환생한 관세음보살은 불교 전파를 위해 많은 이들에게 불경을 알려주려고 하였던 것이다. 老스님이 말하기를 보덕각시와 마랑은 다음 생에서는 부부로 다시 맺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들이 바로 회정과 보덕각시였던 것이다.”  라는 내용으로 불자의 금기된 사랑을 한층 승화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佛敎에는 많은 說話가 내려오고 있는데 그 설화 중에 관세음보살에 대한 설화를 이야기 식으로 쓴 책이 ‘보덕각시’ 인데, 주로 佛經이나 그 불경을 해석한 책 또는 佛敎理論에 관한 책들이었으나 이런 佛敎說話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인 듯하다.

 

근래 들어 새벽녘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잦아지다보니 졸필이나마 쓰거나 이 저것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문득 그저께가 새해 벽두였었는데 어언지간 시월을 맞으려 하고 있으니 千思萬感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 가는 날이 많아지는 것은 나이 탓인지 잦아지기만 한다.

 

이 밤도 왜 이러히 생각이 많을까, 늘그막에 어려움과 온갖 곤란을 겪게 되는 백수풍진 세상을 벌써 외길 칠십팔 여년을 살고 나니, 세상사 인간사 쉬운 삶이라 하기보다 고된 세월에 끌려 살아왔다는 회한(悔恨)이 휴복(休福)보다도 많은가 하니 그도 하잘 것 없는 미물 같은 사람 중 한 사람인가 한다, 우리 인생 노정의 삶에 대비한 선명함이 그의 삶을 다시 한 번 관조(觀照)할 수 있게 하여 주는 세월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