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보랏빛 구절초 핀 가을 들녘을 달려보고 싶구나.

碧 珍(日德 靑竹) 2021. 9. 16. 09:39
보랏빛 구절초 핀 가을 들녘을 달려보고 싶구나.


우리 민족의 이대명절 중 하나인 팔월 보름 仲秋節을 엿새를 앞두고 잔잔히 내리던 가을비 그친 이른 새벽에 일어나 TV를 켜니 태풍 찬투 영향으로 전국 곳곳에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고 한다. 예로부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로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된다고 하는 秋分을 지나면, 24절기 가운데 열일곱째로 찾아오는 절기인 한로(寒露)로 찰 한(寒) 이슬 로(露)에서 보듯 공기가 차츰 선선하여지면서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서 서리로 변해가는 계절이라 그런지 쌀쌀한 새벽이다.

되돌아보니 애초 시작할 무렵에는 코로나 감염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코로나감염 확산 위력에 눌려 어언 2년여를 방-콕인지 집-콕인지 하여튼 제약된 생활하다보니, 지금은 정신적으로는 별별 생각이 다 들어 공허감에다 황당한 기분마저 드는데다, 신체적으로는 마음 편히 활동을 하지 못하다보니 무력감이 들어 사는 맛이 무엇인지 모를 지경이라 지금의 부질없는 삶이 답답하기가 그지없다.

그러다보니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고부터는 오라는데도 갈래도 갈대가 없는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탈출구를 마련하다보니, 하루의 일과는 점심 후 갈 데라고는 지금은 폐선이 되어 공원화길이 된 아양철로공원길(구 대구선철도)따라 걷다가, 금호강을 만나는 지점인 강둑에 서서 무심히 부는 바람과 더불어 소리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때 이르게 떨어지며 휘날리는 낙엽 유혹 따라 강둑길을 거닐어 보는 것이 고작이지만, 얼마간 거닐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따금 동네 재래시장 대포집에 들러 간단한 안주에다 경주법주막걸리 한 두병 마시고 귀가하는 쏠쏠한 낙으로 느끼는 게 요즈음 하루 중 큰일이 되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양철로공원길 거닐다보니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따사롭지만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걸 보니 살기 좋은 계절인 가을인가 하는데 피부로 느낌은 벌써 가을도 멀리가고 있는듯하다, 가을이 깊어 겨울의 길목에 서게 되면 산에산에 봄꽃보다 더 붉게 물들었던 단풍이 떨어지면서 들녘이 누르게 변하면,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 자신을 한번 쯤 자신을 뒤돌아 볼 여유를 가질만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계절이다.

근래 들어 무심하게도 흘러가는 세월이나 촌음에 대한 아쉽고 서운한 느낌이 자주마음에 일어난다. 지난 2년여를 가보고 싶은 곳을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코로나 때문에 그러하지 못하다보니 답답하고 아쉬움이 가슴 가득하게 쌓여지면서 황폐하여야만 가니 서글픈 마음 그지없다.

어느 듯 여름도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내 마음에도 가을이 스며들어, 지난 가을의 전설이 숨어 있는 지는 날의 추억을 향하여 마음가는대로 떠나고 싶어만 지기도 한다. 날마다 이른 새벽녘에 올리는 새벽예불도 예처럼 자주 올리지 못하듯 마음도 그러하다. 그가 부처님께 매일 올리는 예불하는 마음은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가족과 인연들, 특히 윗녘 그 사람의 안녕을 위하여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바라는 마음이 전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을을 맞아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거닐다보면 대개의 사람은 시인이 된다고 한다, 그러다보면 사랑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도 된다,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마음의 빈터에 그리움의 꽃 한포기 심어 놓고 있는 것일까. 유수처럼 흐르는 세월 따라 흘려보내는 내 애절한 그리움이 사랑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하게 되는 게 가을날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러다보면 또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사람이란 존재는 하늘에 흘러 다니는 한 조각 뜬구름과 같다고도 하였는데, 과연 우리는 무엇일까?, 아니 나(我)라는 사람은 어떤 존재 일까?, 결국은 때에 따라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일까.

지난 60년여 전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늦여름부터 내내 쌓이고 쌓인 활엽수의 마른 잎인 가랑잎(fallen leaves)이 썩어 가면서 향긋하고 구수한 냄새가, 마치 된장국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기듯이 풍겨 가을을 만끽하게끔 느끼던 지난 학창시절에, 조선 후기 문신이자 당대 최고 선비였던 李원조 선생이 세운 만귀정(晩歸停)을 거처 낙엽을 밝으며 가야산 상봉을 올라가던 그 시절이 새삼스레 마음에 다가오니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하니 그도 가을을 타는 사람인가보다.

오늘도 집을 나서며 주위를 둘러보거나 먼 산을 바라보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가을이 짙어만 가는 모습이라 ‘가을도 이제 다 가는 가’ 하고 자연스레 한 숨을 쉬다보면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도 지는 서글픔도,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의 맑음도 사각사각 가랑잎 날리는 소리도 잊어버리고 가을을 만끽하다보면, 가는 가을에 대한 아름다운 감정은 한 순간일 뿐 지난 날 추억들이 밀려오며 그리운 사연들이 어느새 사색의 감정으로 젖어들게 하는 것 또한 가을의 별미가 아닌가 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를 더하여 가면서 사람도 나뭇잎처럼 늙어만 가고 그러면 생을 마치고 흙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는 자연섭리의 법칙 되로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부처님 말씀처럼 ‘空手來空手去 人生’ 으로 돌아간다는 생각과 더불어, 가랑잎 구르는 소리 듣다보니 어느 사이 길옆에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오곡이 익어 고개 숙인 들녘에 오상고절 연보라 구절초(九節草)나 들국화가 피어있는 山河 오솔길을, 그 사람과 손에 손잡고 산들 부는 가을바람에 햇살을 받으며 달려보고 싶고 보고픈 사람을 찾아 가고 싶기도 한 이 가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