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젊은 시절 한때는 出家를 생각할 때도 있었다.

碧 珍(日德 靑竹) 2021. 9. 22. 17:30
젊은 시절 한때는 出家를 생각할 때도 있었다.
 
(1).
사람의 일생이란 천리마가 문틈 사이를 지나가는 찰라와 같다 하였으며, 또 누구는 바닷가에 한 톨의 모래알과 같다고 하였고, 인간의 부귀영화는 하늘에 흘러 다니는 한 조각 뜬구름과 같다고도 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각자 자기마다 고유한 행태로 일생을 살아가고 살고 있다, 어느 누구나 한 사람으로서 살아온 지난날들은 참(眞實)과 거짓(妄覺)이라는 물레방아의 양축으로 알게 모르게 살아 왔다는 것이 사람의 일상의 삶이다.

그러기에 참과 거짓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행위를 하면서 사는 게 우리네 人生이기에, 누가 누군가 참되게 살았느냐 위선으로 살았느냐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도 현실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은 초연하고 고고하고 참된 삶을 살았다고 산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모르고 사는 게 너와 나, 우리네 삶이다. 그렇다면 나(我)는, 과연 우리는 무엇일까?, 나(我)라는 인간은 어떤 존재 일까?, 결국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일까? 하니 인생만사 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팔월보름 추석 전날 자야(子夜)에 창을 여니 굿은 비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듣다보니 이 저 생각을 하다가, 지난 칠십팔 년여 백수풍진(白首風塵)세상 살아온 외길을 돌아보니 宗敎란 믿음 하나 없이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사람의 삶이란 참으로 어렵고 어렵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부터, 어느 날 종교에 눈을 뜨게 되면서 불교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정하고 불교 관련 서적을 섭렵하면서 불교대학도 다니며 전국 사찰 一柱門에 발을 들여 놓은 지가 벌써 오십 년여가 되었다.


불교 공부를 하면서 처음으로 만난 것은 初 佛者를 위한 佛敎 入門書인 ‘불교공부’ 를 만나 호기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책 첫 장을 넘기니, 책머리에 “귀의삼보 하옵고” 라는 말씀과. 뒷장에 강의 내용으로 ‘첫째 信心 있는 불자(信), 둘째 知的인 불자(解), 셋째 협동하는 불자(行), 넷째 성취하는 불자(證)’ 라는 불교대학의 4대 신행목표가 적시 되어 있는데 이는 대승불교의 보살(菩薩)이 걸어야 할 길이라고 하였었다.

佛敎에서는 모든 마음의 병의 근원은 불경 공부와 참선. 기도 정진하면 사라진다고 하였는데, 불교의 이상적 경지는 일체 無常이고 無我이며, 苦痛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수행을 통하여 일체의 고통이 사라진 자유롭고 안온한 세계에 도달하면, 모든 집착이 사라지고 고요한 깨달음의 경지에 들게 되면 마음이 안정되어 평안하게 되어 ‘平生의 큰 병인 마음의 병’ 을 고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는 佛敎는 慈悲, 사랑의 宗敎이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정진하여왔으나 지난 칠십팔 여년이 아무 보람도 없이 헛되고 덧없기에 無常한 마음 그지없다.

돌아보니 한 때는 고교선배로 대학졸업 후 고시 공부를 하던 법학도로 실패를 거듭하다 해인사 백련암 성철(性徹) 큰스님을 찾아 출가하였던 상좌 원택(圓澤)스님처럼, 한 때는 출가하여 삭발(削髮)이나 했으면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마 그 때부터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한다. 圓澤스님은 한국 禪 佛敎 전통에 한 획을 그었던 性徹 큰스님을 20년 이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는 ‘불기자심(不欺自心)’ 은 성철 큰스님의 화두를 이어 받은 스님이시다.

근래 들어 신성시 되는 삭발(削髮)을 모독하는 사태가 우리 사회에서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 이슈와 관련한 시위와 항의 형태의 삭발이 행하여지는 것이, 하루 멀다 일어나는 민주노총 등 노조들의 시위나 근래 들어 자영업자 영업시간 철패 시위나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집회나 울진원전 반대 시위 등등에서도 삭발은 단골 메뉴로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TV 등 언론을 통하여 時時로 볼 수가 있어 이젠 삭발의 신성함도 약발이 다한 모양으로 회화되고 있다.

(2).
‘삭발(削髮)’ 이란 出家精神의 상징으로 불교의 출가 수행자는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어야 한다고 율문(律文)은 규정하고 있다. 佛敎의 출가 수행자가 머리를 깎는 데에는 ‘첫째는 다른 종교의 출가 수행자와 모습을 다르게 하기 위함이요, 또 하나는 세속적 번뇌를 단절함을 뜻’ 하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佛敎 율문(律文)에 의하면 출가자가 머리와 수염, 손톱을 기르는 행위를 승모(僧貌)에 어긋난다 하여 금하고 있고, 삭발은 처음 출가할 때 하고 그 뒤부터는 보름마다 한 번씩 깎는 것이 통례이다. 삭발은 다른 말로 체발(剃髮) 또는 낙발(落髮)이라고도 하는데, 낙발은 세속적 번뇌의 소산인 일체의 장식(裝飾)을 떨쳐 버린다는 의미에서 낙식(落飾)이라고도 한며, 세속적 번뇌와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 출가인의 삶이다.


오늘날 ‘삭발(削髮)’ 이란 특별한 목적과 의미를 담아 머리를 깎는 행위이다. 佛家에서는 속세의 인연을 끊고 출가해 수행에 정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고, 가톨릭에서는 평신도가 수도자나 성직자로 입문하는 의미로 삭발례를 거행했지만 지금은 부제품의 직분을 받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근래 들어 대한민국의 경우 삭발은 군대 입대 전이나 벌칙 수행, 종교적 신념 등과 같은 때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TV나 신문에서 사진으로 보듯이 삭발은 주로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분노한 부분이 있을 경우 투쟁의 상징으로 삭발할 때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돌아보면 부처님 당시 인도(印度)는 불교의 수행자 말고도 집을 떠나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經典은 이들을 外道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부처님이 자신의 교단을 외도들의 그것과 구분하기 위해 불교의 출가 수행자들은 머리와 수염을 깎도록 하였던 것이다. 또한 부처님은 세속적인 번뇌와 얽매임을 단절하려는 결단의 상징으로 머리를 깎게 하였으며, 出家人이 머리모양에 연연하는 것은 출가의지를 흐리게 하고 無明을 증장(增長)시킨다 하여 머리털을 無明草라고까지 하였다니 현대를 사는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따금 듣는 ‘삭발(Tonsure)’ 이란 ‘큰 가위’ 라는 뜻으로 라틴어 ‘tonsura(큰 가위)’ 가 뿌리이며, 로만어의 이발사(barber)도 tonsor와 같은 뜻이다. ‘삭발’ 은 일부 종교에서는 더 높고 더 헌신적인 종교적 삶을 시작하는 의식으로서 머리의 일부를 자르거나 밀어버리는 삭발을 행하는데, 중세에는 삭발이 성직자와 세속인을 구별하는 기준이었으며 사제(司祭)가 세속적인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삭발의식은 그리스인들과 셈족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에는 자른 머리카락을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또 다른 이론에 의하면 삭발은 남성의 대머리를 흉내 낸 것으로 젊은 수련 수사(修士)들은 삭발을 통해 위신이나 권위를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 ‘삭발식(削髮式)’ 은 기독교(基督敎)에서는 성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가르침을 받다가 성직에 적합하다고 결정된 남자들에 한해서 엄격한 명령에 따라 행해진 의식이었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의 수도자들에 의해 시작되고 발전된 삭발식의 전통은 이후 7세기까지 가톨릭교회에서는 일상적인 일로 여겨지고 행하여 졌었다.

佛敎에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승려(僧侶)로 입문하는 의식을 치를 때 삭발을 하며, 그 후에 자격을 제대로 갖춘 승려가 될 때 다시 삭발식을 거행하는 것이 관례이며, 승려가 된 후에도 얼굴과 머리 모두를 깨끗하게 면도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수행에 정진하는 것이다. 태국과 미얀마에서는 많은 남자아이들이 삭발한 후에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종교적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힌두교도들은 소년시절에 정수리에만 머리를 남기고 다른 부분은 모두 삭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