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그 사람도 그립고, 맑은 술 향기도 그리웁다.

碧 珍(日德 靑竹) 2021. 8. 29. 12:19
그 사람도 그립고, 맑은 술 향기도 그리웁다.


예로부터 잘 알려진 대구 폭염도 한풀 꺾이는 듯하면서 지루하던 초가을 장마가 그치자 다시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가을날 정취는 슬며시 어디론가 가버려 아쉬운 마음이다, 유장한 세월의 흐름을 두고 세상사 인생사에는 변하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시시각각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변화에 잘 대응하면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삶의 의미 이듯 사람과 사람 사이 정(情)도 사랑도 그러하다.

지난 밤 三更무렵 창을 열고 잔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니 불현듯 떨어져 있으나 늘 함께 하고픈 윗녘 오전골 그 사람 보고픔이 여치 귀뚜리 울음소리를 타고 그리움 되어 가슴이 아리도록 생각나니 가을이 깊어만 가고 있는가, 처서를 지나 가을초입이 들어서니 어느 듯 무더위도 초가을 비속으로 잦아들었는지 조석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타고 오는 저녁이면 문득 문득 떨어져 지내고 있는 그 사람이 유별하게도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요즈음들의 자주 들고 있다.

그러면 해 저무는 저녁 독거에 홀로 상념에 잠겨 이일저일 생각하다가도 ‘너와 나’ 둘이 살고픈 사람아 하고 부르고 싶어지면, 그간 무심하였나 하고 자문자답하기도 한다, 늘 ‘고맙다, 사랑한다’ 고 가슴속으로 느끼면서도 그 사람에게 제대로 표시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리어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간 코로나 전염 탓에 일 년여 넘은 세월을 이별은 아니지만 헤어져 살아온 생이별의 아픔을 참고 살아온 삶은 코로나로 인한 물리적 헤어짐이라도 인연의 끝이 아님을 다시금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것이 너와 나, 우리사이 진솔한 정이고 사랑이고 소중한 인연의 삶이라고 자위하여 보기도 한다.

요즈음은 이른 새벽녘에 눈을 뜨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어느 이름 없이 글 쓰는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다고 하였다지만,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너와 나, 둘이 살고파라’ 고 외치는 소리는 비껴만 가나 죽도록 보고파 둘이 살고 싶다고 생각하다보니, 2015.5.3일 쓴 ‘너와 나, 둘이 살고파라’ 란 졸필이 생각나 적어본다,

     ‘두 날개가 있다면 / 푸르고 맑은 하늘 훨훨 날아 / 윗녘을 가고픈 마음은,
      그리움에 사무쳐 / 보고파 하는 마음 간절함에 / 날아서라도 가고파라,
      가서 오순도순 둘이 / 살고파라 숨쉬는 그날까지 / ‘너와 나’ 둘이 살고파라.’

하고 새삼스레 적어 보니, 그리움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둘이 살고 싶다는 것은 따뜻하고 바람직한 인간관계이자, 가슴을 가진 사람이나 영성을 갖춘 사람이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둘이 살고 싶다는 것은 곧 그리움이며 사랑이며 행복한 삶이다.

사람은 서로 갈리어 떨어지거나 헤어지는 별리(別離)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바램뿐 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에게는 그 혼자만이 걸어가야 할 숙명이 따로 부여되어있기에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또는 불가피하게 자기 혼자만의 길을 걸으며 정든 사람들과 별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서로 갈리어 떨어지거나 헤어지는 삶은 숙명이기에 어쩔 도리 없는 현실로서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일단은 이를 거부하려고 몸부림치게 되는 것이 또한 사람의 숙명적인 삶이다.

우리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생이란 길을 떠나는 나그네이다, 우리 사람은 만남이 오면 이별이 오고 이별이 오면 만남이 오듯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 하는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즐거운 삶을 얻으면 또 잃기도 하고 슬픈 삶을 살다보면 즐거운 삶을 맞아 살아가듯이, 삶이란 무엇을 얻었는가 하면 무엇을 잃어버리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의 삶이 아닌가 한다, 그러기에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이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소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 들어 나이 탓인지 한서 소무전(漢書 蘇武傳)에 나오는 ‘아침녘 풀잎에 맺혀 있는 이슬은 햇볕이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는 뜻인 ‘인생초로(人生草露)’ 란 말이 자주 떠올라 되새겨진다. 이는 人生은 ‘풀초(草) 이슬로(露)’ 란 말처럼 잠시 풀잎에 맺혔다가 허무하게 스르르 사라지는 이슬과 같은 것으로 그 찰나의 순간을 살다 가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마음에 담아야 하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여준다.


오늘도 여느 때 마냥 이른 아침 밥상 앞에 앉으면 반찬들을 보는 순간 그리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른거리며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무작정 달려가 보고 싶고 그렇게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지 느껴 보고 싶기도 하다. 지난 살아온 날을 돌아보니 이미 팔순을 앞둔 가을을 맞아서도 여치. 귀뚜라미와 이름 모를 풀벌레 울음소리 들리는 밤에 들국화 향기 그윽이 취하여, 즐겨 먹던 안주에다 청주잔(淸酒盞))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은 아직까지도 버려지지 않는다.

지금도 곡주(穀酒), 누룩냄새 나는 술을 좋아하며 때로는 斗酒不辭 하지만, 젊은 시절은 곡물로 빗은 淸酒인 正宗이나 藥酒나 쌀로 빗은 燒酒를 좋아하여 마실 때에는 겨울철이라도 늘 정종 대폿잔에 찬술로 먹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이 들고부터 찬 술보다 따사한 술을 마시면 취기가 오르면서 술맛을 음미할 수 있어 더욱 좋아 하였던 그 시절을 회상하다보니 입속 주향(酒香)이 그득하여진다, 이제 건강상 그것도 잊어야 할 때가 되었나 생각하니 나이 들었다는 것이 서글퍼만 진다.

이런 도중에 일기예보나 들을까 하고 TV 다이얼을 돌리다보니,

      ‘당신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사람인지,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 당신이 얼마나 내게 필요한 사람인지,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제 알 것 같아 요.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

라고, 애잔히 들려오는 노래 말 음률에 무언가 마음에 와 담겨지는 것은 어인일일까 한다.

근래 들어 날마다 이른 새벽녘에 올리는 새벽禮佛을 어이하다 여느 때처럼 올리지 못하다가 이 새벽녘 올리는 중 그 사람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가 부처님께 매일 올리는 禮佛하는 마음은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그 사람과 형제자매, 가족들과 인연들의 안녕을 위하여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바라는 마음이 전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하며 살아왔었지만, 되돌아보니 그간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염치없는 삶을 살아온 것이 늘 마음에 남아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