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귀뚜리 우는 새벽녘이면 그 사람이 그립고 보고파진다.

碧 珍(日德 靑竹) 2021. 8. 27. 20:26
귀뚜리 우는 새벽녘이면 그 사람이 그립고 보고파진다.


처서(處暑)를 지나 백로(白露)를 십여 일 앞둔 초가을 장마가 그친 이른 새벽녘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써늘한 느낌 속 찌르르 울어대는 여치. 귀뚜라미 등 이름 모를 풀벌레가 가을맞이 노래를 하니, 낮에는 고추잠자리가 맑고 높은 가을을 만끽하며 날아다닐 것을 생각하니 벌써 가을이 우리 주변에 다가 왔구나 하는 마음에 참으로 세월은 유수같이 간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이처럼 절후(節侯)라는 자연의 섭리는 무서울 정도로 때(時)를 어기지도 않고 엇갈리지도 않으며 진실한 모습 그대로 다가오니, 한 갓 미물과 다름없는 사람은 자연현상에 순응하고 절기에 조화를 이루는 삶에 대지처럼 후덕한 덕성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는가 한다.

白露 열하루날 앞둔 초가을 오후 한가로이 고추잠자리 나르고 높고 푸른 하늘에 가을바람 따라 한가히 노니는 흰 구름을 보니 天高馬肥之節. 燈火可親之節을 실감케 하는데, 서녘 산에 해가 넘어가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이 되니 냉기가 대지를 감돌자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울어대는데, 서북 편 하늘에 열아홉 날 달을 보니 가을이 깊었구나 하는 마음에, 지나온 일흔여덟 삶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가니 외할머님. 부모님. 원골로 그 사람 그리움에 보고픔에 외로움에 만감이 교차한다. 더욱이 이른 새벽녘 일어나면 그 사람이 더욱 보고 싶어지기만 한다.

모든 사물은 극에 달하면 기울기 마련이듯이 꽃은 화사하게 피었다가 몇 날이 지나면 시들듯, 여름날 폭염도‘모기도 입이 삐뚤어지고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절기인 처서가 지나면 한풀 그 세가 꺾이듯이,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예 풍속대로 농부들은 논두렁에 자란 풀을 깎고, 조상님과 부모님을 그리며 山居(산소)의 풀을 깎으며 은덕을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벌초(伐草)를 한다. 또한 여름장마로 인하여 물기가 있거나 젖은 옷이나 책을 바람에 쐬고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 거풍)도 이 처서가 지나는 무렵에 하는 예 풍속 중 하나이다.

어언 2년이 다 되도록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속된말로 집콕을 하다 보니 갑갑하고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이따금 동네 뒤 폐쇄된 옛 대구선 공원길을 거닐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네 재래시장을 들리기도 한다, 지난여름처럼 동네 재래시장을 이 저리 다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콩가루 물에 띄운 우무콩국을 보면 입속에서 콩가루의 구수하고 우무의 시원한 맛이 돌면, 어느새 외할머님께서 정들여 만들어 주시던 시원하고 맛있던 우무콩국이 떠오르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면 외할머님 마냥 정 많은 원골로 그 사람이 보고 싶어진다.

세월이 바람처럼 물처럼 無心하게 흘러가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희수(喜壽)를 지나고 나니, 어저께가 인생 칠순을 넘겼다는 마음으로 살아오다 어언 팔순을 바라보니 노년을 즐기기에는 늦었다고 하겠으나, 이는 살아보지 않은 사람의 생각일 뿐 인생은 어느 나이나 의욕과 용기가 있으면 살만한 것이며 또한 숙제가 없는 방과 후와 다름없는 게 노년 인생이 아닌가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은 늙어가면서 죽음을 향하여 때로는 서둘거나 서서히 죽음에 다가서는 시간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게 사람이고 또한 노년 인생이 안인가 한다.

그러기에 인생이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정처 없이 길을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삶이라고 들 한다, 우리 사람은 언제 떠나가는 가를 서로 몰라도 인연이 있다면 가다보면 만나고 갈래 길 만나면 헤어지고 하는 게 인생이고, 더 사랑하며 살 것을 하고 후회하는 것이 사람이나 뒤늦게나마 후회하는 ‘空手來 空手去’ 나그네가 또한 참 인생살이 아닌가 한다. 또한 진솔한 마음으로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면 인생을 관조(觀照)하는 여유로움을 보일 수 있는데 이것이 인생 노년에 남은 자투리 세월을 보람 있게 보내는 삶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立秋 處暑를 지나면 山河 들녘에는 흘린 땀의 결실을 수확하는 계절이라 농촌에서는 갖가지 농작물을 수확하느라 손이 모자라도록 즐거운 계절을 볼 수가 있어 그는 가을 들녘을 무척이나 좋아 한다. 가을이 오면 파란 하늘이 높아지면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 핀 길이나,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山河를 보며 걷다가 맑게 흐르는 계곡물에 연보라 九節草나 들국화 한 송이 따 띄워 보내려 손을 담그면, 어딘가로 무심히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면 떠나보낸 세월이 그리워지고 아쉬워지는 마음이 되며, 가을을 진솔하게 느낄 수 있고 많은 생각이 가슴에 머물게 하여 더욱 좋다. 그러면 세월의 흐름 따라 사람도 늙으며 가야할 길을 단 일초도 지체하지 않고 간다는 촌음약세(寸陰若歲)란 말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지금도 잊히지 않은 것은 달이 떠 伽倻山 깊고 넓은 골짜기 골마다 환히 비추는 날 밤이 되면 그 넓은 계곡 언덕자리에, 달이 뜨지 않는 밤에도 오로지 달을 기다리고, 달이 기운 아침에는 아쉬움에 꽃술을 닫지 못하여 기다리는 애절한 그리움의 상징인 노란 달맞이꽃(月見草) 수만 그루가 환히 피어나고, 흐르는 물소리 이름 모를 산새울음 풀벌레소리가 어울려 장엄한 symphony orchestra를 연주하는 장관을 보면 자연스레 흥이 돋아 잘 하지도 못하는 노래가,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고향 / 만나면 즐거웠던 외나무다리/ 그리운 내사랑아 지금은  어디/ 새파란 가슴 속에 간직한 꿈을/ 못잊을 세월 속에 띄워 보내리.
       어여쁜 눈썹달이 뜨는 내고향/ 둘이서 속삭이던 외나무다리/ 헤어진 그날 밤아 추억은 어디/ 싸늘한 별빛 속에 숨은 그님을/ 괴로운 세월 속에 어이 잊으리.’

하고, 그의 유일한 애창곡이었던 최무룡의 ‘외나무다리’ 가 어느 사이 불리어지던 55여 년 전 청운의 꿈을 꾸던 그날이 그리움 되어 다가오며, 그때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러기에 인생이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정처 없이 길을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삶이라고 들 한다, 우리 사람은 언제 떠나가는 가를 서로 몰라도 인연이 있다면 가다보면 만나고 갈래 길 만나면 헤어지고 하는 게 인생이고, 더 사랑하여 줄 걸 후회하는 것이 사람인데 뒤늦게나마 후회하는 ‘空手來 空手去’ 나그네가 또한 인생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태어나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진솔한 마음으로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다면, 인생을 관조(觀照)하는 여유로움을 보일 수 있는데 이것이 人生 老年에 그 사람과 더불어 남은 자투리 세월을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