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喪事에 대한 禮儀凡節도 모르면서 국민을 위한 국회의원 하나.

碧 珍(日德 靑竹) 2021. 7. 11. 16:14

喪事에 대한 禮儀凡節도 모르면서 국민을 위한 국회의원 하나.

 

 

(1). - 국회의원이, 父親喪은 예로부터 천붕(天崩)이란 말도 몰랐는가.

 

세상 어느 나라이든 그 나라만이 갖는 사회 관습과 도덕, 예의범절 그리고 각 종교의 믿음에 따라 각양각색 여러 법과 규율을 제정하거나 관습에 의한 법이 생성 존재한다, 우리주변에서 일어나는 경조사(慶弔事)가 그렇다, 즉 경사(慶事).상사(喪事)때 문제도 그러하나 이는 예의범절에 해당되는 관습이며 도덕적인 규범이다.

 

사람이 살아가며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친척들이나 또는 아는 지인(知人)이나 잘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問喪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문상(問喪)’ 은 장례에 찾아가 고인의 유족 등을 만나는 일을 뜻하는 말로, 問喪 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가(喪家)와 상주(喪主)에서 대하여 지켜야 할 예의(禮義)가 있다. 특히 東方禮儀之國이라 칭하는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기에 상가나 상주에게 무례(無禮)를 범하면 본인은 물론 자기 父母. 祖上까지 욕보이게 되는 게 현실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그러기에 말로 서로 소통하고 교감을 나누기에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가 천 냥 빚 갚는다’ 는 말이 있듯이 한마디를 할 때도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말을 하여야 한다, 특히 예로부터 집안 어른이나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시면 최고의 격식을 차려서 상주와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여온 것이 우리의 美風良俗이다.

 

우리의 미풍양속 이였던 相扶相助하는 관습이 근래 들어 그 실질 내용이 세월 따라 많이 변질 되어 가면서 좋지 못한 면이 회자(膾炙)되므로 인하여 사회적문제가 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특히 가까운 친지는 물론이지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람이나 불청객이 남의 경조사에 禮儀凡節을 무시하고 재를 뿌리는 행태가 잦게 일어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로 야기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기에 慶弔事가 있을 때에는 자주 대면하고 마주치는 사람들이라도 누구는 초청을 하고 안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은 자칫 소홀히 하였다가는 결례를 범하고 인심을 잃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경조사 통지를 하였던 아니하였던 간에 축하나 조의(弔意)를 하여주는 것은 우리의 미풍양속이나, 어떤 이해관계나 목적을 갖고 참석하거나 입이나 언론 등을 통하여 특히 남의 경조사를 왈가왈부하며 재를 뿌리는 것은 사람이라면 할 수가 없는 개망나니 짓거리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상부상조하는 미풍양속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이조 중종 때 최초로 ‘염전향약(鹽田鄕約. 呂氏鄕約)’ 의 실행 때문이라 하겠는데, 근래 들어 본래의 뜻과 많이 달리 바뀌고 변하는 것은 우려스럽기가 그지없다.

 

우리가 이따금 듣는 ‘남의 상사(喪事)에 머리를 푼다’ 는 속담이 있다, 이는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람의 목숨(生命)은 天命으로 고귀(高貴)한 것인 동시 사람의 죽음(死亡) 또한 귀천(貴賤)이 없는 것이다.

 

며칠 전 언론을 통하여 보고 듣는 중 아연실색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 내용인즉 남의 상사(喪事)를 두고 왈가왈부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姜병원 의원이란 못난 정치인으로 인하여 여당 및 동료 의원들은 물론 우리 정치판 체면에 오물 세례 끼얹는 작태가 일어났다는 것으로 국민을 경악케 하였다.

 

사람에게 죽음(死)이란 생각하기도 듣기도 두렵고 무서운 말 중 하나이다, 그러기에 살아 있는 사람에게 죽음은 누구나 가장 두렵고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지만, 지구상 존재하는 여느 생명체 중 사람은 유일무이하게 죽음을 미리 상상하거나 예언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두렵고 무서움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은 죽음을 맞닥뜨릴 때까지 까맣게 잊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때로는 죽음을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잊으려 노력하기 보다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이 삶(인생)의 과정 중 일부로 넣어놓는 것이 죽음을 대처하는 지혜로운 방법일 수도 있다고 하겠다. 그러기에 慶事때보다 喪事시에 어려움이 많고 복잡하고 많은(複雜多難) 일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람이 지나친 이해타산을 하다보면 어느 때인가 자기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사 이치인 것을 알아야 하겠다. 사람이 지나친 이해타산을 하다보면 어느 때인가 자기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사 이치인 것을 알아야 하겠다.

 

 

(2).  - 父親喪 當日 그런 짓거리하니 ‘市井雜輩보다 못하다’ 란 말 듣는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姜병원 의원이 부친상(父親喪) 중인 崔재형 전 감사원장이 대하여 ‘양상군자(梁上君子)’ 라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약 5시간 만에 올렸던 글을 삭제하는 작태를 벌였었다. ‘양상군자(梁上君子)’ 자란 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도둑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다.

 

특히 姜 의원이 비판한 날인 지난 7월 8일은 崔재형 전 원장의 父親이자 전쟁 英雄인 故 崔영섭 예비역 해군대령이 작고하신 날이다. 문제는 崔 전 원장이 父親喪을 당한 當日이라 강도 높은 비판을 하기에 시기가 적절하였냐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어 더욱 그렇다. 더욱이 崔영섭 대령(해사 3기)은 6.25 전쟁 발발 이튿날 대한해협 해전에서 북한군 600여명이 타고 있던 적 수송함을 격침시킨‘백두산함’에 타고 있던 전쟁영웅이라 전하여 오신분이다.

 

이에 지난 7월 8일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 金근식 경남대 교수는 ‘부친상은 예로부터 천붕(天崩)이라 했을 정도로 자식에겐 피맺히는 아픔’ 이라며, ‘崔재형 전 원장이 민주당에게 아무리 밉고 싫어도 적어도 天崩의 아픔을 겪는 동안만큼은 비난을 자제하는 게 맞다. 철천지원수라도 상을 당하면 조의를 표하는 거다’ 라며, 金 교수는 Facebook을 통하여 ‘인간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도 모르냐’ 고 질타하였다.

 

이어 金 교수는 ‘제가 아는 姜 의원이 그 정도 상식과 품격은 가진 걸로 압니다만 집권당 최고위원이라서 오바 하는 걸까요?’ 라며 ‘이 정도 인간의 禮儀와 品格마저 내팽개친 집권당 최고위원이라면, 梁上君子 정도가 아니라 市井雜輩만도 못하다’ 고도 말하면서, 그는 ‘남에게 梁上君子라고 비난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시기 바란다’ 며 ‘이러다간 짐승만도 못한 꼴이 된다’ 고도 덧붙여 말하였다. 아무튼 姜 의원이 부친상을 당한 崔 전 감사원장을 향해 맹비난을 퍼붓는 천박한 행태를 자행하였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꼴사나운 모양새가 되었다.

 

앞서 姜병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Facebook을 통하여 ‘국민의힘의 러브콜에 연일 엉덩이를 들썩이는 崔 전 원장의 작태는 애초부터 감사원장직은 ‘나의 대권 도전을 위한 하나의 발판’ 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꼴이나 마찬가지’ 라며,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감사원장직을 내던진 사람은 해방 이후 처음으로,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변명할 수 없는 국민에 대한 배신’ 이라고 하였었다.

 

이어 姜 최고위원은 ‘尹석열에 이어 崔재형 띄우기라는 ‘주가 조작’ 에 나선 사람들은 崔 전 원장을 두고 ‘미담 崔재형’ 이라고 하지만, 다수의 국민은 자신의 대권 도전을 위해서라면 감사원도 자신의 대선 캠프로 전락시키는 ‘야욕 崔재형’ 임을 알고 있다’ 고도 말하므로 젊은 객기를 부리는 모양은 꼴불견이다.

 

우리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누구나 영생불멸한 삶은 살수가 없는 게 사람이기에 죽음(死)이란 생각하기도 듣기도 두렵고 무서운 말 중 하나이기에, 부모나 형제자매. 자식의 죽음을 접하면 슬프기 마련인데 특히 자기를 이 세상에 있게 하여주신 父母님의 타계는 무엇보다 슬프다. 그러기에 부친상을 천붕(天崩)이라 하는 것이다.

 

무릇 사람이라면 男女老少는 물론 政治하거나 사업 등 업에 종사하거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생명은 귀중하고 존엄하기에 그 죽음 앞에서는 귀천이 없다. 그러기에 慶弔事시 慶事때보다 특히 남의 喪事시에는 喪主들은 슬픔 속에 어려움이 많고 복잡한 일이 많기에 禮儀凡節을 잊지 말고 사람으로서 本分을 망각하지 말고 최선 다하여야 한다. 자칫 그릇된 이해타산을 하다보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 제대로 사람구실을 못하게 되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人間末種에 가까운 사람으로 전락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때인가 자기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사 이치인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