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시사.

사람이 산다는 것은 쉽지만 않다.

碧 珍(日德 靑竹) 2021. 8. 2. 20:31
사람이 산다는 것은 쉽지만 않다.  


오늘날 우리는 不信(불신)과 不安(불안). 不況(불황)의 ‘3不 時代’ 시대에 살고 있다는 언론 보도나 대화를 통하여 이따금 듣는다. 우리주위 가까운 사이인 부모형제 등 가족 간, 부부 간, 친구. 동창 간의 불신에서, 멀리 국회. 사법부. 정부와 국회의원. 정치인에 대한 불신, 사회 구성원사이 불신, 거래 당사자 간의 불신, 교사와 학생간의 불신 등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뿌리 깊은 불신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만연되는 불신 풍조는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不安감 조성으로 인하여 파생적으로 생기는 문제로 사람과 사람 간, 특히 친구 동창 간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뜬소문(rumor)에 누가. 누구 가 어떠니 저러니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는 삶의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은, 우리 사람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우리가 그동안 아전인수식으로 소아병적인 행태로 살아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황폐하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한 단면이라 하겠으며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고 하겠다.

대개의 사람은 자기 자신을 한 번도 성찰하며 뒤돌아보지도 않은 것은 오직 자신이 제일이라는 자만과 오욕의 발로인 결과이다, 즉 스스로의 자질을 함양하지도 않고, 또 남들로부터 나만은 진정한 믿음을 받고 있다는 과대망상적인 생각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왜? 그들은 자기가 어디에 서있는지, 어떤‘깜냥’인지 모르는가, 아니 자신이 과욕. 탐욕이라는 오수를 마시면서 스스로 얼굴에 철가면을 쓰게 되고 철심장이 되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몰염치한 사람으로 변하는가를 알려고 하지 않은지 모를 일이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 사이나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신뢰(信賴)이다. 이 신뢰를 잃어버리면 不信의 싹이 트기마련이다. ‘不信’ 이란 풍조가 사람들 간에 만연하게 된 원인으로는 노력하지 않고 잘 되겠다는 생각에다, 과정을 무시하고 소위 대박을 꿈꾸는 사회분위기를 들 수 있고, 또한 관행화된 정직하지 못한 불치의 행태와, 사회구성원의 이기심과 상호 배타심 등으로 인한 사회연대 의식의 파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겪는 일 가운데 많은 부분은 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최선을 다하여 공을 들인 것들이나, 개중에는 본인이 원하지 않았거나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인 무의식중에서 일어나는 일도, 더러는 사람이 사람에 대하여 자곡지심(自曲之心. 허물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야속하고 섭섭하게 여기는 마음 )이나, 착각으로 일어나는 일도 있는데, 문제는 착각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은 일종의 병리현상이 아닌가 하는데도 대개는 착각으로 자기만족을 하고 사는 사람도, 특히 불쌍하기보다 측은지심이 들어 ‘깜냥’ 도 안 되는 사람 중 친구나 동창도 더러 있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그릇 크기를 스스로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신의 ‘깜냥’ 을 아는 사람은 자기생활과 사회발전에 최소한의 기여를 하지만, 자신의 깜냥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과 사회에 저해하는 모양새로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에‘인생사 부질없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우리 사람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조그마한 허물을 말하기나 밝히기는 어려워도 다른 사람의 허물은 침소봉대하여 가면서도 말하기가 참으로 쉽기에, 돌아서서나 뒤에서나 술 안주꺼리로 삼아 남의 말을 하는 게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는 흔히 있는 일로 다반사 일어나는데 오늘날 ‘깜냥도 안 되는’ ‘소갈머리가 없는’ ‘싸가지가 없는’ ‘거지 근성을 가진’ 행태의 사람이 사는 사회가 아닌가 한다. 그러기에 설익고 어리석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허황한 꿈과 욕심을 쫒다가 인생을 마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고 하겠다.

어언 팔순을 바라보며 지나온 삶을 회상하면 살아오는 동안 그래도 가깝게 지내온 친구로는 중.고등학교에서 동문수학한 친구들과 초등학교 대학교에서 만나 친구들이다, 생각하여보면 중.고등학교 동기동창은 한 생에 이들과 가장 많은 삶을 살아가면서 희비애락을 함께 하며 나름대로 인생을 살았다고 하여도 빈말은 아니다. 이제 사회 직장에서 하던 일을 떠나 모두들 안거에서 조용하게 지내는 게 대체로 오늘날 그와 친구들의 삶이고 현실이다.

우리 사람이 알거나 모르거나 ‘습(習)’ 이란 게 몸에 배여 있다, 習은 어려운 삶의 여정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열정이 담겨져 있는데, 그 열정은 고차원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며 삶을 사랑하는 것으로 귀결하고 있다. 習은 습관처럼 부적절하게 몸에 새겨진 일상적 관습을 연상시킬 것이라 하지만, 우리가 쉴 사이 없이 반복하는 숨 쉬기도 또한 習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모든 관계는 정상적인 習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 관계는 이내 깨어지고 말 것이며, 사람의 習이란 이렇게 惡習으로도 善習으로도 나타날 수 있기에 좋은 習을 가지도록 우리는 노력하여야만 하겠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나 좋은(善) 일을 하면 주변으로부터 칭송을 받게 되고, 어느 것이 참다운 영광이고 어느 것이 치욕(恥辱)인가를 가릴 줄 아는 나이가 된 八旬을 바라보니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사람의 욕심(慾心)이란 끝이 없음을 살고 있는 사회 주위를 둘러보면 절감할 수가 있다. 明나라 王守仁은 전습록(傳習錄)에서 ‘사람의 평생 가장 큰 병은 오만(傲慢)함에 있다고 하였는데, 오만은 불효 불충하고 자애롭지 못하면 반듯이 미덥지(信)못하다’ 라고 하였는데, 오만은 갖가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 그야말로 백폐(百弊)의 근본인 것이다, 그러기에 노욕의 병은 육신의 병이라면 남이 고쳐 줄 수도 있으나 마음(心)이 중병이면 스스로 고쳐 나가야만 하니 병치고는 큰 병이 아니라 할 수가 있겠다.

한 생의 삶을 정리하는 끝자락인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많은 사연들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에게 삶(人生)이란 자기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스스로의 길을 가는 삶을 살았을 때에 참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며, 또한 참된 삶의 길이며 참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인생의 방편이 아닐까 한다,사람이 살면서 불나비가 불꽃만 찾아다니다 불에 타 죽듯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물질적 욕망과 외형적인 모습만 쫓는 삶을 살아 왔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삶은 진솔한 내면보다 헛된 외모만 더 중요시 하며 살아온 삶이니 결국 이런 유(類)의 사람을 두고 불나비처럼 진실보다는 허상만 보고 살아 왔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