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우리는, 우리는(1).

碧 珍(日德 靑竹) 2021. 4. 30. 11:40

우리는, 우리는(1).

 

 

열흘 전 곡우(穀雨)를 지나고 닷새 후 여름 초입에 들어가는 立夏를 앞두고 아침저녁 낯 기온이 여름 날씨마냥 벌써 무더워짐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따가운 날씨이다. 코로나19 전염 탓으로 방콕 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건강을 위해 공원길이 된 폐 舊大邱線을 따라 아양철길다리를 다녀오는 게 일과가 되었다. 따사한 햇살아래 아양철길다리 위에서 보는 강물 빛도 그렇지만 강변 파릇한 수양버들은 늘어지고 이른 여름을 알리는 꽃들이 피어나 오가는 이들에게 눈과 몸으로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여주는 게 좋다. 古稀를 넘기고 인생 황혼기에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 무언가 아쉬운 마음 된다. 이런 날이면 그 사람이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것은 人之常情이다.

 

우리 사람은 누가 오라하지 않았어도 저 세상으로 부터 왔고, 허락하지도 않아도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가듯이 찾아 온 것과 여히 떠나가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佛家에서 말하듯이 한 목숨이 태어남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과 같고, 한 목숨이 죽어 감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그러기에 사람의 인연이란 인과(因果)관계라기보다 천연(天緣)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기에 뜬구름은 그 자체는 본래부터 없는 것이듯 인연의 오고 감도 그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오늘 이른 새벽녘 이것저것 생각다 “人生은 ‘一刻 如三秋’ ” 란 말이 떠올라 한참 생각하다가, 불현듯 2015년 5월 3일 새벽에 적어보았던“‘너와 나’둘이 살고파라.”란 글이 되살아 기억난다.

 

     ‘두 날개가 있다면 / 푸르고 맑은 하늘 훨훨 날아 / 윗녘을 가고픈 마음은,

      그리움에 사무쳐 / 보고파 하는 마음 간절함에 / 날아서라도 가고파라,

     가서 오순도순 둘이 / 살고파라 숨쉬는 그날까지 /‘너와 나’둘이 살고파라.’

 

고 쓴 글을 다시 한 번 읊다보니 인생사 허무하고 세상사 어렵다고 생각이 드니 만감이 교차하는 새벽이 되었다.

 

우리 사람이 사는 이 세상은 사람은 자신과 관계, 다른 사람과 관계, 세상 모던 주위와 관계, 흐르는 세월과 관계, 보이지 않는 무엇과 관계 등 복잡다단하게 한 생을 살아 가야하는 천태만상의 세상이 ‘너와 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우리가 사는 세월이란 시간이 영겁을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고, 우리는 그 시간 띠(帶)위에 한 점의 외로운 존재 일뿐이라 하겠다. 이런 외로운 존재인 우리, ‘너와 나’ 사이의 연분인 인연(因緣)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인연이란 늘 가까이서 삶의 동력을 주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여주며 외로운 존재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伴侶者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人生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을 주는 인연은 어떤 인연일까,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번의 여러 형태로 만나는 인연(因緣)이 있다고 한다, 혹여는 인연이 없는 사람도 늦어 막에 닿는 ‘늦깎이 인연’ 의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니 성격이나 주위 사정 등 여러 여건 때문에 인연이 닿지 않는 사람, 인연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가 다시 운이 좋아서 숙명적으로 좋은 인연을 마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인연도 만날 수가 있기에, 만나는 인연에 따라 희비애락이 따르는 게 사람의 인생이고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인연(因緣)’,  참 아름다운 말이고 인간관계의 고리를 표현하는 적절한 말이다. 인연이란 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래전 어느 날 절(寺刹)을 다녀오면서부터 전하는 말과 佛經 등 여러 책 속에서 접하고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회고된다. 보편적으로 우리 인생에 중요한 인연(만남)이 세 번 있다고 들 한다, 그러나 우리 佛者에게는 또 다른 고귀한 因緣이 하나 더 있다. 첫 번은 부모님과 인연이고, 두 번째는 스승님과 인연이요, 세 번째는 배우자와 인연이고, 또 다른 고귀하고 소중한 인연은 “부처님과의 인연(만남)” 이다.

 

되돌아보니 ‘너와 나’ 우리가 늦깎이로 만난 인연이라도 참으로 고귀하고 소중한 인연이다. 그 사람이 그의 인연인가 보다 생각하다보니, 외모의 느낌은 약 하디 약한 이름 없는 보라 빛 들풀 꽃이나, 생활 속에서 내면을 보면 억새풀처럼 강인하고 집념이 강한 사람이다. 누가, 왜 그 사람을 이렇게 강하면서도 향기로운 사람으로 변화 시켰는가, 이 강인함이 외모에서나 내면에서 풍기는 사람의 정취에 가리어 느끼지 못하게 함은 그 사람의 평소 확실한 불심과 자기철학에서 생활을 바르게 하여왔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좋아하고 좋아하다 보니 어느 사이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흐뭇한 마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