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보고 싶다, 너무나.

碧 珍(日德 靑竹) 2021. 3. 12. 21:35

보고 싶다, 너무나.

 

 

 

언 듯 볼을 스치는 바람은 벌써 봄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에 주위를 돌아보니 바람결에 실려 오는 봄내음, 따사한 봄볕, 새소리 그리고 들녘에 파릇파릇 풀잎과 수양버들이 푸르러지면 봄은 벌써 그곳에 와 있다. 그래서 당나라 두보(杜甫)는‘바람 따라 밤중에 몰래 숨어 들어와 촉촉이 소리도 없이 만물을 적셔주는 봄비’를 반겼다고 한다, 여보, 우리도 이제 가슴을 활짝 열고 봄내음 맞이하려 山河로 나가보는 것도 살아가는데 활력소가 되겠기에, 절기에 맞춰 찾아오는 날씨처럼 언제 完然한 봄바람이 이내 가슴에도 불어올까 마음조리는 아침이다.

 

사람이란 태어나면 살아가면서 사는 동안 인연(因緣)이 있으면 만나고 만나면 헤어지기를 되풀이 하며 자의든 타의든 예지세계(叡智世界)로 필히 가기마련인데도, 불행하게도 지난 경자년 초 이래 중국 무한 발 Corona virus 감염증 확산으로 걷잡을 수 없어 활기 넘치든 온 나라와 국민들은 전대미문의 어려운 가운데 코로나19가 보여주는 위협적인 위력 때문에 정신적 괴리감에다, 외출을 자제하다보니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가 없고 가고 싶은 곳을 못가는 등 특히 심리적 불안상태(panic)로 무기력에 빠져 안타깝기가 그지없는 가운데, 일 년 여 넘게 방콕-족이 되다보니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여간 불편하고 어려움으로 우리들의 삶이 생이별과 다름없어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근래 들어 이른 봄 날씨 속 새벽예불하려 포근한 이른 새벽에 일어나면 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는데 일어나는 가운데, 백수풍진세상을 벌서 외길 희수를 지나 칠십팔년을 지나고 보니 세상사 인간사 쉬운 삶이라기보다 어려운 세월에 끌려 살아왔다는 회한(悔恨)이 휴복(休福)보다도 가득하니 그도 하잘 것 없는 사람이라 생각이드나 후회 없는 삶을 늘그막 되도록 살아왔는가 싶다.

 

그러다 보니 이제 방콕-족이 되어 표현 할 수가 없을 만큼 답답하고 숨 막히는 나날을 기약도 없이 무력한 생활을 하고 있는 신세가 된 가운데 오랜 세월을 혼거. 혼식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하루‘삼시세끼’를 먹기가 어려운 중 반찬(飯饌) 조달이 큰 문제이나, 그 사람이 부쳐주는 여러 가지 탕(국)과 고기나 생선류 졸임 및 양배추김치 등 채소류 반찬이 식탁에 올라 입맛을 북돋아주기에 그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튼 그는 당신 보살핌으로 행복한 사람 중 한 사람인가보다.

 

우리나라도 장수시대를 맞았다며 좋은 세월이라고들 하지만 갈수록 우리의 노후의 삶은 고독과 절망감 속으로 빠져드는 게 오늘날 사회이다.‘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처럼 홀로 사는 노후 삶의 무심함과 고독감으로 외로움. 보고픔으로 가슴이 비어 있다. 그런데 홀로 사는 생활 중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어니 하여도 삼시세끼 식사 문제 해결이 아닌가 한다.

 

 

일 여년 코로나19 사태로 그리움과 보고픔 외로움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보니 마음속엔 나름대로 무엇이 쌓여만 간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세월이 흘러 먼 훗날이 되어도 가슴 속 깊이 새겨져 있고 아름답게 남아 있을 그리운 사람, 보고픈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 아무튼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늘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활력소이며 세월이 흘러가는 것도 늙어가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가슴에 와 닿는 것이기에,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는 것이다.

 

어느 이름 없이(無名) 글 쓰는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어서 自己가 부르는 사랑하는 님의 이름이 비껴만 가니 부르다가 죽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하늘과 땅 사이가 넓기 때문에 그 이름도 죽도록 불러 볼 수가 없다고 하였었으나, 그는 이름이라도 죽도로 불러볼 것이다, 그리움, 그리움을 생각하다보니 2016.9월에 쓴‘이거(離居)의 아픔은’이란 졸필이 생각나 적어본다,

 

‘ 그대는 떨어져 그리워하며 사는 / 離居의 삶을 아는가,

외롭다는 것은 살을 베는 / 고통보다도 아프다는 것을

보고픈 마음은 간절함을 넘어 / 애절한 가슴 아픔이니

그대 알고나 있는가, / 離居의 고독함은 무엇에 비하리.’

* 離居(이거); 멀리 떨어져 따로 사는 삶.

 

이어‘이거(離居)의 아픔은’後記를,

 

그대 그리워하는 마음, 바람 따라 / 하늘 높이 멀리 멀리 띄워 보낼까

그래도 못 잊는다면 어찌 하오리까,

 

‘잠에서 깨어날 때, 잘 잤니, / 잠자리 들어갈 때, 잘 자요’늘 하고픈,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시작하고 / 행복한 하루를 접는 꿈을 꾸어

온 삶이 / 다시 돌아오지 못 할 강을 건너 와있나.’

 

 

하고 적고 보니, 그리움이나 사랑은 가장 따뜻하고 가장 바람직한 인간관계이자, 또한 그러한 관계를 맺고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이자 또한 마음의 움직임이다. 가슴을 가진 사람 그리고 영성을 갖춘 사람이 서로 마음을 주고받고 만나며 사귐을 갖는 것이고, 그것들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곧 그리움이며 사랑이다. 그리움과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가 아닌가, 그리움이 있기에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기에 그리움이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그리움도 사랑도 없다면 삶이 외롭고 쓸쓸하여 사막처럼 척박하여 얼마나 불행한 삶이 아니겠는가.

 

이른 아침마다 밥상에 앉으면 반찬들을 보는 순간 그리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른거리며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무작정 달려가 보고 싶고 그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느껴 보고 싶기도 하기에, 2015년 9월 15일 日記를 적어보면,

 

‘다녀 간지 아흐레날도 되지 못한데도 / 이 새벽녘 이러히도 보고픈지

내일은 오시러나 언제쯤 오실까 / 그리워하다가 못내 서러운 이 가슴,

베개 맡에 묻어있는 머리카락 보는 순간 /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

그리도 보고 싶은 그대 생각에 / 그리움만 가슴속 깊이 쌓여만 간다네.’

 

하고 마음을 글로 북녘하늘에 띄워 보낸다.

 

되돌아보면 사랑하는 사람이란 곁에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진정으로 그리운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움에 사랑에는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이니 만나고 그리워하며 세월이 흐르는 오늘 이 순간순간을 후회 없도록 흡족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사는 게 현명하고 올바른 삶입니다. 그리워하면서도 사랑하면서도 만날 수 없으면 삶에 그늘이 지며, 그리움이 사랑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만남이라 하겠다.

 

그리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정을 주고받는다.’고 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뜻 깊은 말이 아닐 수가 없다, 따라서‘애뜻하다’고 표현된 그리움, 간절하다고 말한‘따름’이라 등 마음의 움직임을 포함하는 소망 열정 욕망 등이‘그리움. 사랑’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그런 면에서‘마음을 준다’또는‘마음을 바친다’라는 말로, 또는‘정을 준다’등의 말로 그리움이나 사랑이라는 행위를 표현하는 것은 자못 뜻 깊은 일이다. 그의 그리움.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애절한 그리움이 사랑이 아닐까, 그의 못 잊어 하는 사랑이 그리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