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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金원웅 光復會長 멱살을 잡았겠는가(2).

碧 珍(日德 靑竹) 2021. 4. 18. 15:51

오죽하면 金원웅 光復會長 멱살을 잡았겠는가(2).

                                                                              - 金원웅은 反日 竹槍歌부르며, 뒤로‘光復會’팔아 自己 政治하는가.

 

2020년 光復會 회장으로 있는 反美.從北 주의자 金원웅은‘독립운동가 崔재형상’을 상을 만들었는데 그동안 더불어민주당 정치인 3명에게 잇달아 상을 주는 행태를 자행하였다. 문제는‘(주)崔재형 기념사업회’가 이미 같은 이름의 상(償)을 제정하였는데도 光復會는 이들과 협의도 없이 또 償을 만들었다. 이에‘(주)崔재형 기념사업회’측이 항의하자‘회원들이 쳐들어간다고 벼르고 있다’고 하였다고 하였다니, 이름을 가로챈 것도 모자라 협박까지 한 행태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겠다.

 

아무튼 金원웅은 광복절 기념식장에서‘李承晩은 親日派와 결탁했다’며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애국가 작곡가 安익태 선생을 민족 반역자로 낙인찍었으며, 6. 25전쟁 영웅 白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저지하겠다며 운구 차량을 가로막았으며, 白 장군을 높이 평가한 주한 미군 사령관을 본토로 소환하라는 서한을 백악관에 보내기도 하는 反國家的 과오를 범하였다. 그런 반국가적 해태를 자행하면서 金원웅은 6.25 남침에 공을 세워 金일성 훈장을 받은 北韓의 金원봉의 서훈을 주장하고, 국가 기간시설 파괴 모의로 투옥 중인 李석기 전 통진당 의원을 찬양하는 행태는 광복회장으로 있을 수 없는 꼴불견 행태가 아닌가 한다.

 

이어 金원웅은‘朴근혜 보다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자란 金정은이 낫다’고 하므로 북한 핵 개발을 옹호하고 미군 철수와 韓美 동맹 포기를 주장하는 등의 從北 행태는 있을 수가 없는데도 어떤 이유로 관계 당국은 묵과하고 용인하는지 궁금하다. 문제는 정권이 反日 竹槍歌를 부르며 정치 선동을 하는 뒤에서 이런 金원웅 類의 從北 인사들이‘獨立運動’과‘光復’을 팔아 自己 政治를 하고 있기에 하루 속히 우리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사라져야하겠다.

 

追信 -

       金원웅 이란 人間은?.

 

金원웅은 1944년 3월 8일 중화민국 쓰촨성 충칭시에서 태어났다. 광복 후 父 金근부와 母 전월순은 8.15해방과 더불어 귀국 후 大田에 터를 잡았었다.

 

金원웅은 대전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정치학과 입학하고, 졸업 후 그동안 자신이 반대해왔던 집권여당‘민주공화당’사무처 당료가 되었고,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고 이듬해에‘민주정의당’이 창당되자 金원웅은 바로 민주정의당으로 옮겨 사무처 직원으로 일하였으며, 1990년 3당 합당이 성사되어‘민주자유당’이 탄생하자 金원웅도 민자당 당원이 된 경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앞서 그는 서울대 재학 중 朴정희 대통령의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반대하다 투옥되는 등 열성적으로 학생운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거대 여당에서 설 자리가 없자‘꼬마 민주당’으로 옮겨 1992년 14대 총선에 당선되었으나, 그 뒤 재선에 실패하고1997년에 갑자기‘한나라당’창당에 합류하여 2000년 16대 총선에 재선을 한다. 2002년 大選 직전에는 盧무현의 인기가 오르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한다.

 

金원웅이 자신이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꼬마민주당, 한나라당, 개혁국민정당, 열린우리당 등 7개당을 전전하며 입지를 구축하여왔듯 철새 정치인으로 당 이력이나 역사도 하나의 얼굴이 아니다.

 

그러다가 2004년 제17대 총선‘열린우리당’후보로 3선이 되어 상임위원장도 역임한 이후 2008년 제18대 총선에 패배하고, 2010년 지방선거 대전 시장에도 패배하자 결국 정계 은퇴를 하였다. 2015년 남북 민족 운동 모임인‘민주통일정치포럼’을 창립했고 일흔 다섯의 나이인 2019년 6월 제21대 광복회 회장이 되었다.

 

아무튼 金원웅의 오색 무지개 색 삶을 비난하거나 질책할 필요도 없으며 그가 어떤 연유로‘철새의 삶’을 살아왔는지 알 필요도 않다. 인간의 삶이란 게 대략 그렇듯이 자기 신념과 의지대로만 살거나 살아질 수 없는 게 삶이며, 그리고 이(利)를 쫓는 삶도 염(念)을 추구하는 삶도 본질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

 

金원웅의 행적을 두고 한편에선 표리부동하고 이율배반적인 철새라 비난하고, 다른 한편에선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과거의 삶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옹호하나, 金원웅은 카멜레온(chameleon)처럼 변덕스러운 삶과 처세로 스스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金원웅이 자신이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꼬마민주당, 한나라당, 개혁국민정당, 열린우리당을 전전하며 입지를 구축하여왔듯 역사도 하나의 얼굴이 아니고 온갖 영광과 치욕이 뒤섞여 있다.

 

혹여 金원웅이 자기 삶을 뒤돌아 성찰하여본다면 결코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직선적‘친일청산’발언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또한 白선엽 장군에 대한 막말에다 과거행적에 대해서만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등 지금과 같은 행보와 언설을 할 수가 없을 것이며, 자기주장대로 親日을 몰아내야 正義가 세워지고 진짜 光復이 온다면, 우선 친일 군부독재 세력과 타협하고 그들의 이름으로 정치를 하여온 자기 자신을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