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합장반배(合掌 半拜)에 대한 小考.

碧 珍(日德 靑竹) 2019. 5. 25. 14:18

 

 

 

합장반배(合掌 半拜)에 대한 小考.

 

 

 

(1).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는 천지자연의 섭리 중 절후(節氣)라는 것은 무서울 만큼 정직한 자연 현상이다. 이곳 大邱는 만물이 점차 자라서 가득 찬다며 이때부터 여름 기운이 들기 시작하는 소만(小滿)小滿을 겨우 지났는데도 연일 34~5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지속되니 벌써 한 여름이라 느끼며 잠이 들었는데,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다소 시원하다기보다 싸늘함에 잠을 깨어나니 그리운 인연들이 스쳐지나간다.

 

사람이 살면서 사람답게 살려면 예절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예절(禮節)이란 절(寺刹)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 어디서나 가장 가벼운 느낌으로 지켜야 할 도리, 관습을 궁극에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운 보통사람의 규범이다. 하물며 중생의 미혹함을 깨우쳐주고 인감답게 살기를 인도하시는 부처님을 모신 절에서는 불자든 아니든 기본적인 예를 갖추는 게 최선의 아름다운 행위인 것이다.

 

무릇 절 문안에 발을 들여 놓았다면, 절에서 스님과 법우를 마주치거나 법당 앞을 지날 때는 이야기 등, 하던 일을 잠시 접고 걸음을 멈추고 合掌 半拜 하는 것이 일반 예의이다. 법당에 들어 갈 때는 어간문(중안문)을 삼가 피하고, 양 옆문을 사용하여 출입하여야하며 들어가서는 먼저 부처님을 향하여 공손하게 合掌 半拜 하고 반드시 부처님 정면 자리에서 보다 법당 내 상황에 따라 적당한 위치에 三拜 올리는 게 옳다.

 

여느 때처럼 하는 이 새벽 五更녘에 하는 禮佛 기도는 한마음 다하여 부처님께 귀의하고 감사하는 합장(合掌)의 마음 이자, 자신의 삶을 넉넉하게 하는 정성의 길이요, 마음에 복악을 가져오는 부처님과 自身이 만나 하나 되는 인연(因緣)이며 合一의 길이다.

 

예불(禮佛)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께 예배드리는 것으로서 절을 올리며 공경의 표시를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예불에서 우리의 예배대상은 역사 속의 석가모니(Gotama Siddhrtha)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를 포함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하여 있는 佛性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기에 예불이란 순간순간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즉 存在의 참됨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할 것이다.

 

우리가 사찰에서나 스님과 마주칠 때는 흔히 볼 수 있는 불교식 인사법인합장(合掌)이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서로 인사를 하거나 부처에게 절을 할 때 두 팔을 가슴께로 올려 두 손바닥과 열 손가락을 마주 합치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에 合掌은 불교적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자신을 겸양하면서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의 표시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合掌은 불교적 예법으로 외면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낮춘다는 下心의 뜻을 담고 있으며 下心은 곧 자신을 겸양하면서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의 표시이다. 반면 내면적으로는 흩어 진 마음을 청정한 一心으로 모아 인간의 숭고한 본래 모습에 귀명하는 경지를 나타낸다. 즉 자신의 번뇌. 망상을 타파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인간의 숭고한 본래 모습에 귀명하는 경지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부처와 중생이, 너와 내가 하나 됨을 나타내는 것이다. 合掌은 불자의 기본자세로 합장을 통하여서 나의 마음을 모으고, 나아가서 나와 남이 따로 없이 하나의 진리 위에 합쳐진 동일 생명이라는 무언의 선언이기도 하다.

 

合掌하는 모습으로 부처님께 향하였을 때는 서원(誓願)이라 하고, 스스로 수행의 뜻을 가졌을 때는 인계(印契)이며, 사람을 향하여 예를 갖추면 합장례(合掌禮)가 된다. 또고두례(叩頭禮)원반배(唯願半拜)라고도 하며 엎드린 채 고개와 두 손만을 들어 합장하는 것이며, 3배나 108배의 마지막 번째 절을 하고 일어서기 전에 아쉬움과 간절함에 일어나는 예법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合掌은 가슴 앞으로 두 손바닥을 합치고 열 손가락과 좌우 손바닥을 모아서 부처님 또는 보살을 공경 예배하는 불교의 예법으로, 합장은 손가락과 손바닥을 모으듯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모아서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공경을 나타내는 뜻이 있다.

 

또한 合掌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인도의 예법으로 공경을 표현하는나마스테(namaste)라는 말과 함께 서로 합장을 하는 것은 인도에서뿐만 아니라 스리랑카. 미얀마.국. 베트남 등지에서도 일상적인 인사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인도에서는 오른손은 신성한 손, 왼손은 부정한 손이라고 구분하여 사용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러한 양손을 합하는 일은 인간 내면의 신성한 면과 부정한 면을 合一 시키는데 이는 인간의 진실 된 모습이 있다는 사상의 표현이다.

 

合掌에는 12합장, 즉 12종류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연화합장과 금강합장이다. 연화합장(蓮花合掌) 은 두 손바닥과 열 손가락을 밀착해서 붙인 모양이 연꽃 봉우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합장은 부처와 중생이 하나 된 상태를 나타내며 귀의합장(歸依合掌)이라고도 하고 現敎에서 통용되고 있다.

 

금강합장(金剛合掌)’은 연화합장을 한 상태에서 오른 손가락이 위로 오도록 하여 열 손가락을 엇갈리게 하는 합장으로서, 금강처럼 굳고 단단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합장은 선정과 지혜가 서로 상응하고, 이치와 지혜가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하며 귀명합장(歸命合掌)이라고도 하며 밀교(密敎)에서 통용되고 있다.

 

 

(2).

사람들이 사찰에서나 스님. 도반을 마나다 보면 반배나 합장반배란 말을 많이 듣게 된다,반배(半拜) 합장하고 허리를 숙이면서 하는 인사를 말하며저두례’‘저두배라고도 한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의 삼보(三寶)에 예경(禮敬)을 올리는 절은 오체투지(五體投地)의 큰 절이 원칙이지만, 장소와 사정에 의하여 큰절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때에는 합장하고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하는 半拜를 드린다.

 

보통 사찰을 찾으면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에, 삼보의 도량에 들어서서, 또한 나오기 전에도 일주문 앞에서 合掌 半拜로 시작을 하고 또 끝내게 된다. 또 법당에 첫발을 들여 놓고, 또한 나오기 전에도, 절을 시작하기 전에, 또한 절이 끝냈을 때, 도량을 거닐다 스님과 불자님들을 마주칠 때도합장 반배로 인사를 한다.

 

合掌하고 半拜를 드리는 경우는 부처님의 지혜와 덕성. 자비를 우러러 합장하고 일심이 되어 몸을 굽혀 지극 존경의 뜻을 나투는공경례가 절로서 표현되며, 절을 하며 예배드린다는 것은 三寶께 禮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3배 이상 7배나 21배나 108배를 하더라도 그 내용은 역시 삼보께 예경이 되는 것이며, 삼보께 큰절을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三拜를 올리는데 이것은 三業을 바쳐서 禮敬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반배(半拜)는 三寶에 예경을 올리는 절은 큰 절이 원칙이지만 사정으로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반배를 한다, 半拜는 절 입구에서 법당을 향하여 절할 때, 길에서 스님이나 법우(法友)를 만났을 때, 옥외에서 불탑에 절을 할 때, 야외에서 법회를 할 때, 옥내법회라 하더라도 동참 대중이 많아서 큰 절을 올리기 적합하지 않을 경우, 3배나 108배, 1080배, 3000배 등의 오체투지하기 전과 마친 후, 부처님 앞에 헌화를 하거나, 향, 초 그 밖의 공양물을 올리기 직전과 올린 후 법당에 들어가거나 나오기 전 기타 필요시 등 이럴 때 한다.

 

또한 半拜를 앉아서 하는 경우에도 서서 半拜 할 때와 마찬가지로 앉은 채로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하며, 반배 할 때 손끝이 위를 향하도록 하며 합장이 흩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는 몸과 손이 일체가 되어서 움직여야 하며 손을 흔든다든가 몸과 손이 각각 움직이면 안 되는 것이다.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사람의 일생이 덧없이 흘러갔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인생여정(人生旅程)의 끝자락에 서 있다. 개천물이 흐르지 않고 고였을 때는 썩기 시작하지만 계속 흘러간다면 모여 강물이 되고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게 되듯이, 날마다 정좌하고 앉아 한마음이 되어 기도정진 할 때 부처님과 나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또한 무심하게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돌을 뚫듯이 날마다 기도하는 마음은 모든 우주를 변화시키는 생명의 원천적 에너지가 되며, 부처님의 말씀에도저하고 의심 없는 믿음이 있을 때, 그 믿음은 모든 것을 성취시키는 어머니가 된다하시었다. 그런데도 혹여 사람들은 흘러가는 세월에는 애당초 감정이 없는 것이나 그런데도 그 세월을 두고 無情하다고 푸념들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