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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여당. 야당, 갈등의 정치 한해였다.

碧 珍(日德 靑竹) 2009. 1. 5. 18:15

     

    2008년은 여당. 야당, 갈등의 정치 한해였다.

     

     



    우리 정치권은 2008년 한 해 동안 하루 없이 싸움과 갈등의 연속이었는데, 여.야 갈등은 물론이고 여당인 한나라당은 여당 나름대로 집안싸움에 10년 만에 되찾은 집권 첫 해를 허송하였고, 야당들도 나름대로 노선 갈등이 끊이질 않아 싸움으로 일관하다고 해가 저물게 되었다.


    그래서 여당 내를 들여다보면 대선 때문에 2007년 한 해 동안 親李 진영과 親朴 진영으로 나누어서 내내 싸워왔던 한나라당은 집권당으로 새 출발하면서도 양 진영은 그 골을 메우지 못하였고, 李 대통령 당선자와 朴 전 대표는 1~2월조각 때 화합의 계기가 있었지만 국무총리 직을 제의했느니 않았느니 하면서 오히려 사이가 더욱 소원하게 되었고, 그 뒤로 4월 총선에서 親朴 진영 핵심 의원들을 탈락 시키므로 공천 파문 뒤로는 사실상 한 지붕 두 살림 상태에 빠져들어 지금도 동상이몽의 동거 살림을 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親朴연대라는 세계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정당까지 만들어지면서, 벌어진 두 진영의 골은 연말까지도 親朴 진영으로 넘어온 월박(越朴)의원 및 낮에는 親李 밤에는 親朴인 주이야박(晝李夜朴)의원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까지 끝없는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주류인 親李와 비주류 親朴 간의 싸움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주류인 親李 내부에서는 다시 李 대통령의 친형인 李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한 親형님 세력과 親李재오세력 및 소장파로 나누어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당권 다툼도 벌어 벌어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주류 내부 갈등은 연초 조각 작업 때 鄭두언 의원과 朴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의 틈에서 시작하게 되어, 4월 총선 공천에서 李재오와·鄭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한 55인의 소장파들이 李상득 의원의 불출마를 공개 요구하는 상황으로 번졌었고, 공천 과정에서도 주류 핵심들끼리 서로 자기 사람 심기에 몰두한다고 상대방을 비난한 사태로 발전하였다.


    여당 내 집안싸움의 후유증으로 李재오. 李방호. 鄭종복 등 주류 진영의 핵심 의원들이 총선에서 대거 낙선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연말까지도 李재오의 복귀를 놓고도 주류 내부에서는 의견을 달리 하는 등 갈등이 치유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자 여당 내부에선 이 밖에도 洪준표 원내대표. 林태희 정책위의장 등 新주류까지 등장하게 되었고, 南경필. 權영세. 元희룡 의원 등 과거의 소장파들은 중립 지역에 머물면서 여권은 4분5열 된 상황으로 2008년을 보내며 속을 태워야 하였다.


    또 한편으로 여당인 한나라당만큼은 아니지만 민주당도 역시 내부 갈등이 만만치 않았는데, 대선 패배의 책임을 놓고 盧 전 대통령을 추종하였던 親盧 세력과 朴상천 의원 등 과거 민주당 본류 및 孫학규 전 경기지사 등 새롭게 야권에 합류한 세력이 갈라져 논란을 계속하여 왔었다.


    그래서 전당대회를 거쳐 중도성향의 鄭세균 대표 체제가 출범하였지만 金근태. 鄭동영 전의원계 의원들과 千정배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강경·선명 노선의 민주연대를 발족하면서 노선 투쟁이 시작되었는데, 이들은 현 정국을 다시 과거의 民主 대 反民主 상태로 규정하고 대여 강경 투쟁을 내세우면서 민주당 지도부를 압박하여 왔었다.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金대중 전 대통령 등 호남을 중심으로 한 세력을 한 축으로, 또 盧무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급진적 진보 성향 세력을 한 축으로 한 전직 대통령 세력 간의 갈등도 야당 내부를 더욱 분열 상태를 만들고 시끄럽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은 여당이나 야당 모두 내부를 정비해야 하는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갈등에 갈등으로 연속하였었던 한 해가 되었으며, 또한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이나 야당이나 2009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당내 갈등이 시작될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예견하고 있고, 이런 내부 갈등은 마찰계수가 어느 정도까지 높아지느냐에 따라 정치권 전체의 재편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보는 게 대다수이다.


    22일 한나라당은 미국 체류 중인 李재오의 내년 초 복귀 가능성 때문에 또 시끄러워졌는데, 그 발단은 朴 전 대표계 좌장 격인 金무성 의원의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 親朴계는 완전히 무장 해제되고 있는데 李재오가 들어온다면 이쪽을 또 치려고 할 것이라며, 우리 親朴도 또 전쟁이 시작되는구나하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므로 부터이며, 덧 붙여 그는 李재오가 들어오면 가만히 있겠느냐며 입각설도 있고 국정원장설도 있고 뭔가 움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李재오의 거취가 문제되는 것은 당내 親李명박-親朴근혜 대립 구도 때문만은 아니고, 청와대 개편과 개각을 앞두고 여권 핵심부에서 제기되는 시어머니론과도 관련 있는데, 즉 시어머니론이 대두하는 이유는 청와대와 정부에 구심점이 없다 보니 李 대통령이 모든 일을 직접 챙기게 되고, 그 결과 대통령의 메시지가 너무 사소하고 구체적이라는 문제점이 나온다며, 대통령을 대신하여 궂은일을 맡을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데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으며 측근들이 모두 물러난 李명박 청와대나 姜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제외하고는 측근 그룹의 진출이 전무하였던 李명박 행정부에도 중심 추 역할을 할 인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시어머니론으로 나타나는 모양새인 것이다.


    李 대통령 대신 청와대와 정부에서 질서와 군기를 잡고 싫은 소리를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시어머니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는 게 시어머니론의 근간이다. 즉 金대중 정부 때의 朴지원과 盧무현 정부 때의 文재인 같은 인물이 李명박 정부에서도 필요하다는 말인 것이다.


    그러한 연유에서 李재오의 청와대 진출이나 입각설이 나돌고, 親李 소장파의 수장 격인 鄭두언 의원의 입각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이나, 반론도 만만찮으며 그들은 李재오는 李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과도 맞지도 않고 과거식 정치라고 말하며, 시어머니론은 달리 말한다면 2인자를 만들자는 것이기에, 청와대와 내각의 개편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李재오의 국내 복귀 여부가 윤곽을 드러나는 2009년 초에는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6개월 전 청와대 참모진의 권력 사유화논쟁을 벌였던 鄭두언 의원과 이 때문에 인해 물러났던 朴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 6개월 만에 다시 만난 것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 두 사람은 지난 19일 대선 1주년을 맞아 李 대통령의 측근 그룹인 안국포럼 출신 모임 자리에서 조우한 것이다. 그런데 이날 모임의 참석자들은 모임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 것을 주문하였으며, 대선 승리 1주년을 기념하여 안국포럼 출신 인사 10여명이 조촐하게 모여 옛 얘기를 나눈 것으로 선거 때 함께 고생한 사람들끼리 대선 승리 1주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한 것이라는 설명하며, 정치적 함의를 담을 만한 말들은 크게 없었다고 한다.


    또한 재기를 원하는 朴 전 비서관으로서도 鄭 의원과 사이가 나빠서 좋을 게 없기에, 조만간 비슷한 자리가 또 생기면 두 사람이 다시 만나 관계 개선을 할 수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親李계 분열을 가속화시킬 정도로 심하게 다투었던 鄭 의원과 朴 전 비서관이 단순히 식사나 하기 위하여 만난 것은 아닐 것이 정치권의 일치되는 시각이며, 李 대통령을 도왔었던 측근 그룹이 어려운 시기에 화합하여 다시 한 번 李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힘들 보태고자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