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물(2)

상생의 땅 가야 ④건국신화 서린 상아덤.

碧 珍(日德 靑竹) 2008. 12. 8. 18:00

상생의 땅 가야  ④건국신화 서린 상아덤.


                                 산신·천신 모신 '마음의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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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의 산신과 산악 숭배의 전통'이란 부제가 붙은 책 '산신'을 펴낸 미국인 데이비드 메이슨. 20여 년 동안 산신에 대해 연구한 그는 "'산신(山神)'은 여전히 한국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은 채,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뿌리 역할을 해 왔다."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한국 민족의 정체성 확립과 환경보호, 남북통일 분야에서 중요한 사회문화적 역할을 수행할 산신에 대해 한국인들은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방인의 쓴소리에 부끄러움부터 앞선다. 사실 서구 문화의 홍수 속에 우리는 산신을 산속에 '유배'시킨 채 음지에 방치해 왔다. 산신에 대한 제대로 된 조명과 연구도 별로 없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유산 중 하나가 산신이 아닐까 싶다.


아! 상아덤.


성주군 수륜면 백운동에서 가야산 정상 칠불봉에 오르는 산행길에서 '쉼터' 역할을 하는 서성재. 여기에서 남쪽으로 200m정도를 가자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가 나타난다. 상아덤이다. 그 모양새부터 신비롭다. 사람이 깎았을 법한 넓적한 바위가 40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정상부에 걸쳐져 있다. 사람이 정으로 바위를 쪼아 걸쳐 놓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비스듬히 걸쳐져 있는 바위모양에, 옛날 여자들이 시집갈 때 탔던 가마를 떠올려 '가마바위'라고도 부른다.


횃불 모양의 바위들로 이뤄진 상아덤에서 바라보는 풍광도 빼어나다. 동북쪽으로는 가야산의 백미인 만물상이 눈 아래 펼쳐지고, 시선을 왼쪽으로 더 돌려 북쪽을 바라보면 정상인 칠불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남서쪽으로는 심원골과 돈봉 능선, 그리고 해인사 백련암으로 내려서는 능선이 파도처럼 굽이친다. 등산로로 개방되지 않은 탓에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야산에서 상아덤을 능가하는 조망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가야산의 모태(母胎)!


상아덤은 가야산 여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와 하늘신 '이비하'(夷毗訶)가 노닐던 곳이란 전설을 갖고 있다. 가야산처럼 성스런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러 믿는 신.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 마음 먹고,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는 어느 늦은 봄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상아덤에 내려 앉았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아버지인 천신을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고 불그레했고, 아우는 어머니 여신을 닮아 얼굴이 갸름하고 흰 편이었다. 그래서 형은 뇌질주일(惱窒朱日), 아우는 뇌질청예(惱窒靑裔)라 했다. 형은 대가야의 첫 임금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는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됐다. 최치원(崔致遠)의 '석순응전(釋順應傳)'과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이야기다.


마음을 기대는 곳!.


대가야와 금관가야의 건국신화가 서린 상아덤. 그 어원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상아는 여신을 일컫는 말이고, 덤은 바위(巖)를 지칭한다. 하늘의 여신이 사는 바위란 뜻이 된다. 덤의 의미를 조금 더 살펴보는 것도 재미 있다. 옛날 인류는 암혈에서 살았고, 그 곳은 집이고 생명을 유지하던 곳이었다. 그들은 큰 바위와 절벽과 마을을 덤이라고 불렀다. 더 나아가 몸이나 마음을 의지하는 대상을 덤이라 했다는 게 제수천 전 성주문화원장의 얘기다. 가야산 주변 사람들은 정견모주에 마음을 의지했고, 그런 마음들이 모여 형상화된 것이 바로 상아덤인 것이다.


서장대가 아닌 상아덤!


상아덤이란 훌륭한 명칭이 있는데도 가야산 국립공원 안내도와 산행잡지 등에는 서장대(西將臺)로 일컫고 있다. "서장대라 함은 사람이나 산짐승도 못듣던 어거지말"이란 것이 제 전 원장과 이덕주 초전초교 교장의 지적. 근거 없는 서장대란 명칭 대신 상아덤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야산에서 감응, 새 세상을 연 정견모주와 이비하의 이름 유래를 따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다음은 제 전 원장의 얘기. 정견모주란 이름은 동성봉 능선의 한 봉우리인 바래봉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또 바래의 어원은 비로(毘盧)이며, 비로는 산스크리트어 바이로자나로 광명을 뜻한다는 것. 바래봉 여신을 한자로 옮기면서 바로 본다는 뜻을 지닌 '정견모주'란 이름을 얻게 됐다는 설명이다.


하늘신인 이비하는 인간 세상에서 호랑이로 현신한다.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천신과 동격시하며 이비하로 불렀다는 것. 어르신들이 잘못을 저지르는 어린 아이들을 타이를 때 '이비 이비'라고 한 것도 호랑이인 이비하가 가까이 있다며 경계하라는 말로, 곧 천신과 호랑이를 동일시했다는 얘기다.


글. 이대현 기자 sky@msnet.co.kr.  박용우 기자 ywpark@msnet.co.kr.

사진. 박노익 기자 noik@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