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물(2)

상생의 땅 가야산 ⑤가야산 최고봉은?

碧 珍(日德 靑竹) 2008. 12. 8. 18:01

상생의 땅 가야산  ⑤가야산 최고봉은?


                                   칠불·우두 하늘 아래 두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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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최고봉(最高峰)은 그 산의 '얼굴'이랄 수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어떤 모습을 지녔느냐에 따라 그 산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설악산하면 대청봉, 지리산하면 천왕봉을 떠올리는 것처럼 최고봉은 그 산을 특징짓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동안 가야산 최고봉은 우두봉(牛頭峰)으로 알려져왔다. 가야산 자락 사람들도 우두봉을 상봉(上峰)이라 일컬으며 최고봉으로 섬겨왔다. 하지만 수년 전 국립지리원 측량 결과 우두봉에서 동북쪽으로 250m 떨어진 칠불봉(七佛峰)이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최고봉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칠불봉이 2.6m 더 높다."


성주군으로부터 측량 요청을 받은 국토지리정보원은 2004년 2월 GPS와 토털스테이션을 이용, 실측에 나섰다. 그 결과 칠불봉이 해발 1,432.4m, 우두봉이 해발 1,429.8m로 나타났다는 것. 99년 이후 계속된 가야산 최고봉 논란에서 칠불봉이 가장 높은 봉우리로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그 후 3년 여가 지나도록 칠불봉은 가야산 최고봉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2004년 10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발행한 가야산 국립공원 산행지도. 우두봉을 높이 1,430m로 표기하고, 가야산 정상으로 일컫고 있다. 반면 우두봉보다 약 3m 높은 칠불봉은 봉우리 표시만 돼 있을 뿐 아예 높이는 표기를 않고 있다. 동성봉, 단지봉, 남산제일봉 등 가야산 국립공원 내 다른 봉우리들은 ‘친절하게’ 높이가 표기돼 있지만 칠불봉만 쏙 빠져 있는 것이다.


가야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측은 "국토지리정보원 측량 결과를 알고 있지만 칠불봉이 최고봉으로 인정되기까지는 절차가 남아 있어 높이를 표기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지명학회 추인 등 절차가 적지 않게 남았다는 얘기다.


가야산 최고봉 논쟁에는 성주군과 합천군 간 미묘한 신경전도 끼어들어 있다. 행정 구역상 우두봉은 합천군과 성주군의 경계에, 칠불봉은 성주군에 속해 있는 것. 산의 행정 구역을 정상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게 일반적 시각인 만큼 그동안 '합천 가야산'으로 많이 불리던 가야산이 '성주 가야산'으로 불리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조화의 美’, 두 봉우리!


최고봉 논쟁은 어찌보면 인간들의 부질없는 다툼일 뿐 칠불봉과 우두봉은 말이 없다. 수만 년 전부터 그래온 것처럼 오늘도 아래를 굽어보며, 가야산을 찾는 이들을 넉넉하게 품어주고 있다.


서로 250m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칠불봉과 우두봉은 그 모양새가 전혀 다르다. 칠불봉이 뾰족 솟구친 전형적인 암봉인 반면 동서로 길게 암릉을 이룬 우두봉은 밑둥의 길이가 500m가 넘는 긴 암괴의 중앙부에 솟은 암봉이다. 또 칠불봉이 하늘 향해 타오르는 불꽃 모양을 한 석화성(石火星)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면, 우두봉은 소의 머리란 이름처럼 우람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조금 더 천착해 두 봉우리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날카로운 모양을 한 칠불봉을 여성에 비유한다면 우직스런 우두봉은 남성에 견줄 수 있다. 여성스런 칠불봉을 부드러운 유(柔) 남성적인 우두봉을 꿋꿋한 강(剛)으로, 아니면 그 모양에 따라 뾰족한 칠불봉을 강, 둥그스럼한 우두봉을 유로 볼 수도 있겠다. 어찌됐든 두 봉우리는 음과 양, 강과 유의 아름다움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어울림의 아름다움을 몸소 보여준다.


두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도 가야산의 압권(壓卷·가장 뛰어난 부분) 중 하나다. 지리산에서 백운산을 거쳐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뿐 아니라 동으로 팔공산, 북으로 독용산을 비롯해 경남과 전라남·북도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칠불봉 전설과 우비정 개구리!


상아덤이 가야산 여신인 정견모주, 하늘신 이비하의 전설이 서린 곳이면 가야산 정상 칠불봉은 정견모주의 손자들과 얽힌 전설을 갖고 있다. 정견모주의 둘째 아들인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과 결혼, 왕자 10명을 두었다. 큰아들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 성을 따라 허 씨의 시조가 됐다. 나머지 7왕자는 외삼촌 장유화상을 따라 칠불봉에서 도를 닦기 시작했다. 일곱왕자를 그리워하던 허 황후는 가야산을 찾았으나 칠불봉까지 올라갈 수 없어 아들들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처님에게 기도했다. 그 정성이 부처님의 마음을 움직여 해인사 일주문 옆 연못에 정진 중인 왕자들의 모습이 비쳐졌다는 것. 그 연못을 영지(影池)라 했고, 정성이 극진한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칠불봉의 모습이 연못에 비친다고 한다.


우두봉에 올랐다면 꼭 봐야 할 곳이 우비정(牛鼻井). 우비라 함은 소의 코란 뜻으로 우비정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다. 우두봉은 소의 머리 모양을 한 봉우리고, 소는 코에서 항상 땀을 흘려야 건강하다는 풍수지리의 이야기처럼 우비정의 물은 그래서 언제나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린 빗물인지 이슬인지, 아니면 바위에서 솟아난 물인지 그 연원은 알 수 없다. 가로 세로 1m가 넘는 둥근 모양의 우비정에는 신기하게도 비단개구리가 살고 있다. 우두봉과 우비정, 그리고 그 안에서 사는 개구리를 보면 자연의 오묘한 섭리가 느껴진다.


글. 이대현 기자 sky@msnet.co.kr,  박용우 기자 ywpark@msnet.co.kr

사진. 박노익 기자 noik@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