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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崇禮文(南大門)을 다시 볼 수 있어 참으로 기쁘다.

碧 珍(日德 靑竹) 2013. 5. 4. 10:44

 

崇禮文(南大門)을 다시 볼 수 있어 참으로 기쁘다.

 

 

600년 수도 서울의 관문이 5년 3개월 만인 오늘 옛 모습으로 다시 문을 활짝 열므로 국보1호 숭례문이 돌아오니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고 한편으로는 감개무량하다. 우리는 아직도 2008년 2월 11일, 방화로 밤새 숭례문이 시꺼멓게 타 들어가 무너져 내릴 때, 국민의 가슴도 탔고 민족의 자부심도 무너져 내렸고 역사에 국민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 5년을 지내어 왔기에, 그날의 악몽을 잊을 수 없었던 나날로 역사에 국민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 5년을 지내어 왔었다.

 

어제 보여주는 서울 숭례문(崇禮門)은 한양도성 시절처럼 주변의 옛 성벽을 서쪽으로 16m 동쪽으로 53m까지 새로 복원하므로 지금은 문 양편에 성벽을 거느린 웅장한 자태를 갖추었기에, 2008년 2월 화재 이전의 위엄을 되찾고 있는 모습이라, 구경 나온 시민은 하나같이 밝고 흐뭇한 표정이었으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시민도 많이 보였었다.

 

지난 2008년 2월 10일오호, 痛哉! 哀哉라! 崇禮門이여 南大門이여라는 글제 하에수도 서울의 관문이요, 겨레의 상징인 숭례문은 이렇듯 처참하게 우리 곁을 떠나고, 이제 남은 것은 탄식과 비통함 아니 부끄러움 후회만 남아 우리의 곁을 맴돌 뿐이다. 저 숭례문이 진정 지난 600년간의 자랑거리란 말인가 하고 도리질을 해봐도 참담한 현실이었으며, 어누 누가 감히 숭례문이 불타 없어지리라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그 많은 세월 속 민족의 애환과 동고동락 해오며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한국전쟁 때에도 화마가 비켜갔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아니 전시도 아니고 국민 모두가 희망으로 부풀어 있는 무자년 정초에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라고, 2008년 2월 10일(음 1월4일) 오후 8시 45분 崔모의 방화로 불타는 국보 1호 崇禮門(南大門)이 타는 모습을 TV로 보며 가슴으로 울먹이며 글을 쓴지도 어언 5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숭례문의 복원 기사를 읽고 TV로 엿볼 수가 있다니 참으로 기쁘고 감회가 남다르다,

 

당시를 생각하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게 되었다. 동이 트자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서울도심을 호령하듯 웅장하고 빼어난 자태를 늘 뽐내던 우리 국가의 대문이, 1, 2층 누각 가운데 2층은 형체도 없이 무너져 내린 처참한 모습을 드러낸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앞에서 국민들은 말을 잃고 모두들 넉 나간 사람이었다. 후대에 반드시 전하여야 할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죄책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못난 우리들의 부주의로 후손들은 숭례문의 진정한 위용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또한 당시 어처구니없는 일은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진 10일 밤, 문화재관리에 최고 책임자인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업체서 항공료 등 일부 경비를 지원받아 부인과‘외유성 유럽 출장’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사실상 휴가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므로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을 받았던 일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국보 1호 숭례문의 복구 사업이 끝나 4일 기념식을 갖고 국민 품으로 돌아왔는데, 문화재청은 이번 숭례문의 복구 사업의 성격을‘복원’이 아닌‘복구’로 규정하였다, 즉 불의의 방화로 숭례문은 2층의 90%와 1층의 10%가 소실되었으나 완전히 타버린 것은 아니었기에, 타지 않은 자재를 활용하고 숭례문의 혼과 정신이 서려 있는 현판을 그대로 내걸게 됨으로써 역사적 가치가 계승되었다고 보고‘복구’라고 명명한 것이며, 또한 조선조 명필 추사 김정희도 뛰어난 작품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숭례문 현판의 글씨도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았기에 국보 1호의 위상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하겠다.

 

생각하기에 문화재의 보존은 화재와 전란 및 천재지변을 겪더라도 역사성을 이어나가는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기에 길게 보면 문화재의 완벽한 보존이란 불가능하나 끊임없는 관리와 보수 재건을 통하여, 문화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가치를 존속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새삼 문화재의 존재가치가 얼마나 큰지도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으면서,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선조들과 후손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었기에, 숭례문 복구는 단순히 불에 탄 문화재 하나를 다시 만드는 일이 아니고 무너진 민족의 자부심과 역사를 되살리는 일이었기에, 그래서 더욱 정성을 쏟았고 사료에 충실하였다고 하는데, 그러기에 덕분에 5년 전 무너진 우리의 자존심도 되찾고 역사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서두르지 않고 긴 시간을 국가와 민족의 역사와 자존심 복구에 기꺼이 참여한 장인들과, 현장 투입된 연인원 3만5,000명의 많은 사람들의 재능과 열정과 땀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심장이기도 한 국보 1호 숭레문이 다시 우리 곁에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기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며 다시는 숭례문의 불행을 막기 위하여 잘 관리하고 보존하여 자손만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지난 숭례문 화재 사태에서 실감하듯이 문화적 가치는 돈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하고, 새 정부는 문화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경제와 문화를 조화시키는 정책을 펴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반만년 문화민족임을 자랑하여 왔으며, 문화재를 잘 보존하여 후손에 넘기는 일은 문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서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의무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즉 폐허가 되어버린 숭례문을 최대한 역사성을 살리면서 열과 성의를 다하여 복원하였다는 것이 우리가 선조들과 후손들에게 속죄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고, 또한 문화재에는 조상들로부터 면면히 내려온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공동체적 가치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출처 : 벽진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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