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사상

[스크랩] 짝퉁 삶보다 一流 삶을 살아 보자.

碧 珍(日德 靑竹) 2011. 12. 29. 18:19

 

 

 

 

 

 

짝퉁 삶보다 一流 삶을 살아 보자.

 

 

새벽 禮佛을 하다 보니 순간에 돌아가시어 이 추운 날씨에 山居의 님들이 이 새벽에 생각나며 몹시 그리웁고 보고 싶기에 山居에 다녀와야 하겠다.

 

아버님께서 52년 수(壽)를 누리시다 젊은 연세에 가셨다, 그러다 보니 늘 아버님보다 17년이나 더 살고 있는 내 人生에서 덤으로 17년 있는 셈이라, 내가 덤으로 사는‘덤의 人生’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이 될까.

 

우리 한 人生을 50년을 살거나 100년을 살고 있으나,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이다, 삶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게 사는 것인가, 어느 스님은‘무엇 때문에 삽니끼?’라고 묻는다면,‘무엇 때문에 사는지 묻기 위해서 살고 있다고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人生이란 삶에서 우리가 어느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 왜? 가는지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날이 가는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 대다수 이다.

 

우리는 누구를 따라 무엇 때문에 어떻게 人生路程(로정)을 가는 가를 알지도 못하기에, 생각하기에 어느 누구를 따라 사는 삶은 아무리 잘 살아도 아류(亞流)人生이며 2류 人生이라 하겠다, 그러기에 1류 人生이란 자기 의지대로 아무리 어렵고 고달프다 하드라도 자기가 가고 싶은 길로 가며 살아야만 1류 인생이고 ,또 物質的 人生보다 精神的인 人生으로 사는 삶이 1류 人生이라 하겠다.

 

사람이 자기의 의지를 버리고 남들처럼 따라 사는 人生을 짝퉁 人生이니 2류 인생이라 하는데, 자기만 人生의 길을 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게 自己 人生을 1류 人生으로 만드는 것이다.

 

삶이란 人生路程에서 못났는데도 잘난 듯, 없는데도 있는 듯, 악하면서 착한 듯, 고상하지 못하며 고상한 듯 보다는, 진솔(眞率)하게 없으면 없는 데로 있는 사실 그대로 보여주며 사는 것이 1류 人生이라 하겠다, 사람이 살면서 불나비가 불꽃만 찾아다니다 불에 타 죽듯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物質的 욕망(慾望)과 外形的인 모습만 쫓는 삶을 살아 왔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삶은 진솔한 내면보다 헛된 외모만 더 중요시 하며 살아온 삶이니, 결국 불나비처럼 眞實보다는 허상(虛像)만 보고 살아 왔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삶을 부유하게 풍요롭게 하는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하여 物質수준이 점차 높아지면서, 사람이 物質을 넘어 物質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物質이 사람을 지배하고, 또 物質的 慾心이 사람을 지배하고 부리는 사회로 오늘날 전락하므로 1류 人生이 도태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며 그렇게 될 것으로 예견할 수가 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世上의 흐름에 따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체 살아가는 게 대다수 사람의 삶이니 이게 바로 우리 人生이라 하겠다.

 

우리 사람은 자기가 한 일과 지난날들에 대하여 반성하지도 않고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자기 성찰(省察)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우리는 나쁜 사람 못된 사람이라고 한다, 어떻게 사는 게 옳은 삶인가 아니 참 삶인가에 대하여 끊임없이 스스로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고 회의(懷疑)하고 되돌아보아야 하는데도 우리 매우 인색(吝嗇)하며, 어떤 것이 옳은 삶의 길인가(正道)하며 사는 삶이 옳은 삶이며 人生路程에서 바로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며 겸허(謙虛)하게 자기를 省察하는 것이 우리 삶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기에, 그렇게 산다면 혹여 잠시 잘못된 삶의 길로 들어갔더라도 다시 되돌아 나올 수 있기에, 자기 자신만을 믿고 아집(我執)에 사로 잡혀 무언가를 옳다는 확신에서 빠지지 말아야 하며, 늘 회의(懷疑)하는 삶을 살아야만 참되게 사는 삶이라 하겠다.

 

우리가 삶을 사는 연유(緣由)는 왜? 살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는 것이라 하였다, 만일 우리가 왜 사는지를 알았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孔子님이 말씀하시기를‘朝聞道 夕死可矣(조문도 석사가의)’라고 하셨는데, 즉‘아침에 道를 듣는다며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씀으로, 우리가 사는 緣由가 왜 사는지를 몰라서 산다는 것의 그 답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생각하기에 사람이 사는 삶이란 자기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스스로의 길을 가는 삶을 살아갔을 때, 진정하게 자기 삶(人生)에서의 主人이 되는 것이며, 또한 참된 삶의 길이며 참된 幸福을 사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방법이 아닐까 하고 싶다.

 

노래 아버지

출처 : 벽진(碧珍)
글쓴이 : 碧珍(日德. 靑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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