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사상

[스크랩] 부평초(浮萍草)같이 살고 싶다.

碧 珍(日德 靑竹) 2011. 6. 15. 18:18

 

 

 

       부평초(浮萍草)같이 살고 싶다.

   

 

초여름 날씨에 기차를 타고 남으로 내려가며 차창 밖을 내다보니 온 山野가 푸름과 이름 모를 꽃들로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물은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하며 지난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데 아버님께서‘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때와 장소를 잘 가릴 줄 알아야 그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성과도 생기게 마련이니, 사람으로서 하여서는 안 될 일이면 그 일을 하는데 장소와 때가 아무리 성숙되고 합당하더라도 그 일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신 마씀이 생각나며 잠시 아버님의 환영 속에 내가 있었다.

 

佛家에서 승려들이 등에 바랑하나 짊어지고 구름과 물처럼 세상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 하고, 道敎의 道士들은 이를 표주(漂周)라고 한다. 道는 우주를 관통하는 불변의 가치요 무한 존재이다, 이에 비하여 사람의 一生은 준마(駿馬)가 문틈을 스쳐지나가는 것만큼은 짧고, 사람의 一生 겪고 누리는 부귀영화나 신산고초(辛酸苦楚)는 모두가 한 순간의 일이요 부질없는 집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지난 시대에는 사람들 중‘내가 왜 세상에 태어나왔는가?’하고 늘 생각하고 고민을 많이 하던 사람이 집을 나와서 세상을 돌아 다녔는데, 돌아다니는 것 그 자체가 공부이었던 시대도 있었으나, 지금의 세상은 태어나 이 세상에 왔으니 자기가 하여야 할 일을 하여, 한 인격자로 능력자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부모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 도이기에, 그렇지 못하고 집을 나와 방랑한다는 것은 이 시대에서는 못난 사람들의 행태일 뿐이다.

 

사람이 雲水行脚을 하려면 그 조건으로 돈 없이 맨주먹으로 다녀야 하는데, 그래야만 밑바닥 人心을 알고 民心이 어떻게 형성 되는가, 사람다운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각 지역의 특이한 것을 알고 물류의 흐름은 어떤가, 좋은 기운이 뭉쳐있는 明堂 修道처는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며, 돈을 많이 갖고 여행을 하면 수박겉핥기식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나온 역사를 더듬어 보면 선각자나 선지식인들은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통하여 덕을 쌓고 산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이다, 예로‘史記’를 저술한 사마천(司馬遷)도 20대에 광활한 중국의 구름 쌓인 名山과 웅혼(雄渾)한 기상을 느껴보고, 長江의 도도한 흐름도 보고, 석양 노을과 안개에 쌓인 명승지를 보았기에‘史記’를 쓸 수 있었는데, 20대에 일찍이 周遊天下의 경험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었다고 하겠다.

 

사람은 大自然의 장엄한 관경을 보아야만 心量이 커지고 아울러 인간과 세상에 대한 초연함이 길러지게 되는 것이기에 주유천하의 첫 단계가 명산유람(名山遊覽)인 것이기에, 근래 들어 대학생들이 무전여행(無錢旅行)을 다니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 장려 할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을 두루 다니고 나서 세상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자만하여서는 안 되고, 세상을 두루 다니고 나서 세상이 작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움츠러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떨어져서 홀로 있어도 외롭거나 두렵지 않는 의식 상태를 독존의식(獨存意識)이라 하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사람이 공부가 되었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가 독존의 상태에 들어갔느냐 아니면 못 들어갔느냐 인데, 독존의식에 들어간 사람은 세상에 대한 그리움도 두려움도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周易에서는 독립불구(獨立不懼)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독존의식에 도달할 수가 있을까? 는, 그 방법 중 하나가 나(我) 혼자라라고 생각하고 혼자 사는 방법도 그 방법 중 하나 일 것이다. 그러기에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은 사람은 공부가 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佛敎에서 스님들이 몇 년을 면벽(面壁) 혹은 토굴(土窟)에서 수행하거나 하안거(夏安居)나 동안거(冬安居)하는 것과, 천주교 수사(修士)들이 산상 수도원이나 사막 한 가운데 수도원에서 수도하는 것 등은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독존의식을 수행하는 것이라 하겠다.

 

“버들 솜 흩날리고 뉘엿뉘엿 해가 지는데/ 문 앞 버드나무 심은 이는 그 뉘 이신가/ 산중의 부귀를 차지하는 사람 없어/ 나무하는 아이들이 저마다 한 짐씩 꽃을 지고 돌아오네”라고 이조 때 玄鎰의‘山居’를 읊으니, 바야흐로 산중에 꽃이 흐드러져 부귀가 바로 그곳에 있는 계절이라, 도시에 사는 나로서는 부러워하는 정경이 눈앞에 아른거려 쫓아가고만 싶어진다.

 

                                                                                     

                                                                                    백년의 약속

 

 

 

 

 

출처 : 碧珍(벽진)
글쓴이 : 碧珍(日德. 靑竹)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