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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의 두 사상가와 사림(士林)이란(1).

碧 珍(日德 靑竹) 2011. 4. 17. 14:10

 

 

    조선의 두 사상가와 사림(士林)이란(1).

     

                                정암 조광조 와 우암 송시열

     

    조선조에는 태산 같은 두 사람의 사상가가 조선의 정신을 지배하여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조선의 사상체계를 알자면 士林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

    “전하께서는 성실하게 도를 밝히고 홀로 계실 때에도 항상 삼가 하는 태도로 나라를 다스리십시오, 그러면 도가 조정에 서게 될 것이니 나라의 기강이 어렵지 않게 서게 되고 법도 또한 어렵지 않게 정해질 것입니다.”라고 말한,


    34세에 관직에 진출하여 38세에 기묘사화로 죽음을 당할 때까지 단 4년간 삶으로 조선 선비의 모범이 되었으며, 도학정치를 이상으로 하던 정암 조광조(1482~1519)가 왕에게 한 말이다.


    그는 유교정치(儒敎政治)의 이상은 바로 수신(修身)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그의 논리는 너무 단순하고 명쾌해서 현실과 떨어져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가 주장하는 것은 언제나 원칙이었고 그 원칙의 고지식한 실천을 끝까지 관철하고자 했던 것이다.


    세조의 왕위찬탈과 연산군의 학정, 그리고 연산군을 퇴출하는 중종반정인 쿠테타 등 연이은 반유교적 사건으로 조선왕조의 정체성이 크게 위협당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사료한 그는, 대책을 묻는 중종에게 유교의 이념적 방향을 제시하고 왕과 신하들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다.


    그의 대책문(對策文)을 보면,“유교 국가를 표방한 조선왕조에서는 유교적 이상 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 믿음 때문에 목숨을 잃은 조광조는 왕조의 이상적인‘도덕적 교사’로서 오래 기억되는 존재인 것이다.”라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다.


    노론의 김재구 가 쓴“조야회통”에는,

    “그 전날 밤 흰 기운이 하늘을 뻗치더니 이날 밤 규성(奎星) 하나가 땅에 떨어지고 붉은 빛이 우암이 죽은 지붕위에 뻗쳐다.”


    소론의 나량좌 가 쓴“명춘잡록”에는,

    “송시열은 계교가 궁하자 다리를 뻗고 바로 누웠다, 금부도사 권처경이 재촉했으나 종내 사약을 마시지 않으므로 약을 든 사람이 손으로 입을 벌리고 약을 부었는데 모자라 반 그릇을 더 부었을 때 죽었다.”이 두말은,


    우리 역사상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 이상 언급될 만큼 역사상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우암 송시열(1607~1689), 그의 죽음을 묘사한 평가가 동인. 서인(노론) 양 당파 사이에 얼마나 극단적으로 다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는 83세까지 장수하다가 숙종 때,‘죄인의 수괴’라는 죄목으로 사사(賜死)된 후 숙종 20년에 갑술환국이란 정변으로 노론이 재집권하자 신원이 되어 성균관 문묘에 배향되어 유학자로서는 최대의 영광을 누리는 것과,


    더욱이 孔子 孟子 朱子처럼 宋子로 불리는 광영도 함께 누리게 되었으며, 정조 명에 의해 편찬된 그의 글을 모은 문집은‘宋子大典’이라 일컫는다.


    참고로 孔子의 본명은 공구이고  孟子의 본명은 맹가이나, 그들의 성 뒤에‘子’를 붙여 부르는 것은 그들의 높은 학문과 덕을 기리자는 뜻이며 중국에는 노자.장자.묵자.순자.한비자등 많은 선현이 있다.


    이처럼 상반된 찬사와 저주사이에서 송시열의 진실을 추적하여 보면, 당시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정치적 현실. 우암의 생애 등을 고찰하면 하나의 결론에 나온다.


    “사회변화를 실현하는데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면 송시열은 진정한 성인으로 많은 백성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그는 사대부의 이익과 노론의 당익을 지키는데 더 목숨을 걸었다.”고 볼 수도 있다.


    조선시대에도 오늘날처럼 야당 같은 정치세력이 존재했다, 바로“사림파(士林派)”라 불리는 정치세력이다.


    조선의 야당격인 사림파는 장장 70여 년 동안이나 극심한 탄압을 받으며 싸워 왔고, 이를 탄압한 집권 여당격인 세력이“훈구파(勳舊派)”라 불리는 정치 세력이다.


    훈구파(勳舊派)는 누구이고, 사림파(士林派)는 누구인가?


    훈구파와 사림파는 뿌리는 같으며, 모두 고려 말기에 나타난 신흥사대부 세력의 후예들이다.


    “신흥사대부”는“신흥”이라는 수식어가 말해 주듯이, 고려 말 대개가 친원(親元)세력인 권문세족들의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고자 했던 새로운 정치세력이었다.


    그야말로 신흥사대부는 권문세족의 등쌀에 허리가 휘는 일반 농민들에게 샛별 같은 희망을 주는 정치 세력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고려 말 부패한 권문세족을 반대하는 입장은 같으나, 다만 고려에 대한 생각은 같지 않아, 고려를 타도하고 새로운 국가를 개창하자는 급진세력인 역성혁명파 와, 고려자체는 존속시킨 체 개혁만 하자는 온건개혁세력인 온건개혁파로 나누어진다.      


    즉 현대 사회과학 용어로 말하면, 신흥사대부가“혁명세력과 개량세력”으로 갈라 진 것이다.


    신흥사대부 중 역성혁명파의 대표적인 인물은 정도전. 하륜. 조준 등이고, 온건개혁파에는 정몽주. 길재. 이색 등이며, 강경파가 항상 득세해온 한국역사의 흐름처럼 주도권은 장악한 세력은 혁명세력인 역성혁명파 이었다.

                                                            碧 珍.

    (계 속)

출처 : 碧珍(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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