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사상

[스크랩] 보자기 책가방과 불알동무의 추억.

碧 珍(日德 靑竹) 2011. 3. 27. 12:59

 

 

보자기 책가방과 불알동무의 추억.

 

 

 

어제까지만 하여도 흩날리던 눈 잎 대신에 포근한 오늘 새벽녘은 참으로 평화스럽고 온화한 한 날이다, 아침예불을 마치고 묵상에 잠기다 문득‘연보라 산도래 꽃 고울래 조울 때’라고 젊은 시절 썼던 글이 생각나며, 유장(悠長)한 세월의 흐름이 영원함을 잉태하고 있음이 마음을 여미고 아련히 다가오니, 불알동무 죽마 타던 그때 모습의 동무들과 보릿고개 기억이 더불어 생생한 추억으로 깨어 다가온다.

 

거슬러 생각하면 6.25 사변 후 소학교 4학년 시절은 학교가 사변으로 다 타버려, 읍내를 벗어나 실개천 둑방을 따라가다가 건너 산자락에 밑 4Km쯤에 있는 성주향교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눈에 아련하게 그려진다.

 

그 시절은 대개 4월부터 보리타작을 마치는 빨라도 6월 하순까지는 대개의 집집마다 쌀과 보리쌀이 바닥나고 과일들도 익지 않고 논밭에는 먹거리가 없는 때라, 어려운 사람들은 산과 들에서 쑥을 비롯하여 들과 산에 나는 먹을 수 있는 산채를 속아다 보리쌀 한줌으로 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방앗간에서 등겨를 얻어다가 소다와 삭카린을 썩어 쪄서 먹던 검은색 개떡을 먹고 학생은 도시락 대신에 개떡을 한두 개를 가져와 숨어서 먹고 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산에 가서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보드라운 안 껍질을 우리의 어른들은 살기 위하여 먹었던 그 시절이다.

 

그러는 와중에 고 박정희 장군이 5.16혁명을 일으켜 과감하게 구악을 일소 하면서, 새마을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농어촌을 개발하고 산업화 정책추진으로 가난을 해결하였던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과 젊은 세대들에게는 꿈에서라도 생각도 믿을 수 없는 그때를 말로 들으면 이해와 실감을 가질 수 없는 것이, 그 시절의 참 실상이었으니 지금의 생활은 천국보다도 나은 것이라 하겠다.

 

지금도 향수에 젖는 것이 잊을 수 없는‘보자기 책가방’이다, 요사이도 초등학교나 중 고등학교 정문을 지나다 보면, 어깨에 메던지 손에 들고 다니는 아이들의 각양각색의 현대식 책가방을 보면 참으로 부러운 생각이 드는데, 우리네가 학교에 다니던 그 때는 시골에서는 거의가 도시에서는 반이 애용한 것이 보자기 책가방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잊을 수가 없는 보자기 책가방이다.

 

보자기 책가방은 참고서와 보조 책이 없는 시절이라 몇 권의 교과서와 공책과 몽당연필이 든 철연필통을 둘둘 말아 싸고, 보자기 양쪽을 허리춤에 묶던지 아니면 어깨에서 겨드랑이 밑으로 묵어서 둘러메던지 하고 검정고무신을 신고 학교를 오던 많은 동무들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그때의 모습이 노년을 들면서 세월에 묻어 갈수록 더욱 그리워지며, 그 당시 어려웠던 그때 그 시절에 향교 콩나물교실 바닥에 앉아 공부하던 향수에 대한 설렘임이 참으로 그립다고 할까 왜 이러히도 이 새벽에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 점심시간이 되면 아주 어려운 동무들은 슬며시 우물가로 가서 물로 배를 채우고, 개떡 한두 개를 가져온 친구 머리 숙여 가리고 먹기도 하고, 짜디짠 짱아지나 생된장에다 보리밥 도시락이나마 가지고 온 동무들은 밥 먹기가 민망해 하던 모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집에서 할머님께 개떡을 하여 달라고 졸라서 개떡을 넉넉하게 가져가 동무들과 나누어 먹으며 도시락을 대신하던 그때가 그립고 그립다, 그 까만 개떡은 맛이 정말 좋았지만 배탈이 잘나고 방귀가 요란스럽게 자주 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보자기 책가방이 참으로 편리한 가방이었다, 아침 등교에 지각할새라면 고무신을 손에 쥐고 달리기가 좋앗고, 방과 후에 어깨에 가로 질러 매고 산으로 들로 강으로 놀러갈 때는 참으로 편리하였었다,

 

오늘 날에는 박물관에도 민속자료실에서도 볼 수 없는 보자기 책가방 대신에, 우리의 아이들의 어깨나 손 그 자리에는 온갖 국적불명의 현대식 화려한 책가방이 잘살게 된 우리네의 생활을 반영하듯이 버젓하게 자리하고 있어 격세지감의 세월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아이들이 心性이 보자기 책가방을 메었던 시절 아이들의 심성보다도 현대화되고 화려한 책가방처럼의 보다 낳을까 생각이 드는데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무심하게도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4월이 다가오면 향교교실에 공부하려 다니던 그 때의 방천 개천 둑에나 들길 산길 언저리 초입에 무서울 정도 피어나는 흰 찔레꽃이 생각나는데, 아이들은 찔레 새순을 따서 겁질을 벗기고 입에 넣고 씹으면 달콤하던 즙 맛과 묏부리나 방천 둑 잔디뿌리를 뽑아 닥아 먹던 때와, 산에서 산딸기나 새밥 망개 산뽕나무 오디를 따서 먹던 어린 시절이 지금의 잘 익고 먹음직스러운 사과나 감귤 딸기 외국종 과일보다도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보자기 책가방과 더불어 행복함을 가져다주고 있다.

 

지금도 이따금 혼자서 산과 들녘 강가와 山寺를 잘 다닌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살므로 어린 시절에 늘 느끼던 시골의 풋풋한 내음과 유년시절 천진나만 하던 불알동무들의 우정과 시골의 인정을 느끼고 싶음과, 뒷 뫼골 바랜 산사의 예불 종소리가 연연이 인연 되어오는 갈구의 마음 때문인 것이다. 그러기에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연보라 산도래 꽃 초롱초롱 이슬 맺히는 산골에서 溫響과 다시 태어나고 싶다.

 

 



                                                                     동무

출처 : 碧珍(벽진)
글쓴이 : 碧珍(日德. 靑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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