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사상

[스크랩] 늦깎이 인연.

碧 珍(日德 靑竹) 2011. 2. 12. 16:05

 

늦깎이 인연.

 

 

그가 사는 지역은 눈이 좀처럼 내리지 않는 지역인데 아침부터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더니, 해질 무렵부터 흰 복사꽃송이 만한 함박눈이 바람에 춤을 추듯 하며 나린다, 창밖에 나리는 눈송이를 보고 있으려니 어린 시절 고향집 밖 갓 마당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하늘에서 정답게 어울려 손에 손잡고 나리는 듯한 함박눈도 짝이 있을까, 있다면 그들은 어떻게 자기 짝을 찾아 만날까 한다.

‘짝’참으로 정감이 가는 말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동식물도 심지어 무생물인 돌도 짝이 있다고들 한다.

 

사람들 중에는 짝이 없는 사람, 혼자 사는 남자 혼자 사는 여자를 시세말로 독신 남 독신 녀 혹은 single이라고 하는데, 백지장도 맞들면 좋듯이 사람 사는 世上에서는 남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사는 게 자연섭리에도 맞고, 인간사에서도 옳은 것이기에 사람이 혼자 산다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삶의 일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이 혼자 사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고 하는 말이 생겨났는가 한다.

 

어언 江山도 변한다는 십년을 넘기고도 육 여년을 혼자 살다보니 혼자 사는데 매우 익숙하여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가도, 지난날들을 되새겨보면 나름대로 즐거웠고 아름다운 날도 그리웠던 날도 아쉬웠던 날도 슬펐던 날도 미웠던 날도 수많이 있었다고 생각이 들어, 이게 人生인가 하고 혼자 웃기도 하여본다.

 

사람이 한 生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번의 여러 형태로 만나는 인연(因緣)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혹여는 인연이 없는 사람도 인연이 늦어 막에 닿는 사람도 있나 보는데, 아니 성격이나 주위 사정 등 여러 여건 때문에 인연이 닿지 않는 사람, 인연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가 보다, 그러다가 다시 운이 좋아서 숙명적으로 좋은 인연을 마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인연도 만날 수가 있기에, 만나는 인연에 따라 희비애락(喜悲哀樂)이 따르는 게 우리 人生이고 사람이 사는 人間事이다.

 

아침 禮佛을 마치고 조용히 생각을 하여 본다, 어떻게 살아 왔는가 하고 생각에 잠겨보기도 한다, 지난 일 여년을 되돌아보니 일방적으로 혼자 생각이지만 참으로 좋은 인연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참으로 좋은 운을 만났다고 생각이 들기도, 아니 오래 기다림의 보람이라고도 생각이 들기도 한다.

 

늦게나마 만나 인연인데도 마음이 한 결 같이 곱고 이해심이 깊고 사리에 밝아 후회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마음의 인연이다, 그러기에 마음에 부담이 없어 평온하고 아늑함을 느끼기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떨어져 지나고 있어도 늘 같이 있는 마음이며, 늘 그 사람의 따사한 체온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혼자 마음을 붉히기도 하고 있다, 이것이 행복이고 사랑이다.

 

사람은 참 인연으로 만나 함께하는 참 마음이 참 사랑이다, 사랑이란 둥글지도 모지도 색체도 없으나, 무한한 사람다운 향기를 내며 따사한 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어떠한 조건도 없이 주고도 더 주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 하는 말이 이즈음 이해가 되는 것이다.

 

함박눈 내리는 속에 살포시 웃으며 짝이 아련하게 떠오르며 다가온다, 그래서 그를 그리며 오래 만에 童心으로 돌아가 눈보라 속으로 걸어 보니 만감이 교차하며, 그 사람 생각으로 매어지는데 문득 님을 그리워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한 옛시조 연정가(戀情歌)‘꿈에 뵈는 님이’떠올라 적어본다,

 

   꿈에 보이는 임이 믿음성이 없다고 하지마는,

   못 견디기에 그리울 때 꿈이 아니면 어떻게 만나 볼 수 있겠는가

   임이여, 꿈이라도 좋으니 자주자주 만나 뵙게 해 주소서.

 

예부터 꿈은 현실과 반대라는 속설이 있지만 못 견디게 그리운 임을 꿈이 아니면 만나 볼 길이 없으므로, 차라리 꿈에서라도 자주 만나고 싶다는 明玉(靑丘永言)의 애절한 글인데 요즈음 그와 같은 심정이었나 보다.

 

우리 인연은 서로 떨어져 살다보니 생각에서나 만남에서나 늘 그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함께 있으면 고맙고 포근하며, 헤어져 갈 때면 마음 한구석에 서운함을 느끼도록 아쉬우나, 서로의 생각 그리고 만남 그리고 헤어짐, 또 만남을 이어져 가면서 우리는 마냥 행복하기만 한 늦깎이 인연인가 한다.

 

우리 다함께 이제 함박눈이 내린 뒤, 창을 열고 봄을 맞으러 가야 하겠다, 지난 어릴 때처럼 고향 山河 들녘을 향하여 활짝 가슴을 펴고 봄을 맞으러 가듯이, 그의 인연 그 사람을 뵈오려 달려가고 싶구나, 우리 인연 大吉하기를 부처님 전에 기원을 하고 싶구나.

 

                                        함박눈이 내린 날 아침.

 

                                                                                       

 

출처 : 碧珍(벽진)
글쓴이 : 碧珍(日德. 靑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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