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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遷位 기행 .3 김성일-유성룡

碧 珍(日德 靑竹) 2010. 8. 4. 16:22

[不遷位 기행 .3] 학봉·서애 불천위 제사 참관기
 밤12시30분쯤 出主로 제사 시작…제관은 50여명
 후손중 가문 빛낸 인물…조상께 알리는 고유식…학봉종가만의 전통의식
 풍산김씨·진성이씨 등 후손 외 다른 문중 참례…오전 2시 넘어서 끝나
   
안채 대청과 마당을 가득 메운 제관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서애종가)
안채 대청과 마당을 가득 메운 제관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서애종가)
◆학봉종가 불천위제사

학봉 김성일(1538~93)의 불천위 제사를 보기 위해 지난달 11일 학봉종택(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을 찾았다.

이날 오후 5시30분, 앞으로는 내가 흐르는 들판이 펼쳐지고 뒤에는 소나무가 무성한 야산 아래에 자리잡은 학봉종택에 들어섰다. 여러 어른들이 앉아 있는 사랑채 마루에 올라 종손(김종길)과 인사를 나눈 뒤 김치와 전, 떡을 안주로 삼아 막걸리를 마시며 불천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와 있는 이들을 위해 6시30분쯤 안채에서 국수를 삶아 저녁으로 내놓았고, 식사 후 시간이 흐르면서 종택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졌다.

밤 9시30분쯤 불천위 제사의 실질적인 시작이라는 분정(分定: 소임 정하는 일)이 시작됐다. 종손을 비롯한 주요 일가 어른들이 사랑채 방에 모여앉아 붓글씨로 집사(執事)를 맡은 제관 이름을 차례대로 써 나갔다. 규격에 맞춰 쓴 뒤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 진설(陳設), 축(祝), 홀(笏), 봉향(奉香), 봉로(奉爐), 봉촉(奉燭), 봉잔(奉盞) 등의 소임을 적어놓은 판에 붙였다.

밤 10시10분쯤 현재 후손 중 가문을 빛낸 인물을 불천위 조상께 고하는 고유식이 시작됐다. 학봉종가만의 의식이다. 고유할 대상 인물은 선출직 공무원 당선자, 일정 직위 이상의 공직자, 사법시험 등 주요 국가고시 합격자 등이다. 이날 고유한 후손은 4명이었다. 후손들 모두 사당으로 가서 사당 안팎에 자리잡고 식을 진행했다. 사당 안 불천위 위패 앞에 간단한 음식상을 차리고 훈장증 등을 함께 올린 뒤, 절차에 따라 예를 올렸다.

이 고유식이 끝난 뒤 간단히 차려진 음식과 막걸리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12시30분쯤 되자, 제관들이 제상이 차려진 안채로 모여 마루와 마당에 자리잡으면서 제사가 시작됐다. 제사에 참석한 남자 제관은 50여명.

제사는 정침 동쪽 뒤편에 있는 사당으로 가서 신주를 모셔오는 출주(出主)로 시작됐다. 종손과 집사자 몇 명이 사당으로 가서 출주를 고한 뒤, 촛불을 앞세우고 향로와 신주를 모시고 제청으로 와서 교의(交椅: 제사 때 신주를 모시는 높은 의자)에 봉안했다. 그리고 제상 아래 준비해둔, 익히지 않은 고기를 쌓은 도적(都炙)과 떡을 마지막으로 제상 위에 올린 뒤 제례를 시작했다.

종손의 초헌 후 아헌을 종부가 하고, 종헌은 학봉 후손과 학봉의 후학인 경당 종가의 종손이 올렸다. 절차를 모두 끝내고 신주를 다시 사당으로 모시면서 제사는 마무리됐다.

오전 1시10분쯤 제사가 끝났다. 그리고 부인들이 대청과 주방에서 숙련된 손놀림으로 차려낸 음식(비빔밥 등)으로 1시30분쯤 방과 마루, 마당에서 음복이 시작됐다.
불천위 제사의 소임을 정하는 절차인 분정(分定) 모습.(학봉종가)2
불천위 제사의 소임을 정하는 절차인 분정(分定) 모습.(학봉종가)
불천위 제사를 위해 사당의 신주를 제청으로 모셔가고 있다.(서애종가)3
불천위 제사를 위해 사당의 신주를 제청으로 모셔가고 있다.(서애종가)
제사가 끝난 후 안채 마당에서도 제관들이 음복을 하고 있다.(학봉종가)4
제사가 끝난 후 안채 마당에서도 제관들이 음복을 하고 있다.(학봉종가)


◆서애종가 불천위제사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서애종가)의 서애 류성룡(1542~1607) 불천위 제사일은 지난달 17일.

16일 저녁, 350여년 된 종택 충효당에 두루마기 차림의 어른들이 속속 찾아들었다. 사랑채 대청에는 서애 14세 종손 류영하옹이 찾아오는 이들을 맞고 있고, 안채에서는 종부를 비롯한 일가 부인들이 제수(祭需)를 준비하는 데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6시30분쯤 저녁식사를 했고, 식사 후 속속 도착하는 제관들을 맞으며 서로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시간을 보냈다. 밤 10시쯤 되자 각지에서 제관들이 대부분 도착했다. 제관들은 10시가 넘자 안채에서 떡과 술로 간단하게 차려내 온 야식(서애종가에서는 '야화'라 부름)을 먹으면서, 서로 안부와 소식을 나누었다. 바둑을 두는 이들도 있었다.

밤 12시40분쯤, 모두 의관을 갖추고 제상이 차려진 안채의 대청과 마당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50여명의 남자 제관이 대청과 마루, 마당에 가득했다. 서애의 후손뿐만 아니라, 풍산김씨와 진성이씨 가문의 사람도 참석했다. 불천위 제사에는 원래 다른 문중에서도 많이 참례했으나 요즘은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곧 제사가 시작되고, 먼저 종손을 비롯한 유사 5~6명이 사랑채 뒤편에 있는 불천위 사당에 가서 분향한 뒤 출주(出主)를 고하고 신주를 모셔와 제사상에 봉안했다. 이어 제관 모두가 신주에 인사를 드리는 '참신(參神)'을 시작으로 제사가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신주는 다시 사당에 안치됐다.

제사가 끝난 시각은 오전 1시15분쯤. 제관들은 다시 사랑채로 돌아가 자리를 잡고, 제사음식을 음복하며 문중 일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오전 2시가 훨씬 넘어서야 모든 절차가 끝나고,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고 남을 사람은 남았다.

이 두 종가의 불천위 제사는 예전과 별 차이가 없이 잘 유지되고 있는 사례에 속한다. 다만 제관의 수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제수나 음복 음식의 양이 감소했다. 예전에는 제관이 수백 명에 이르고, 수많은 제관들을 위해 소나 돼지도 잡았다고 한다.

환경의 변화로 지금은 그 규모나 관심이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불천위 제사는 여전히 가문과 지역 유림의 자긍심을 유지시켜 주는 제례문화로 역할하고 있다. 일부 불천위 제사의 경우, 후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관심을 가지고 참가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보인다.

충효당은 불천위 제사 참관자들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고, 안채 마당의 화단과 장독대를 옮겨 더 많은 사람들이 제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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