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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遷位 기행.2

碧 珍(日德 靑竹) 2010. 8. 4. 16:11

[不遷位 기행 .2] 제례의 과거와 현재
 글씨 : 土民 전진원
 儒林도 祭官으로…요즘은 대부분 문중 후손들만 참례
 
불천위 제사는 불천위 신주를 사당에서 제청으로 모셔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진은 지난달 11일 새벽 학봉 불천위제사 때, 불천위 신주를 모셔오기 위해 학봉종택의 사당으로 향하는 제관들.
불천위 제사는 불천위 신주를 사당에서 제청으로 모셔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진은 지난달 11일 새벽 학봉 불천위제사 때, 불천위 신주를 모셔오기 위해 학봉종택의 사당으로 향하는 제관들.
제사 절차는 보통 忌祭祀와 같아

◆불천위 제사는

불천위 제도는 불천위 제사에 의해 실질적으로 유지된다. 불천위 제사는 불천위 조상의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를 말하며, 불천위대제(不遷位大祭) 또는 불천위기사(不遷位忌祀)라고도 한다. 제사의 절차는 가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통상적으로 일반 기제사의 절차에 준한다.

불천위 제사에는 지방의 유림이나 유지도 참여하기 때문에 종손이 주재하되, 문중의 후손뿐만 아니라, 유림에서도 제관이 선정된다는 점이 일반 기제사와는 다르다. 요즘은 대부분 문중 후손들만 참례하는 것이 현실이다.

제사를 앞두고 심신을 깨끗이 하며 금기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일을 재계(齋戒)라 하는데 이를 매우 중요시했다. 이런 재계를 통해 몸과 마음순수하고 밝은 상태에 이르게 함으로써, 조상신을 맞이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제사에 쓰는 제반 기구인 제구는 오직 제사에만 사용하는데, 제사를 지내기 전 깨끗이 씻어 두어야 함은 물론, 다른 용도로는 쓰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빌리거나 팔지도 말아야 한다. 제수도 다른 기제사와는 달리 최대한 정성과 솜씨를 발휘해 성대하게 준비한다.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과정과 절차는 기제사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리고 그것은 16세기 이후 주자가례를 중심으로 고착화된다. 주자가례에서 제시한 과정과 절차가 공식적인 제사의 절차로 인정받았고, 각 가문은 이를 바탕으로 제사를 지냈다.

이런 전통은 그대로 계승돼 경북 종가 대부분 주자가례에서 규정하는 절차와 과정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가문이 처한 상황과 시대에 따라 절차와 내용은 조금씩 바뀌어왔다.


종묘·문묘·가묘에 위패 봉안

◆불천위 위패를 모시는 공간

불천위 위패(또는 신주)는 그 대상에 따라 종묘(宗廟)와 문묘(文廟), 가묘(家廟)에 봉안된다. 종묘는 왕이나 왕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고, 문묘(조선시대에는 성균관과 향교에 세워짐)는 유학의 종통을 세우고 정신적 지주가 된 인물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종가의 사당인 가묘는 뛰어난 공적이나 학덕으로 그 집안의 종통을 잇게 한 인물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종택의 불천위 사당은 4대 봉사(奉祀)의 대상인 신주가 있는 일반 사당이 아니라 별묘를 세워 따로 모시기도 하고, 4대 신주와 함께 모시기도 한다.

종가는 통상 안채와 사랑채, 부속채, 행랑채 등으로 이뤄진 주거공간과 입향조나 불천위 신주를 모시는 사당공간으로 구분된다. 불천위를 모시는 사당을 특별히 '부조묘(不廟)'라 부르기도 한다. 가묘는 고려말부터 설치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조선 후기에는 일반화되었다. 불천위 사당은 대부분 정침(正寢: 가옥의 본채)의 동편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가례 규정에도 정침의 동쪽에 위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동쪽은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고, 해가 뜨는 방향이니 조상이 가장 먼저 햇볕을 받도록 하려는 뜻에서 잡는 위치라 하겠다.

한 집안에 한 사람 이상의 불천위 위패를 두지 못했던 조선 전기의 원칙에 따라, 불천위 위패를 서원에 봉안한 경우나, 따로 사당을 지어 봉안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불천위 신주는 밤나무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땅 속 씨앗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밤나무처럼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출주-참신-강신-진찬 등 順으로
불천위 제례문화의 중심 공간은 불천위 위패를 모시는 종가의 사당이다. 사진은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서애 종가)의 사당.2
불천위 제례문화의 중심 공간은 불천위 위패를 모시는 종가의 사당이다. 사진은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서애 종가)의 사당.


◆불천위 제사 순서

불천위 제사는 일반적으로 사당에서 신주를 제청으로 모셔오는 '출주(出主)'-사당에서 가져온 신주를 교의에 모시고 개봉한 다음 참사자 전원이 신주에 인사를 드리는 '참신(參神)'- 향을 피워 천상의 혼을 부르고 술을 부어 지하에 있는 백을 모셔와 혼백(魂魄)을 일치시키는 의례인 '강신(降神)'- 음식을 올리는 '진찬(進饌)'(현재 대부분 종가는 출주하기 전이나 출주한 뒤 참신하기 전에 메와 갱을 제외한 모든 제수를 올림)- 술잔을 올리는 초헌·아헌·종헌- 신에게 식사를 권하는 '유식(侑食)'- 식사하는 동안 잠시 문을 닫고 기다리는 '합문(闔門)'- 신의 식사가 끝난 뒤 문을 열고 들어가 차를 올리는 '계문(啓門)'- 절차를 끝내고 신을 보내드리는 '사신(辭神)' 등 순서로 진행된다. 사신례가 끝나면 신주는 주독(主:위패를 넣어두는 괘)에 모시고 다시 사당에 안치한다.


子時 종가서 지내던 전통에 변화

◆불천위 제사의 변천

제례에서 구체적 절차나 과정을 생략하거나 바꾸는 시도는 쉽지 않다. 반면 시간과 공간 등 제례를 진행하는 기반 조건은 변화가 용이한 편이다. 경북의 종가들도 환경과 시대변화에 따라 점차적으로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이 최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그 변화 모습을 살펴본다.

▲제사 시작 시간= 제수를 올리는 '설소과(設蔬果)' 시간이 기준이다. 주자가례에는 기일의 새벽에 제수를 진설한다고 되어 있다. 대체로 자시가 되면 제사를 지내도 되는 것으로 판단, 밤 12시에서 1시 사이에 설소과를 시작한다. 경북 종가 대부분 그 시간에 제사를 지내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 어려움과 종가의 유지·발전을 위한 선택 등을 이유로 시간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복종택, 탁영종택, 묵헌종택, 오봉종택 등에서는 기일 저녁 8시~9시에 지내고, 옥천종택의 경우처럼 양력으로 환산한 기일(8월15일) 오전 11시~오후 1시에 지내는 파격적인 경우도 있다. 불천위 제례 시간의 이같은 변모는 문중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의미나 영향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제례시간을 이렇게 바꾸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관의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농경생활 위주의 전통적 삶이 파괴되면서 후손들이 대부분 외지로 흩어짐에 따라 제관의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시간을 바꾸면서 제사에 대한 관심도 늘고 참석하는 제관의 숫자도 훨씬 늘었다고 한다. 기일을 양력으로 바꾸고 대낮에 지내기로 한 옥천종택의 경우는 혁신적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갈수록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제사 장소 = 제례공간도 변화하고 있다. 불천위 제사는 통상 사당이 있는 종택의 정침에서 지낸다. 이와함께 사랑채, 제례를 위해 만든 제청이나 사당 등에서 지내는 경우도 다수 있다. 최근들어 종손이 종택에 거주하지 않는 경우도 생기면서, 종손이 있는 곳에서 제사를 모시기도 한다. 종손이 종택만 지키며 살 수가 없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종가의 고민거리다. 제관의 많고 적음 등 환경에 따라 사랑채에서 사당 등으로 장소를 옮긴 경우도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경제적 여건, 종교 문제 등으로 불천위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됨으로써 유명 무실한 불천위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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