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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천위 제사는 불천위 제도는 불천위 제사에 의해 실질적으로 유지된다. 불천위 제사는 불천위 조상의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를 말하며, 불천위대제(不遷位大祭) 또는 불천위기사(不遷位忌祀)라고도 한다. 제사의 절차는 가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통상적으로 일반 기제사의 절차에 준한다. 불천위 제사에는 지방의 유림이나 유지도 참여하기 때문에 종손이 주재하되, 문중의 후손뿐만 아니라, 유림에서도 제관이 선정된다는 점이 일반 기제사와는 다르다. 요즘은 대부분 문중 후손들만 참례하는 것이 현실이다. 제사를 앞두고 심신을 깨끗이 하며 금기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일을 재계(齋戒)라 하는데 이를 매우 중요시했다. 이런 재계를 통해 몸과 마음이 순수하고 밝은 상태에 이르게 함으로써, 조상신을 맞이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제사에 쓰는 제반 기구인 제구는 오직 제사에만 사용하는데, 제사를 지내기 전 깨끗이 씻어 두어야 함은 물론, 다른 용도로는 쓰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빌리거나 팔지도 말아야 한다. 제수도 다른 기제사와는 달리 최대한 정성과 솜씨를 발휘해 성대하게 준비한다.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과정과 절차는 기제사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리고 그것은 16세기 이후 주자가례를 중심으로 고착화된다. 주자가례에서 제시한 과정과 절차가 공식적인 제사의 절차로 인정받았고, 각 가문은 이를 바탕으로 제사를 지냈다. 이런 전통은 그대로 계승돼 경북 종가 대부분 주자가례에서 규정하는 절차와 과정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가문이 처한 상황과 시대에 따라 절차와 내용은 조금씩 바뀌어왔다. 종묘·문묘·가묘에 위패 봉안 ◆불천위 위패를 모시는 공간 불천위 위패(또는 신주)는 그 대상에 따라 종묘(宗廟)와 문묘(文廟), 가묘(家廟)에 봉안된다. 종묘는 왕이나 왕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고, 문묘(조선시대에는 성균관과 향교에 세워짐)는 유학의 종통을 세우고 정신적 지주가 된 인물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종가의 사당인 가묘는 뛰어난 공적이나 학덕으로 그 집안의 종통을 잇게 한 인물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종택의 불천위 사당은 4대 봉사(奉祀)의 대상인 신주가 있는 일반 사당이 아니라 별묘를 세워 따로 모시기도 하고, 4대 신주와 함께 모시기도 한다. 종가는 통상 안채와 사랑채, 부속채, 행랑채 등으로 이뤄진 주거공간과 입향조나 불천위 신주를 모시는 사당공간으로 구분된다. 불천위를 모시는 사당을 특별히 '부조묘(不廟)'라 부르기도 한다. 가묘는 고려말부터 설치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조선 후기에는 일반화되었다. 불천위 사당은 대부분 정침(正寢: 가옥의 본채)의 동편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가례 규정에도 정침의 동쪽에 위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동쪽은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고, 해가 뜨는 방향이니 조상이 가장 먼저 햇볕을 받도록 하려는 뜻에서 잡는 위치라 하겠다. 한 집안에 한 사람 이상의 불천위 위패를 두지 못했던 조선 전기의 원칙에 따라, 불천위 위패를 서원에 봉안한 경우나, 따로 사당을 지어 봉안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불천위 신주는 밤나무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땅 속 씨앗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밤나무처럼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출주-참신-강신-진찬 등 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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