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사상

[스크랩] 日帝下 韓人의 삶을 親日.反日의 잣대로만 평가할수 없다.

碧 珍(日德 靑竹) 2010. 3. 15. 08:23

출처 : 내 가슴이 너를 부를 때
글쓴이 : 벽 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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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帝下 韓人의 삶을 親日.反日의 잣대로만 평가할수 없다.

     

     

                              - 私단체가 역사인물을 낙인찍는 나라 또 있나 -


     


    우리 사회에서 개념도 불분명하였고 논의조차 하기 어려웠던 親日 문제를 처음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고 임종국 선생(1929~89)의‘친일문학론’이었으며, 1966년 초판 1천500부가 다 팔리기까지 13년이 걸린 이 책은 친일파가 우리사회의 주류로 등장한 당시로서 문단 거목들의 친일행각을 낱낱이 고발하여 엄청난 파장을 불렀다.


    그는 1929년 10월 26일 경남 창녕군 창녕 출신으로 고 任종국 선생이 1966년 친일문학론으로 친일 청산의 화두를 던졌던 것으로, 당시 지식인 사회의 충격이 컸으며 그가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하여 친일 문제에 매진했는데. 89년 그가 돌아가시기 직전 친일파 연구 총서를 기획하고 그 안에 친일인명사전 수록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착수도 제대로 하시기 전에 돌아가셨으며, 임종국은 그 후 숨을 거둘 때까지 발로 뛰며 찾아낸 1차 史料를 양심에 따른 철저한 비판의식으로 분석하며, 숱한 친일관련 저술 작업을 이어갔다.


    그는 천도교 청우당 대표로 일제시대 국방헌금을 모았던 부친 임문호의 친일행적을 공개하고, 스승 유진오와 친척들의 과오도 고발하였으며, 평생 가난에 시달린 그를 보다 못한 지인들이 연구재단의 연구비라도 타보라고 권하자, 그러면 붓끝이 떨려 못 쓴다고 거절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민족문제연구소 등이‘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4천776명의 명단을 공개하였는데, 광복 이후 한국 현대사를 이끌어 온 유명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가족과 관련단체들이 선정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의신청과 법적대응에 나서겠다고 반발 하고 있으며. 수록인물과 그 선정이유가 첫째 관심사지만, 확실한 보수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의 명단공개여서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


    생각하기에 따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4776명의 명단을 발표한 데 대하여, 과거를 의도적으로 후벼 파는 것은 미래를 향하는 발길을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시할 수 있으나, 우리가 일본도 용서하는데 친일이라고 용서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또한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알고서 용서라도 하여야할 것 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설움으로 어려움으로 고통과 눈물짓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으며, 抗日의 돌베개를 베었든 附日의 영화와 영달에 편승하였든 암혹한 시절의 우리 민족의 삶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온전하였기는 만무하나, 오늘과 내일도 살피는 역사는 어제의 눈물과 신산함에만 현혹되는 법이 없어며, 한 시대와 삶의 자취를 차가운 史實의 저울에 비추어놓고 가감 없이 되돌아보는 게 바로 歷史이며, 엊그제 친일인명사전 명단 발표는 완벽하다고는 못하지만 반듯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역사의 냉정과 엄정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으로 사전을 만든 이들은 친일명단이 인물에 대하여 전체적 평가가 아니라, 허물의 과거에 대하여 반성의 자료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반대론자들은 반성 자체를 불편해 하고 있는데, 일제에 협력한 자발성.적극성.반복성.중복성.지속성을 잣대로 선정했다고 설명하는데도, 이들은 공과의 균형을 잃었고 기준도 없다며 막무가내이나, 이것은 해방되고 처음으로 친일의 허물을 밝혀 功과 過를 함께 살필 수 있게 되었기에 명단 공개가 균형을 잃었다는 지각없는 몰상식한 역사적인 반론을 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또한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는 있지만 전문가들이 7년에 걸친 검증 결과에 대하여 막연하게 정치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정치적일 뿐 역사적이지 못한 무교양주의의 소치이고, 친일명단 공개에 대한민국 정체성과 가학사관(苛虐史觀)을 끌어들이는 것은 지난 허물에 대한 평가를 후손들에게 미루려는 옳지 못한 비겁한 발상법으로 사료되는데, 사실로 균형을 잃었다고 여긴다면 어떤 기준에 어긋났는지를 진솔하고 정교하게 따져 이의를 제기하여야 옳을 것이다.


    그러기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29일‘親日人名사전’에 실을 4776명의 명단을 공개하였는데, 이는 2005년 8월 1차로 발표했던 3090명에다 이번에 1686명을 추가한 것인데, 최종 명단에는 대한민국 國歌인 愛國歌의 작곡자. 대한민국 國旗인 太極旗를 처음 만든 사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고 즐겨 불러왔던 국민가곡의 작곡자.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자. 16년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있었던 인물도 들어 있는데, 연구소는 앞으로 60일 동안 대상자들의 유족과 관계자. 학계 의견을 들은 뒤 8월 말 책을 간행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하는 사업은 당연하나 졸속적이라는 비난을 듣지 않도록 소명시간과 기존 전문가와 달리 생각하는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도 참가시켜서 출반전에 폭 넓은 재검토작업을 하였으면 한다.


    그러기에 물론 역사의 엄정함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이 없을 리 없으나, 150명의 전문가가 7년 작업 끝에 2차 추가명단을 발표하자 불거진 낯익은 반론들이 그러한데, 李 대통령은 국민 화합 차원에서 친일문제는 功過를 균형 있게 봐야 될 것 같다며 심지어 우리가 일본도 용서하는데 라고 부정적 논평을 덧붙였고, 姜 대표는 과거를 너무 지나치게 후벼 파는 것은 미래로 가는 발길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고 했으며, 또한 식민지근대화론을 편들고 있는 New right 전국연합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반국가적 행위라는 험한 말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 간 세월을 이 땅에서 살아온 조선인 대부분의 삶은 親日과 反日의 二分法으로 나누기에는 너무나 복잡다단하며, 일제 시대에 청장년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洪난파가 작곡한 수백 편의 한국가곡‘성불사. 봉선화’등을 통하여 나라 잃은 백성의 슬픔과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며 나라를 되찾아야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하였던 세대이나, 물론 그는 일본의 강압 통치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 일제의 강요에 의하여 몇 편의 軍歌를 작곡하였다고 하여, 독립된 나라 대한민국에서 마음 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우리가 잘난 듯이 洪난파에게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여도 과연 되는 일이며 또한 일인가 한다.


    그런데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친일파에 대한 민족감정이 가장 높았을 때 활동한 반민특위가 조사한 사람이 688명이었으며, 2005년 발족한 정부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이제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301명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이번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민특위 후 6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7배에 해당하는 사람을 친일파로 규정한다는 것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토록 친일파가 많아진 것은 반민특위가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섰거나, 일본의 관작)을 받은 고관. 친일단체 간부. 독립 운동가를 탄압하였던 고등경찰.밀정 등 악질적 행위자를 친일파로 규정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일제시대에 일정한 직위에 있었던 인물과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 선전한 문화예술인들을 모두 친일파로 발표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에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4776명의 명단을 발표하자, 그 후손과 기념 사업회 등이 명예훼손에 강한 분노를 나타내고 있는데, 당사자들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되었고 후손이 선조를 아무리 변호하여도 낙인(烙印)의 피해를 이미 본 뒤라, 억울한 피해자를 한 사람이라도 줄이기 위하여서는 친일 문제에 대한 판단을 학계의 체계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에 맡겨야 하겠다.

     

    왜냐하면 생각하기에 검증능력이 떨어지는 私的단체가 자체적으로‘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명단’을 만들어 공개하였고, 또 앞으로 4개월 동안 이의를 제기하면 받겠다고 하고 있는데, 대체 누가 이들에게 그런 자격과 권한을 주었으며, 후손이나 기념 사업회 등으로서는 국민이 공인할 수준의 기관도 아닌 단체들을 상대로 시비를 가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퍽으나 난감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명단은 1차로 발표됐던 3090명 외에 새로 1686명을 추가한 것이라고 하나, 선정기준은 최소한의 형평성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인데, 朴정희 전 대통령에 대하여 이들은‘친일 행위로 봐서는 그리 대단한 게 없다면서, 하지만 일본 군대에서 위관 급으로 있었던 사람을 친일인사로 보는 기준에 따라 명단에 올렸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국가 발전과 민생 향상으로 국가 근대화에 기여한 공적으로 볼 때 국민이 존경하는 지도자 1위에 올라있는 인물을 이런 식으로 멋대로 재단하고 평한다면 옳지 못하고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지탄 받을 일이다.


    그런데 문제의 단체들은 문화예술계 인사에게는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하여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고 하지만 학계에선 정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문화인에게 창작 활동은 생명과 같은 것이고 그 당시는 어떤 형태로든 일제에 협조하지 않으면 작품 발표의 기회가 봉쇄되었던 특수한 상황이었음을 감안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그 시대를 살아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더욱 평가니 비판이니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하는데 무리한 말은 아니라 사료된다.


    특히 걱정스럽고 우려 되는 문제는 이 단체들은 과거사 정리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左편향적 역사관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왔고 이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단체들이라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번 발표는 의도적으로 과거를 향하여 저주의 칼을 휘두르는 폭거나 무엇이 다른지 알 수가 없고, 일제하 인물들에 대하여서는 식민통치라는 강압적 체제 속에서 어디까지를 친일행위로 봐야 하는지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진 뒤 평가하는 게 순리이고 늦지도 않은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친일명단에 더러는 6·25전쟁 때 북한에 납치돼 비명에 간 인사들도 있으며, 일제 치하에서 혹독한 탄압을 견디며 설혹 한두번 훼절한 인사도 있는데 그래도 그 인사들이 민족혼과 자주정신을 불어넣어 주었던 후배와 학생들의 아들딸들이 지금 그네들의 목에 친일파라는 걸이를 채우는 것은 이미 고인으로 지하에서 어떤 심정으로 볼 것인가 한다..


    또한 친일명단을 발표한 사람들이 그 암흑하고 모질었던 식민지 시대를 살아보고 자신을 대할 때는 서릿발 같이,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대하라는 지기추상, 대인춘풍(持己秋霜, 待人春風)의 마음자리를 지닌 사람들이었다면 이런 추태에 가깝고 국론을 분열할 수 있는 작태를 서슴없이 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기에 과거사 정리는 우리에게 여전히 뜨겁고 반듯이 치루고 가야할 일이나, 순전히 민간차원에서 이루어진 이번 일은 일찍이 국가 차원에서 하여야 할 일이었으며, 지금도 전국 방방곳곳의 집안 궤와 읍.면사무소 창고에 묻혀있을 수많은 자료를 민간차원에서 수집하기엔 한계가 있기에, 반민특위가 와해된 이후 한 차례도 치욕의 역사를 정리하지 않은 것은 국가 정체성의 문제일 뿐더러, 다음세대에 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음으로 시간이 걸려도 국가차원에서 국민의 중지를 모아 새로운 시각과 차원에서 이 사업을 마무리하여, 私단체가 역사인물들을 편향적인 낙인찍는 일은 없어야만 된다. 또한 일제하에 살았다고 하여 일제하 이들의 삶을 親日. 反日의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게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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