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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리더십.

碧 珍(日德 靑竹) 2008. 12. 1. 06:21

    오바마의 리더십.

    결점을 자산으로 바꾸는 스타일 적 만들지 않고 살아남는 법 배워,


     


    최현묵 기자

    "1860년 대학 졸업생들은 '연방을 수호하고 노예를 해방하라'는 링컨 대통령의 부름에 응했고, 1932년 졸업생들은 대공황 당시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두려움 뿐'이라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호소에 답했다. 또 1960년 졸업생들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라'는 케네디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흑인 민권운동, 정의, 평등을 위해 행진했다."

    버락 오바마(Obama) 상원의원은 2006년 6월 일리노이주 노스웨스턴대 졸업식 축사에서 졸업생들에게 리더십의 조건을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당시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감정 이입,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 역경에 맞서는 인내가 리더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흑인이라는 약점을 이기고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에 오른 오바마의 인생 역정 자체가 이러한 리더십의 조건을 갖추는 과정이었다고 보도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어린 시절이라는 핸디캡을 두 권의 자서전을 통해 전국적인 스타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발판으로 삼은 것이 '결점을 자산으로 전환시킨 리더십'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또한 오바마는 적을 만들지 않는 정치인이다. 어린 시절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다른 인종 집단과 어울려 살면서 배운 생존법이다. 6살 때 재가(再嫁)한 어머니를 따라 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오바마는 동네의 유일한 외국인 어린이였다. 동네 아이들이 떼로 몰려들어 저수지에 빠뜨려버리자 가까스로 물에서 나오고도 동네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보냈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기법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오바마는 2000년엔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한다. 그러나 이 도전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민주당의 흑인 현역 의원인 바비 러시(Rush)를 구세대 정치인으로 비판하며 당내 경선에 나선 오바마는 지역 흑인단체들로부터 "오바마는 백인들에 의해 조종되는 사이비 흑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고배를 마셨다.

    선거 패배 후 오바마는 유권자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진보적 정책만을 내세운 선거 운동이 문제였다고 시인했다. 그후 오바마는 선거운동 전략을 완전히 뒤바꿨다. CNN은 5일 "오바마의 대통령 선거 운동은 뚜렷한 실수가 없었던 미 역사상 가장 완벽한 캠페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의 회의 진행 규칙도 일정하다. 논쟁이 벌어지면 대립되는 입장을 가진 양측을 번갈아 두둔하는 식이다. 그러나 막상 회의가 끝나도 오바마의 입장이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오바마가 최종 결정을 발표하면 회의 참석자들은 깜짝 놀란다. 회의 때 나오지 않은 제3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회의에서 보여지는 오바마의 모습은 냉정한 심의자, 유창한 소통가, 추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학문적인 전문성을 갈구하는 학자의 모습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이런 오바마의 태도는 결정을 내리는 데도 이어진다. 늘 심사숙고하는 오바마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면서 가능한 대안을 검토해보고 반대측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 제기까지 충분히 파악한 뒤에야 최종 결심을 한다. 이렇게 내려진 결정은 쉽게 바꾸지 않고 밀고 나간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오바마의 성격에 관해 "언제나 냉정함을 잃지 않는 얼음과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대공황 시절 노변담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화력이 필요하다"고 타임은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