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근혜의 大衆性은 票와 연결 된다.
- 鄭몽준의 대중성은 표에 약한데, 정계 인맥은 ? -
鄭몽준 의원이 朴희태 전 대표가 보궐선거 출마로 그만둘 뜻을 비쳤을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지만, 鄭 대표의 취임은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로운 가운데, 한나라당 대표로 취임하였다. 즉 첫째로 鄭몽준 의원은 자수성가 한 李 대통령의 경우와도 분명히 다른 이런 인물이 주류 정치권의 대표 자리에 오른 건 우리 정치사 최초의 일이며, 현대중공업이라는 재벌 회사의 주인으로 부자이란 사실이다.
또 하나는 그가 대표에 취임한 이후 언론이 차기 대권 주자의 한 명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6선 의원이나 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정치 색깔이나 성향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는 평을 듣는 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처럼 政治人 鄭몽준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점이고, 또한 일반인들의 생각에는 鄭몽준은 政治人이 아니라 국가대표 선수들의 등을 두드리던 대한축구협회장이었다. 즉 정치의 주변 마당에 머물러 있었다고도 할 수도 있고 열심히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도 생각이 된다.
鄭 대표에 대하여 또 다른 기억은 2002년 일인데 당시 보수적 유권자들은 그가 盧무현 후보와 단일화하기로 동의한 데 대하여 불만과 배신을 가졌고, 또 진보적 유권자들은 그가 선거 직전 그 약속을 파기한 것에 대해 분노하였었는데 鄭몽준이 왜? 그랬을까 하나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 모른다.
鄭 대표는 1992년 아버지 鄭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에 참여하였었고,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통합21이라는 자신의 정당을 만든 것이 사실상 20년 이상 그가 정치를 하며 참여한 정당 활동의 전부이기에, 그의 본격적인 정당 활동은 실질적으로 한나라당 입당 때부터라고 본다면 政黨이라는 조직과 단체 속에서 서로 어울리고 부대끼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셈이 되겠다. 그러기에 그간 멀찍이 떨어져 있던 정당에 들어가서 대표까지 된 지금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비롯되는 黨 內外의 갈등을, 풀어내는 조정 능력을 어느 정도나 보여줄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그는 黨 代表 취임 이후 政治改革의 중요성을 역설하였고 野黨과의 관계 개선도 약속했는데, 모두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를 이루기 위하여서는 상당한 政治力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國民들이 아는 鄭몽준은 부자이고 전 대한축구협회장에 자리 매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그가 어디로 또 어떤 모습으로 黨을 이끌고 갈지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며, 또한 그의 체제가 순항하기 위하여서는 수산시장 방문과 같은 이벤트보다 政治人 鄭몽준과 더불어 그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라 있는 것이다.
李 대통령과 鄭몽준 신임 대표가 청와대에서 가진 첫 당청 회동은, 李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껴안는 효과를 鄭 대표는 힘이 실린 집권당 수장 이미지를 얻는 듯한 외견상으로는 WIN-WIN하는 모양새였으며, 특히 회동 말미에 20분가량 독대 시간을 할애한 것은 鄭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현안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개헌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양새인데, 黨 Think Tank(두뇌집단)인 여의도 연구소는 국회에서 헌법 학자들과 국회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선진화와 통합을 위한 개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를 열고 개헌 공론화 작업에 착수하였었다. 앞서 安상수 원내대표는 政治改革 3대 과제로 改憲과 行政區域 및 選擧制度 개편을 들고, 정기국회에는 개헌에 대하여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토론회에서는 소위 87년 체제에 따라 형성된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하여, 대통령 4년 중임제와 正副統領제 및 分權형 大統領制 도입 등 권력구조 대안 마련에 초점이 맞추어 졌다, 즉 87년 헌법은 대통령 직선과 단임제 실현 등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하였지만, 22년이 지나고 보니 현실적인 면에서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으며, 多樣化와 分權化라는 현 시대 흐름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정부형태와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비록 승계 대표지만 잠재적 대선주자급인 鄭몽준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즉 鄭 대표로선 입당 2년여 만에야 여당의 대선주자로 자신을 시험할 기회를 얻은 셈이지만, 무미한 정치 색깔과 재벌 이미지 등 넘어야 할 한계도 적지 않으며, 그의 취임 일성은 그간 保守-富者-강경으로 비치던 지금까지의 한나라당이 아닌 새로운 한나라당을 만들겠다며 서민과 변화였다.
하지만 의욕적 출발과 달리 그의 앞길에는 만만찮은 험로들이 놓여 있다. 親李-親朴 계파 화합 문제와 새로운 黨-政-靑 관계의 정립 및 내년 2월 조기 전당대회 요구 등 소장파들의 쇄신론 등 모두가 풀어야 할 난제들이다.
鄭몽준 대표는 무엇보다 측근 의원이 3~4명 정도에 불과하기에 취약한 黨內 기반은 대표로서 가장 힘든 한계로 작용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기에,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黨內 역학구도 변화로 도모할 수밖에 없는 현실 상황이다.
그리고 재벌 회장이 대표이기에 조금만 다른 소리가 나와도 財閥黨이라 하지 않겠느냐 수도권 중진의원들의 우려처럼, 庶民論과 상충하는 胎生的 재벌 이미지도 계속 따라다닐 것도 과제인 것이다. 그러기에 현재로서는 모든 것이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정치실험의 상황이라 볼 수 있다.
한편 鄭몽준 대표는 화려한 경력에 맞게 마당발 인맥을 자랑하나, FIFA 부회장. 국회 한미의원외교협의회 회장. 현대중공업 대주주 등 유력한 경제인-체육인-외교통으로서 국내외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지만, 지난 21년 여의도 세월의 대부분을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지내왔다는 점에서 정치권 인맥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으로, 무엇보다 親李-親朴 등 양대 계파가 공고히 자리하고 있는 黨內에서, 소위 鄭몽준 맨으로 불리 울만한 의원은 손으로 셀 수 있는 정도로 적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즉 鄭 대표로부터 울산 동구를 물려받은 안효대 의원과 현대건설에서 근무한 신영수 의원 및 처조카 사위인 홍정욱 의원, 2002년 대선 당시 국민통합21에서 호흡을 맞춘 전여옥 의원 등이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학교를 매개로 한 신 여권핵심으로는 서울 상대 선후배의 인연인 鄭운찬과 울산대(현대학원)이사장인 鄭 대표와 울산대 총장이었던 鄭정길 대통령실장의 인연이 눈길을 끌고 으며, 또 朴근혜 전 대표와는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이고, 이와더불어 정치권 외곽에서 2002년 대선 당시 鄭몽준 후보 후원회장을 맡았던 李홍구 전 총리와 鄭 대표가 설립한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과 2022년 월드컵축구 유치위원장을 맡아던 韓승주 전 외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Think Tank를 목표로 설립하고 올 연말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인 아산정책연구원과 정치-정책 활동을 보좌하는 기능을 수행 중인‘해밀을 찾는 소망’은 鄭몽준 대표의 Think Tank가 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 鄭 대표가 중-하위직 당직 개편을 하면서 전여옥 의원 등 鄭 대표와 가까운 인사도 다수 기용하였는데. 이어 재선의원의 자리에 초선으로 대외협력본부장에 申영수. 지방자치위원장에 呂상규. 국제위원장에 洪정욱 의원도 정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로 분류되고 있으며, 또 親李 성향의 權택기 의원 기획위원장에 親朴성향의 李계진 의원이 홍보기획본부장 겸 홍보위원장에 발탁되었다.
한편으로 鄭몽준 대표가 광폭행보에 불구하고 수도권에 표 호소력의 한계로 인하여, 선거에서 거대 여당 대표로 치른 첫 시험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위기에 처하므로 그의 입지도 흔들거린다. 즉 민심의 예민한 변화가 그대로 흡수되는 수도권 지역에서 여당은 모두 졌고 특히 水原 장안은 그가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하였던 곳이다.
문제는 鄭몽준 대표 개인에게는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으나, 할 만큼 했다는 평을 뒤집어 보면 그 이상은 힘들다는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며, 黨內의 취약한 입지와 일천한 선거 지휘 경험은 차치하고라도 무엇보다 대중성만은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으나, 그러나 鄭몽준의 大衆性은 朴근혜 전 대표와 달리 표(票)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모양새가 되었었다. 그래서 앞으로 黨內에선 黨 쇄신론과 조기 전당대회론이 다시 떠오를 가능성이 있기에 鄭 대표의 앞길은 순탄하지만 않을 것이라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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