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벽진]
사람은 죽을 때도, 알 것은 알아야.
- 今生을 하직할 때도 道理. 廉恥와 分數 알아야 -
金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민주당 內外는 너 나, 야 자 할 것 없이 모두가, 자신이 金대중의 政治的 理念을 승계하여 나갈 적자라고 하고 나섰기 때문에 유언문제로 적자 논쟁으로 시끄럽기에 地下의 金대중도 머리가 아플 것이다.
故 金대중 측근들 사이에 金대중 사망 직후인 지난 달 25일 DJ 입장을 그간 대변하여온 민주당 朴지원 의원이, 民主黨은 丁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野 4黨과 단합하고 民主市民社會와 연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주장한 것이 발단이 되어, 소위 金대중 유언(遺言)의 진위 여부를 둘러쌓고 논란이 벌어져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만감이 교체하는 심정이다.
그러자 비주류를 중심으로 朴 의원이 金대중 국장을 거치면서 遺言政治를 남용한다는 반발이 나왔고, 權노갑 韓화갑 韓광옥 등 동교동 家臣그룹에서도 朴 의원에 대하여 불쾌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말들이 나왔으나, 서거 이후 바로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제하는 분위기였을 뿐이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더욱 희괴한 것은 鄭동영 의원은 워싱톤 NPC(내셔날 프레스 클럽)가 오는 18일 金대중의 대타로 자신을 초청한 것을 두고, 미국의 언론계까지 자신을 김대중의 정치적 후계자로 인정한 것이라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예정되었던 망자와 대체한 것이 그러한 의미 때문일까 웃기는 이야기이며 我田引水식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옳은 생각이라 하겠다.
그런데 설정한 主題가 對北 관계 문제이기에, 단지 金대중 정권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내고 金정일을 만난 사실이 있는 鄭 의원이 설정한 주제에, 그래도 故人을 대신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사람이 鄭 의원이기 때문에 초청을 한 것인데 잠Rep 같은 金대중 적자 타령을 하는지 의아스럽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과연 金대중이 죽어가며, 丁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野 4黨이 단합하라는 것이 金대중의 마지막 유언이라고 했기 때문에, 金대중 적자 타령을 시작한 장본인은 朴지원 의원인데, 과연 金대중이 죽는 마당에 朴지원에게 그런 유언을 하였겠느냐 하는 의혹이 民主黨과 鄭동영 진영에 퍼져 만연하고 있다.
우리가 TV 화면을 통하여 본 金대중은 병상에서 겨우 식구들과 눈 맞춤정도를 할 수 있는 정도의 병세를 유지하였다는 金대중이 아닌가, 또 물 한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던 병상의 환자가 朴지원에게 丁 대표를 중심으로 그것도 민주당만이 아닌 야 4당이 단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니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朴지원이 거짓주장을 金대중의 유언으로 포장하여 늘어놓고 있다 는 비난으로 鄭동영 의원의 지지자들이 발끈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자 동교동계의 막내라는 張성민 전 의원을 비롯하여,특히 살아생전에도 政治的 2인자는 물론 자신의 정치 후계자를 양성한바가 없는 김대중을 누구보다 잘아는, 家臣 글럽인 동교동계의 원로라는 인물들까지도 朴지원 의원의 처사에 반기를 들고 있어, 박지원이 난처하고 고립무원의 입장이 되어 가고 있다.
또한 죽음을 목전에 맞이한 마지막 순간까지도 현 李명박 정권을 독재 정권으로 규정하며, 국민을 선동하며 정치 활동을 지속하였던 金대중이며, 재산 처리에 대하여 유언장조차도 남기지 않았다는 그가, 무엇 때문에 저승으로 가는 죽음의 문턱에서 朴지원 의원에게만 그와 같은 유언을 남겼을리가 만무하다는 생각이 옳다고 보아야 하겠다.
사실 여기저기서 자신이 金대중의 적자라고 손들을 들고 나서고 있지만, 누가 金대중의 적자가 되던, 즉 유언정치의 주인공은 朴지원 자신이 되어야 하는데 엉뚱하게 丁세균 대표를 post 金대중으로 거론하여 초상집을 아수라장을 만드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에, 또다시 2인자의 자리를 노리며 金대중 사후 적자 논쟁을 펼치는 당사자들의 모습을 보면 불쌍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기에, 그런데 大權을 잡고자 날뛰는 사람들이 湖南 맹주 자리를 차지하려고 젖 먹은 힘까지 쓰고 있으니 말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 한국의 정치판이 개판이 되고 있는데, 물론 현재 대통령 중심제로 되어있는 대한민국 헌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면 무엇을 하나 싶은 것은,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들부터가 법을 알기를 우습게 아는 판국이기에, 이를 본받아 국민들도 공권력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고 경찰을 죽여도 민주화 유공자가 될 수 있는 나라에서 매일 법 타령이나 하니 되는 일이 없고 국민들의 부신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기에,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정치인들의 자질 개선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문병하고 조문하는 게 어떻게 화해고 용서인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간 양金 그들은 서로를 괴롭히던 오랜 敵手가 먼저 사라져 준데 대해 안도하고 위로를 느낄 수도 있으나, 두 사람의 역사적 화해로 국민이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니, 아니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사람을 느닷없이 찾아가 당사자는 보지도 못하고 부인에게 몇 마디 덕담을 나눈 게, 대승적 결단이고 역사적 화해이며 또 그런 일로 국민들이 무슨 위안을 받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모르겠다.
생각하기에 사람이 염치가 있고 분수를 안다면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고, 아마도 법에 따른 예우만을 바라는 게 보통 사람의 생각일 것인데, 또한 전례가 없고 동작동에 공간도 없는데 가족이 집요하게 요구하였고, 정부가 마지못하여 수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國葬문제만 하여도 그렇다. 그러기에‘어디 갈 데가 없어 李승만과 朴정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나’라는 김동길 교수의 말이 실감난다.
그가 살아 있을 때 늘 입버릇처럼 소외된 자의 친구로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한 金대중이었기에 조촐한 가족장을 자청하였다면, 평소 그를 싫어하던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 젔을 것이며, 존경을 하지는 못 할지라도 더 이상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金대중의 국장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그러기에 金대중 전 대통령이 타계한지 한 달도 채 안되었는데, 金대중의 民主黨과 그의 영향력은 깨끗하게 소멸과정을 겪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고, 또한 불과 타계한지 얼마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金대중에 대한 추모하는 국민적 동요나 추모정서는 찾아볼 수가 없기에, 이제는 金대중의 이름 3자를 지워야 될 때가 된 것인지 보이기도 하며, 金大中的인 모든 것은 자연스레 지워져 가고 있다는 것은, 한 시대를 마감한 파란만장했던 親北左翼 政治人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느낌마저 들고 있는데, 金大中 遺訓政治를 왈가왈부하는 民主黨의 모습은 측은하고 실망스럽게 국민들의 눈에 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람은 같은 시대 사람이라면 오직 대략적인 선후가 있을 뿐으로, 사람은 누구나 다 今生(이승)과 이별하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게 自然의 法則이요 順理이다. 그런데 최근에 공개된 金대중의 일기에 의하면 그는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고‘찬미예수 건강백세’날마다 기도했다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 盧무현처럼 발작적으로 쉽게 생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金대중은 生에 대한 愛着이 특히 남달랐던 모양인데, 대개의 사람들은 生에 대한 미련을 가지면서 눈을 감는 것이다.
아무턴 사람은 이 今生에서 마지막 가는 길에도 염치(廉恥)와 도리(道理)를 알고 分數를 지키는 게, 聖人君子가아니고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이번에 많이 배웠다고 볼 수 있다. (원문, ever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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