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꽃샘추위를 느끼는 이른 새벽에.

碧 珍(日德 靑竹) 2022. 4. 8. 11:38

꽃샘추위를 느끼는 이른 새벽에.

 

 

그저께가 立春이었다, 이른 새벽녘 창을 여니 봄을 시샘하듯 찾아오는 봄의 불청객인 꽃샘추위를 얼마간 느끼다보니 자연의 섭리는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준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여러 좋은 일도 어려운 일도 많든 적든 자의든 타의든 자신에게나 이웃에게나 다반사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게 보통 사람들이 사는 삶(인생)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어느 힘이 이끄는 대로 운명적이거나 숙명적인 일들과 싸우며 조화나 순종하고 사는 게 또한 인생이 아닌가 한다.

 

이른 봄철의 날씨가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듯 꽃봉오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일시적으로 추워지는 기상현상을 두고  ‘꽃샘추위(the last cold snap)’  또는 특이일(特異日)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의 봄철에만 나타난다. 또한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 라는 春分과 관련한 옛 속담이 있듯이 그만큼 이맘때 찾아오는 꽃샘추위가 매섭다는 뜻이라 하겠다.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니 찰나마다 喜怒哀樂으로 점철한 칠칠고개 희수(七七嶺 喜壽)를 넘고 보니 地空居士가 된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면 地空居士에게는 인생의 봄이 과연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인가, 아니 地空居士에게는 봄이 와도 봄이 봄답지 않은(春來不似春)삶이 되는 것인가. 사람이 나이를 드는 것도 고개(嶺)을 닮았는지 내리막길은 한결 빠르다보니 팔순도 금방일 듯하니, 평소엔 이렇듯 늙어가는 데 대한 초조감이나 서글픔을 모르고 살다가도 그간 함께 살아온 주위 사람들의 부음을 접하면 人生無常을 느끼며 세월의 덧없음에 문득 소스라치는 것도 인생인가 한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란 봄이 와도 봄답지 않다는 말로, 이는 중국 고대의 4대 절세 미인의 하나였던 왕소군(王昭君.明妃.和蕃公主)이, 흉노와의 화친 정책에 의하여 흉노 왕에게 시집을 가게 된 그녀의 불운한 정경을 靑蓮居士 李太白이 지은 詩 글귀 가운데 있는,

 

     ‘ 이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胡地無花草)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春來不似春)’

 

글로 생각하기에 살풍경한 북녘 땅을 그대로 표현한 말로 이 詩가 유명하여지자 다른 비슷한 경우에도 이 말을 많이 인용하게 된 것이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다 벌써 人生 黃昏이다, 아니 노년이 되었는가 하고 자조하다가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니, 人生無常함이 가슴으로 느끼면서도 남은 생(餘生)을 보람되게 보내리라 다짐하나 참으로 원망스러워 질 정도로 세월이 무심히도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코로나로 인하여 세월 따라 부득불 그 사람과 오랜 별리(別離)의 아픔을 참고 살아온 그리움이 응어리진 삶이었으나, 情이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삶이라면 인연의 끝이 아님을 다시금 깨달게 하여주기도 한다.

 

지난 경자년 초 이래 중국 무한 발 Corona virus 감염증 확산으로 정신적 괴리감에다 외출을 자제하다보니,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가 없고 가고 싶은 곳을 못가는 등 특히 심리적 불안상태(panic)로 무기력에 빠져 안타깝기가 그지없는 가운데, 이 년 여 넘게 방콕-족이 되다보니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여간 불편하고 어려움을 표현 할 수가 없을 만큼 답답하고 숨 막히는 나날을 기약도 없이 무력한 생활을 하고 있는 신세가 된 가운데, 그의 삶도 생이별과 다름없어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날도 그간 많았으나 아무튼 그 사람의 보살핌으로 행복한 사람 중 한 사람인가보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니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내려놓거나(방하착.放下着) 비우는 삶(보시.布施)을 살면서 그 무언가를 기다림 속에서 사는 삶이 행복 삶이란 것을 깨달게 되었다. 지나온 칠십팔여 년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니 인생노정에서 온갖 질곡의 세월을 겪어 온 터라 참다운 노년은 아량과 관용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老年 香氣있는 삶이 노년의 참 행복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삶과 죽음(生死)을 진솔한 마음으로 받아드리면서 삶의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다면 老年 인생을 관조(觀照)하는 여유로움을 보일 수도 있고, 그것이 아름다운 老年의 자투리 세월을 보람 있게 보내는 삶이기에, 우리 노년은‘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며 오늘 하루를 또 시작하면서, 하루빨리 윗녘 그 사람 곁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 산문. 편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어도 젊게 살자.  (0) 2022.04.18
이팝나무 꽃을 보면서.  (0) 2022.04.14
사월 초 옥연지 둘레길에서.  (0) 2022.04.03
春分 小考.  (0) 2022.03.19
맷돌 돌리는 마음으로.  (0) 2022.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