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이팝나무 꽃을 보면서.

碧 珍(日德 靑竹) 2022. 4. 14. 09:54

 

이팝나무 꽃을 보면서.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느낌이 들 만큼 산산하나 낯에는 여름 못지않게 더우니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지는 5월이 깊어가는 계절이다, 아침저녁 오가며 지나는 길옆 담장위에는 붉은 사계절 장미가 한창 만발한 가운데 한편은 시들어 가고 있는 장미를 보노라면, 우리 인생도 저 시들어 가는 장미와 무엇이 다른가 생각을 들기도 한다,

 

봄이 되면 매화와 산수유를 시작으로 개나리와 벚꽃이 피고 그 다음 백목련 자목련 배꽃 등이 산과 들을 아름답게 수놓더니 진달래에 이어 지금은 철쭉과 이팝나무 꽃이 한 장피고 있어 우리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고 있다.

 

오래전에는 산에서나 띄엄띄엄 눈에 들어오던 이팝나무(六道木.立夏木)가 근래 들어 大邱市木으로 지정되고부터는 가로수로 정원수로 또 빈 공지를 메우고 있어 대구에서는 이팝나무를 자연스레 볼 수가 있다.

 

이팝나무(Chionanthus retusus)는 물푸레나뭇과에 속한 낙엽 활엽교목으로 높이는 큰 나무는 20미터 정도이며, 잎은 마주나고 잎자루가 길고, 봄에 흰 꽃이 피며 가을에는 열매가 까맣게 익으며, 정원수나 풍치목(風致木)으로 심는 이팝나무의 꽃말은‘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대만 등지에 서식하고 있다.

 

이팝나무는 5월 중순에 파란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꽃을 가지마다 소복소복 뒤집어쓰는 보기 드문 나무로, 가느다랗게 넷으로 갈라지는 꽃잎 하나하나는 마치 뜸이 잘든 밥알같이 생겼고 이들이 모여서 이루는 꽃모양은 멀리서 보면 쌀밥을 수북이 담아 놓은 흰 사기 밥그릇을 연상케 하고 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이팝나무 꽃이 필 무렵은 아직 보리는 피지도 익지도 않고 지난해의 양식은 집집마다 거의 떨어져 버린‘보릿고개’로, 주린 배를 잡고 농사일을 하면서도 풍요로운 가을을 손꼽아 기다릴 때라 이팝나무 꽃은 헛것으로라도 쌀밥으로 보일 정도로 너무 닮은 모습으로 보인다.

 

이팝나무라는 이름의 연유에 대하여서는 입하(立夏)무렵에 꽃이 피므로 입하가 이팝으로 변음 하였다는 말과, 이 꽃이 만발하면 벼농사가 잘 되어 쌀밥을 먹게 되는 데서 이밥(쌀밥)이 이팝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말과, 꽃이 필 때는 나무가 흰 꽃으로 덮여서 쌀밥을 연상시키므로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말 등, 어떤 이치에 따라 미루어 생각하여 몇 가지로 추론되고 있다.

 

이팝나무 꽃은 옛날 배고픈 시절을 떠올려주는 나무로 ​꽃의 생김새가 쌀밥처럼 생겼다고 해서‘쌀나무’라고도 불리며, 꽃잎을 살펴보면 가느다랗게 네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꽃잎 한 갈래가 하얀 밥알 하나처럼 생긴 모습이 영락없이 쌀이고 쌀밥으로 보이며, 이팝나무 꽃은 멀리서는 쌀밥 같다지만 가까이서는 주꾸미 알 같은 꽃이다.

 

이팝나무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서 자라지만 해안을 따라 인천 앞바다까지 올라가고 있으며,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림에는 50여 그루가 집단으로 자라고 있기도 한다, 전라남도에서는 입하 무렵에 꽃이 핀다고 입하나무(立夏木)라고 부르고, 못자리를 시작할 때 꽃이 한꺼번에 활짝 피면 풍년이 들고 잘 피지 않으면 흉년이 들고 시름시름 피면 가뭄이 심하다고도 전하여오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이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기에 듬성듬성 피거나 만개하지 않으면 농사철에 가뭄이나 흉년이 찾아올까 염려하여 선조들이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기를 바란 이유는, 풍년이 들어 배를 곯는 이웃이 없었으면 하는 소망을 이팝나무를 통하여 빌었다고 하겠다.

 

우리가 지금처럼 흰쌀밥을 배불리 마음껏 먹고 살진도 오래지 않다,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밥은‘이씨(李氏)의 밥’이란 의미로 李氏(조선)왕조 시대에는 벼슬을 하여야야 비로소 李氏인 임금이 내리는 흰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하여 쌀밥을‘이밥’이라 하였다, 그러기에 이팝나무는 이밥나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추론되는데 꽃의 여러 가지 특징이 이밥, 즉 쌀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팝나무 꽃에 슬픈 전설이 있다,‘옛날 엣날에 경상도 땅에 18세에 시집을 온 착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온갖 구박을 받으며 살고 있었는데, 한번은 큰 제사가 있어 제사에 쓸 밥을 짓게 되어 평소에 잡곡밥만 짓던 며느리는 처음 쌀밥을 지으면서 혹시 잘못되어 꾸중을 듣게 될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뜸이 잘 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서 밥알 몇 개를 떠먹어 보는데, 그것을 보게 된 시어머니는 제사에 쓰게 될 밥을 며느리가 먼저 먹었다며 갖은 학대를 일삼았었기에 억울함을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어느 날 뒷산으로 올라가 목을 메 죽었다, 그 이듬해에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 나무가 자라더니 흰 꽃을 가득 피워내었다, 쌀밥에 한이 맺혀 죽은 며느리가 나무가 되었다며 이 나무를 동네 사람들은 이팝나무라고 불렀다’고 구전(口傳)하는 이야기이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팝나무에 대하여 우리 조상들은 꽃이 피는 상태를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쳤다고 하는데, 습기가 많은 것을 좋아하는 이팝나무는‘꽃이 많이 피고 오래가면 물이 풍부하다’는 뜻이니 이와 같을 경우에는 풍년이 들고, 반대의 경우는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이런 나무를 우리는 氣象木 혹은 天氣木이라 하여 다가올 기후를 예보하는 지표나무로 삼기도 하였다.

 

이팝나무는 어버이날 무렵에 늘 피는데 청명, 곡우를 지나 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 무렵에 피는데, 이때는 보리를 수확하기 직전이라 겨우내 보관하여 놓았던 양식이 거의 떨어져갈 무렵이어서 보리고개 중에서도 가장 힘든 시기이기도 하기에, 이 시기가 되면 보리고개와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이팝나무의 전설이 자연스레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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