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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朴正熙 前 大統領 흔적을 지우려는 亡種들(1).

碧 珍(日德 靑竹) 2019. 9. 25. 09:42

 

故 朴正熙 前 大統領 흔적을 지우려는 亡種들(1).

 

 

 

 

세월이 흘러 時代가 변하고 政權이 바뀌어도 사람은 사람으로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이 있다, 故 朴正熙 대통령 역사자료관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기로 한 慶北 龜尾市(구미시). 더불어민주당 張세용 市長. 구미참여연대 등이 黨利黨略. 私利私慾에 눈이 어두워 한 결정은 매우 잘못되었다기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자 있어서도 안 될 일이라 후손과 후세 역사가 심판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난 2018년 한 言論보도를 보면故 朴正熙 大統領 태어나고 生家가 있으며 지역을 발전시킨 경북 구미시가 상모동에 신축 중인朴正熙 대통령 역사자료관명칭에서朴正熙이름을 빼기로 사실상 결정하였다는 소식에다, 그 대신구미 근현대사 박물관’,‘구미 공영박물관같은 명칭으로 개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大邱 每日新聞 社說과 記事를 보고 구미 시민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 대다수는 말문이 막히고 분노가 치솟았었던 일이 엊그제 같다.

 

되돌아보면 구미(龜尾)는 故 朴正熙 前 大統領의 故鄕이고, 구미국가산업단지도 朴 대통령이 만들어 구미가 내륙 최대 도시로 성장하는 기틀이 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朴正熙 전 대통령과 구미와의 인연과 그의 업적 등을 기리고자 生家옆에 만들고 있는 것이 역사자료관인데, 이를 무시하고 朴正熙 전 대통령 흔적을 지운 박물관을 만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다고 비난을 받았었다. 특히 전국에 DJ, YS 이름을 단 기념관들이 수두룩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고향에서조차 朴正熙 대통령 이름을 빼는 것은 大韓民國 國格(국격)을 의심케 하는 행태라는 것은 理念과 정파를 떠나 사람의 탈을 쓰고 있다면 이런 발상을 할 수가 없는 행태이다.

 

아무튼 故 朴正熙 전 대통령은 공과(功過)를 같이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평가와 더불어 그 시대를 제대로 기록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역사. 유산 기록보존 사업이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물을 마시면 그 근원을 생각하라(飮水思源)고 하였듯이 역사를 무시하고 지우는 나라와 민족에게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우리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면, 누가 생각하여도 부끄럽고 수치스럽게도 살아왔었던, 살아있을 때 전직 대통령들의 기념관이나 도서관, 문화재단은 지을 줄 알면서, 建國 大統領 李承晩 - 近代化 産業化 大統領 朴正熙의 기념관 하나 없는 나라라는 것은 국가적 수치인데, 누구의 눈치를 본다고 건립하지 못하나, 아니 左派 눈치가 그렇게 두렵나 아니면 현 정부가 비협조적인 행태인가 참으로 답답한 위정자들이고 정치인들인데 그리고도 국민의 대변자이며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한다고 말 할 수 있는가한다. 늦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국가도 마찬가지이기에 국가가 어려웠을 때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들, 건국 대통령 李承晩 - 근대화 산업화 朴正熙 대통령을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성숙한 국민과 건강한 국가가 우선하여 할 일이라며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였었던 그 함성이 아직도 잔잔히 들리는 듯하다.

 

무슨 사연들이 그리도 시간을 앗아갔는지 해마다 봄이 오며는 民草들은 무엇보다 무서운 춘궁기(春窮期) 보릿고개에 닥치는 굶주림을 어이 넘기나 하는 걱정으로 주름살이 늘어났었다, 지난 1945년대부터 1970년 중반까지는 매년 4월 말이 지나며 5월 초부터 6월 중순사이는 쓰라리며 참담하고 잔인하였던 춘궁기 시대이었다.

 

돌아보면 봄의 막바지인 하얀 들 찔레꽃이 피는 보릿고개 철이 되면, 집집마다 보리 한 톨. 옥수수 감자 한 알마저 떨어지는 때이었는데, 그래도 봄이라 山河에는 자연의 순리대로 백초가 돋아나고 꽃들이 다투어 피는데, 그중에 하얀 들 찔레꽃 피고, 논에 모를 심을 때부터 보리타작을 할 때까지는 보릿고개가 절정에 달하였던 시절을 오늘날 사십대 미만에게 民草들이 겪었던 배고픔의 서러움과 고통을 말하면, 아마 먼 나라 아프리카나 꿈속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도리어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번영과 영광을 가능케 하는 기단을 세워 경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을 지나 선진국 반열에 발돋움을 하게 되므로, 오늘날 대다수 국민은 배고픔의 고통과 서러움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그들 젊은 혁명가들과 주도한 故 朴正熙 전 대통령의 구국의 일념으로 부단한 개혁의 성공으로 인한 것이다.

 

당시 대학생. 지식인 층, 특히 左派 정치인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았으나 강력하게 경제개혁을 주도하고 단행한 故 朴正熙 전 대통령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기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고 살아와 서민들의 배고픔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 중 한사람이었다. 돌이켜 보면 한 국가의 운명과 국민들이 잘 살고 못사는 것은 위대한 지도자를 만날 수가 있나 없는가에 따라 극명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서야 그 결과를 놓고 보면 이 평범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故 朴正熙 전 대통령 시대에 우리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을 보아온 세대로서경제발전과 민족의 개념이 충돌하던그 당시, 해마다 하얀 들 찔레꽃피던 늦봄은 우리 民草들에게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혼란하던 나날들이었으며 참담한 배고픔의보릿고개시대이었다는 것과, 역사를 무시하는 국가와 국민에게는 미래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반듯이 알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