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사상

[스크랩] 여름을 보내며.

碧 珍(日德 靑竹) 2015. 8. 23. 08:18

 

 

 

 

여름을 보내며.

 

 

 

 

 

올 大邱의 여름은 예년에 비하여 비가 내리지 않아 삼라만상이 가뭄에 찌들고 혹서(酷暑)가 더하여, 전형적인 大邱 무더위를 맛보게 하는 무척 더운 날씨가 계속되니 차라리 태풍이 오고 집중호우라도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매년 여름이면 시장가를 지나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콩가루 물에 띄운 우무를 보면, 입속에서 콩가루의 구수하고 우무의 시원한 맛이 돌면 어느새 외할머님이 생각난다,

 

며칟날 전, 동네 재래시장을 지나다 나이 체통 불구하고 이천 원을 주고 우무 한 그릇을 사서 먹으니, 시원하고 콩의 향기 그윽한 그 맛 속에 외할머님이 계시고 그리움이 눈을 가리 운다.

 

어릴 적 여름을 나면서 남은 기억은, 음식으로는 삼계탕, 손으로 밀어 썰어 끓여 먹는 칼국수, 우물물에 막걸리나. 간장을 태운 물, 우무, 미숫가루 물, 우물에 담가둔 수박 참외, 그리고 가끔 ice cake 정도가 아닌가 싶고, 저녁이면 동네 개울 연못에 멱 감기, 마당에 모깃불 피우기, 부체가 필수였고, 목침이, 발, 죽부인, 등걸이, 모시나 삼베 옷 등이 무더운 여름을 살아남는 생활필수품이었다.

 

세월이 많이 변하여 여름을 나는 의복도 음식도 생필품도 많이 변화하였으며, 마당에 모깃불 대신에 air sprayer 모기약 한통이나 전기모기향이면 모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깊은 우물 속에 넣어두었다 올린 수박대신에 냉장고에 수박 참외 여름과일 등이 여름을 즐겁게 하며, 천연수에 막걸리에다 간장 타서 마시던 생수는 천연음료와 ice cream으로 대체되어 또한 우리의 여름을 나게 한다.

 

또한 부채대신에 air conditioner이 더위를 잊게 하는 무엇보다 좋은 해결사 노릇을 하는 최고의 문명의 이기중 하나다. 올 여름에는 모시. 삼베 대나무돗자리 등 기타 여름나기 제품도 특별히 돈 들여 구입하지 않고 여름을 보내었다.

 

올해도 경제적 상황이 前代未聞의 불황이었는데 이를 잘 극복한 것인가 생각하나, 하루 팔아 하루 사는 상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러나 어떡하랴, 다른 사람의 장사보다 내가 사는 게 우선이라는 편협한 마음이 들기도 하니.

 

금년은 비가 적어 한발(旱魃) 덕으로라 할까 일조량이 많아 사과도 배도 감도 포도도 대부분의 과일이 당도가 높고 풍작이라 하고, 몇 칠전 울진을 다녀오면서 보니 논마다 벼농사도 풍년이 예고하고 있었다. 또 고추 마늘도 풍년이고 배추 무우 농사도 아직까지 잘 자란다니 올 김장은 걱정 없을 듯도 하나, 언제나 우리 농촌에 풍년이 들 것이라 하거나 들어다하면 농사를 짓지 않지만 기쁘기만 한 것은 나이 탓일까.

 

근래 들어 韓美. 韓中 등 여러 나라와 FTA문제 때문에 농촌의 결실이 더욱 우울한 가을이 될지 않을까도 싶고, 풍년도 걱정이고 흉년도 걱정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도시의 사람들 중에 농촌 태생의 사람들이 많기에 농촌의 풍요로움이 도시인에게 격려이고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한편 도시의 공장들은 가동률이 높아 생산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적자가 쌓인다니. 어느 곳 하나 안전하고 마음편한 구석이 없는 게 오늘날 우리의 현 실 상황이 아닌가 한다.

 

어느 듯 8월의 작열하던 태양은 오늘 처서(處暑)를 고비로 여름은 이젠 우리 곁을 떠나려 하고 있다. 봄여름 가을 겨울이 바뀜에 있어서는 그 차례가 분명해서 엇나감이나 뒤틀림이 없으며, 계절은 말없이 순환하며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온갖 것이 생성소멸 함에 있어서도 다 그러한 이치를 지니고 있다.

 

大邱의 특이한 혹서도 세월의 흐름을 거절만 할 수 없었는지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은 가을의 문턱임을 예고하니 비 생각과 더위와 adieu할 때가 되었는가 보다.

 

태양이 어찌 사사로이 비추었으랴

  이 꽃은 뭣 때문에 그 은혜를 못 잊고서

  해질녁 쓸쓸한 바람 속에

  고즈넉이 지는 해를 바라만 보고 섰는가.

 

이는 명나라의 전사승(錢 士升)이 지은해바라기(秋祭)라는 시이다. 해바라기(sunflower)는 해를 따라 도는 것으로 오인한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向日花’. ‘朝日花’ 또는 ‘태양의 꽃’ 또는 ‘황금꽃’ 이라고도 부르고, 꽃말은 ‘애모’,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다.

 

가을에 피는 꽃 중에 해바라기는 키가 제일 크며, 능소화는 담장이나 기둥을 타고 뻗어 하늘을 향하지만 홀로 서는 꽃이 아니고, 나팔꽃도 줄기를 뻗어 떨기로만 피는 것이어서 그 기상이 해바라기와는 사뭇 다르다.

 

해바라기는 시골집 토담 한쪽 구석 양지바른 곳에서 자리 잡고 종일토록 해를 바라보며 서 있어, 충절을 상징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첨꾼의 비굴한 모습으로도 비쳐지기도 한다.

 

어느 사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 맑고 높아가는 하늘, 써늘한 바람, 고추잠자리, 익어가는 과일 등, 이모두가 여름을 보내며 가을의 문턱에서 다음 계절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라는 자연의 속삭임인가 귀띔인가 보다.

 

사랑하는 사람아, 시간은 영겁(永劫)을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고, 사람은 그 시간의 띠 위에 한 점 외로운 존재 일뿐이다, 이 밤을 지새우면 다시 뜨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립고 보고 싶고 생각나는 사람에게 진솔한 마음을 보낼 수 있어 그 아니 좋은가.

 

올 지루하던 무더위에 그래도 잘 참고 보내어준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위의 모든 인연의 님들도. 오는 가을에 가슴을 활짝 열고 맞이하여 부처님의 가피 가득하시길 기원하여 봅니다. 더불어 나를 있게 하여 주시고 양육하여주신 후, 극락왕생하시는 외할머님 부모님에게도 오는 가을은 부처님 나라에서도 내내 좋은 날들이 되기를 이 아해(兒孩)는 부처님전에 기도합니다. 

                                        處暑날 무야(戊夜) 큰 아해가.  

                                                 

 

 

                                     

                                                      님의 향기 

 

 

 

 

 

출처 : 벽진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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