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스크랩] 般若心經 中 不增不減(부증불감)에 대한 小考.

碧 珍(日德 靑竹) 2011. 2. 2. 14:01

 

      

 

般若心經 中 不增不減(부증불감)에 대한 小考.

   

 

 

“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 故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마하반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에서 말하는 不增不減(부증불감)이란 한마디로 하면, ‘모든 것이 空한 모습(諸法空相)이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즉 증감이 없는 것으로 파괴되지 않는 것으로 ‘다한 것도 아니고 덜한 것도 아니다’는 뜻으로, 佛敎에서 말하는 부증불감에는 2가지 뜻이 있다.

 

즉 ‘般若經’ 과 같은 實狀의 空理를 말하는 것으로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이라 하며, ‘不增不減經’ 과 같이 法의 무진(無盡)을 말한 것으로 중생과 부처의 2界 모두가 증감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自我 안에 갇혀 사는 중생의 모습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는 것은, 自我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현상을 業따라 習따라 願따라 自我에는 증감이 있고 그때그때 모습이 변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自我가 흐트러져서 一法界와 하나가 되었을 때나, 虛空과도 같이 모던 것을 감싸고 있는 一法界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런데 一法界의 마음(一法界心)은 언제나 한결 같을 뿐이기에 金光明經에서는 ‘如如’ 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며, 그 참됨이 영원하게 변치 않기 때문에(眞常不變故) 한결같기에 如如라고 하는 것이다.

 

一法界는 虛空과도 같아 因緣에 따라(隨緣) 증감을 나타낼 뿐, 결국 불변이며 오직 한 덩어리의 一法界이기에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마하심(摩訶心)은 本性인 一法界心도 業에 의하여 증대하지도 않고 축소되지도 아니하며, 주객이이 나누어 지지 않은 하나의 一法界는 불어나는 일도 줄어드는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自我를 흩뜨려서 不增不減의 一法界心을 본다면, 그 안에는 모든 것이 具足되어 있어 쓰고 또 써도 베풀고 또 베풀어도 줄어들지 않는 無窮無盡함이 언제나 한결 같으며, 同時에 眞空의 자리는 언제나 비어 있는 것이다.

 

   “引之於有 一如用之而空(인지어유 일여용지이공)/ 있다고 하지니 한결같은 모습으로 텅 비어 있고,

    獲之於無 萬物乘之而生(획지어무 만물승지이생)/ 없다고 하지니 만물이 모두 이로부터 나오누나” 라고하신 元曉大師의 말씀을 음미하여 보면 이해가 될 것이며, 이러한 뜻을 지닌 것이 一法界 眞空의 世界이기에 般若心經에서는 不增不減임을 天明하여 自利利他의 경지에 집착하고 있는 보살(菩薩)들에 경고하는 것이다.

 

즉 한 결 같이 텅 비어 있는데 힘써 비울 것이 무엇이며, 모든 것이 이로부터 나오고, 원래로 다 갖추어져 있는데 무엇을 더 이루려하고 무엇을 더 감추려고 하는가, 마하심(摩訶心)에는 보살들이 추구하는 부님의 萬德이 원래 그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 摩訶心이 모자람도 남음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 眞空妙有의 자리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부처님이 不增不減을 說 하는 연유인 것이다.

 

더욱이 觀世音菩薩이나 文殊보살 普賢보살 地藏보살님과 같은 大菩薩님들은, 不增不減의 道理를 깨달았기 때문에 부처의 지위를 바라지도 않고 지옥에 들어서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대보살들은 언제나 摩訶心으로 大慈悲를 실천하고 중생들에 摩訶心을 깨우치고자 할 뿐이다.

 

대보살들의 慈悲行은 ‘이 生에서 시작하여 저 生에서 끝을 내는 실천이 아니고, 부처의 지위에 올라간다고 하여 끝을 내는 실천이 아니기에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일체중생이 다 成佛하기 이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것이 대보살들의 서원(誓願)이며, 그 서원에 따라 대보살들은 시작도 끝도 없는 慈悲의 길을 갈 뿐인 것이’ 대보살들의 慈悲行이라 하겠다.

 

大菩薩들의 努力이 부처님에 비하여 크게 못 미치고 福德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다, 이러하기에 大菩薩들은 부처님에 비하여 손색은 없지만 지위에 연연함이 없이 한결같이 慈悲로써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 주고 즐거움을 주는 발고여락(發苦與樂)의 慈悲行을 실천하고, 깨달음의 눈을 열어주는 菩薩行을 실천할 뿐이다, 그러기에 自利利他는 우리 보살들이 배워야할 바 인 것이다.

 

그러다가 홀연히 自我가 사라지면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이요 불구부정(不垢不淨)하고 不增不減인 진공(眞空)을 깨달고 ㅡ法心을 체득(體得)하여, 걸림이 없는 大般若의 光明으로 일체중생의 눈을 뜨게 하고 영원한 생명인 常, 무한한 행복인 樂, 대자제인 我 , 대청정인 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기에, 常樂我淨 이것이 바로 般若心經에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中國 禪宗의 제3祖師인 僧瓚(승찬)大師께서는 ‘信心銘’에서,

 

   “圓同太虛 無欠無餘(원동태허 무흠무여)/ 원만하기가 태허공과 같아, 모자람도 남음도 없지만,

   良由取捨 所以不如(양유취사 소이불여)/ 취하고 버리는 마음 때문에, 한결같기도 하도다” 라고 천명하셨다. 참으로 감명이 깊은 말씀이라 새겨본다.

 

                                                                       舊正을 맞으며  日德 碧珍 合掌拜.

 

                                                                                                                             

 

 

 

출처 : 碧珍(벽진)
글쓴이 : 碧珍(日德. 靑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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