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사상

화장(火葬)과 혼백(魂魄).

碧 珍(日德 靑竹) 2010. 7. 14. 14:13

화장(火葬)과 혼백(魂魄).

 

                - 埋葬(매장)文化 이대로 좋은가? -

 

 

 

  

삶이란 죽음으로의 과정이고, 죽음이란 삶으로의 시작이니, 뉘라서 그 규율을 알리(生地死之徒, 死也生之始, 孰知其綱?)고 莊子 知北遊(지북유)에서 쓰고 있는데, 장자는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을 기(氣)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현자(賢者)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윤회(輪廻)로 보기도 하고, 부활(復活)로 말하기도 하며, 연결되는 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聖賢의 말씀에 따르자면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요 하나인데, 사람들은 어찌자고 이를 둘로 떼어 놓고 ,삶에는 집착하고 죽음은 마다할까, 왜?.

 

우리가 이따금 말하는 死生觀(사생관)이란 사람이 죽으며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물음에 답변이라 하겠다. 그런데 死生觀은 文化圈에 따라 각기 다른데 우리 선조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된다고 생각하였다.

 

백(魄)은 父精母血이 만나는 시점인 어머니 뱃속으로 입태(入胎)가 될 때에 들어온다고 여겼으며, 그러기에 이때에 태몽(胎夢)꿈을 꾼다고 한다. 그리고 혼(魂)은 출태(出胎)가 되는 시점인 탯줄을 자르는 순간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그러기에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魂과 魄이 뭉쳐서 있다가 죽기 몇칠전에 혼이 먼저 빠져나가는데, 이것을 옛날 어른들은 혼불(魂火)이 나간다고 표현하였든 것이다,

 

즉 男子의 혼불은 올챙이처럼 꼬리가 있고 女子의 혼불은 남자 혼불에 비하여 작으면서 꼬리가 없다고 하는데, 마치 정자(精子)와 난자(卵子)를 연상하게 하니 참으로 irony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런데 백(魄)은 사람이 죽어도 나가지 않고 사람의 뼈에 남아 있다고 보았는데,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뼈대를 중시하였기에 이 뼈를 명당(明堂)에 묻으면 亡者의 魄도 즐거워하고 그 후손에게도 여러 가지 이롭다고 보았는데 바로 이것이 風水思想인 것이다.

 

風水는 매장(埋葬)을 전제로 하는데, 좋은 장소에 매장을 하면 대개 열흘이내에 후손들이 길몽(吉夢)을 꾸나, 반대로 물이 나거나 좋지 않는 곳에 매장을 하면 흉몽(凶夢)을 꾸는데, 이 꿈에도 魄이 작용을 한다고 여겼다. 즉 뼈에 남아 있는 魄이 조상(祖上) 즉 亡子와 後孫을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화장(火葬)을 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는데, 화장은 뼈를 불에 태우는 방법이기에 火葬을 하면 魄은 어떻게 되는가?, 뼈를 불에 태우면 뼈에 붙어 있는 亡者의백도 같이 사라진다고 여겼다, 즉 亡者와 後孫의 연결 수단이 사라지는 셈이라 연락이 두절된다는 말이니, 火葬을 하면 무해무득(無害無得)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게 본다면 매장(埋葬)을 하여서 明堂에 모시면 좋겠지만, 좋지 않는 곳에 유해(遺骸)를 모실 경우에 오히려 해(害)가 더 많다는 것이다. 문제는 요즘 들어서 明堂 유택지(幽宅地)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으로 산 사람이 거주할 택지(宅地)도 부족하기에, 그럴 바에는 차라리 無害無得한 火葬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각 지역마다 혐오 시설이라 하여 화장장(火葬場)부지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게 사회 문제화로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무덤이 대략 2.100만 여기로 국토의 1%이상이 넘는 3억970만 여평을 차지하는데, 묘지(墓地) 면적은 우리나라 住宅 면적의 절반에 이른다고 하며, 또한 근래에 들어 火葬율이 53%를 넘어 기록하므로 埋葬율에 앞섰다는데, 즉 1970년에 10.7%였던 火葬율이 40여년 만에 5배 이상으로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즉 火葬이 늘어났다는 것은 젊은 세대가 갈수록 조상묘(祖上墓)관리를 꺼리는데다가, 墓地 대란에 대한 걱정과 火葬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점증하기 때문이고, 또한 요즘은 火葬을 넘어 自然葬이 늘어나고 있으며 수목장(樹木葬)은 2004년 고려대 金장수 농대학장을 필두로 自然葬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생겨나고 있는 현 실정이다.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國土와 後代에 짐이 되는 埋葬대신 火葬과 自然葬을 선택하는 데에는,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소위 지도급 인사들의 솔선이 큰 힘과 영향력이 되기에 우리 역대 대통령 가운데 묘를 쓰지 않는 이가 나올 때도 되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崔종현 SK회장이 생전에 헬기를 타고 다녀보니 국토가 온통 무덤으로 덮여 있기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말을 자주하였다고 하였는데, 1998년 최 회장의 유해가 유언대로 벽재 화장장으로 향하면서 화장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니 진정 존경할 분이었다.

 

또 火葬을 당연하게 여기는 中國인데, 1976년 周은래 수상 사망하자 유언대로 火葬하여 祖國山河에 벼 가루를 뿌려달라고 하기에, 鄧소평 수상이 비행기를 타고 周은래의 뼈 가루를 뿌린 것은 중국에서는 드문 일 이었는데, 1997년 鄧소평도 周은래의 유언을 이어 뼈 가루를 뿌렸다고 하니 배울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지장보살 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