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사상

책의 향기(8). 기측체의 와 최한기.

碧 珍(日德 靑竹) 2010. 3. 7. 10:28

책의 향기(8).

 

기측체의 와 최한기.

 

 

 

 

1850년대 초 조선 학자 혜강 최한기(惠岡 崔漢綺.1803~1877)의“기측체의(氣測體義)”라는 책이, 중국 북경 천안문 인근의 인화당(人和堂)이란 출판사에서 최신 활자판으로 출간됐었는데, 이런 일은 매우 드문 일로 근대 조선의 여명기(黎明期)에 일어난 특별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최한기는 개성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와 창동(남대문시장)과 상동(한국은행 근처)에서 일생을 살았으며, 그는 청소년기부터 孤山자 金正浩와 절친하게 교류했으며, 두 사람은 서로 만나 조선을 위하여 무언가 큰일을 하자고 굳게 맹세를 한 사이였다.

 

그런 인연으로 1834년에 金정호는 창동에 있는 최한기의 집에서 세계지도를 판각하기도 했다.

 

34세에 崔한기가 쓴“기측체의”는 기(氣)의 원론을 논한“신기통(神氣通)”과 氣의 응용을 논한“추측록(推測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崔한기는“기측체의”에서 수백 년간 지배 이데올로기(Ideologie)의 자리를 차지해 오던 조선 이학(理學)의 위치와 영역을 무너뜨리고, 대신 氣를 주창하므로 새로운 시대에 유용한 학문체계를 제시한 것이다.

 

또한 호암 문일평은 최한기의 저서가 300여 권이었다고 했고, 육당 최남선은 최한기를 조선 최고의 저술가로 꼽았다.

 

“기측체의”에서 氣의 원론을 논하며,“신기통(神氣通)”에서 神氣를 인식(認識)의 主體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신기(神氣)는 지각의 근원이자 바탕으로서, 지각은 신기가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라고 했으며, 우선 소통에 대한 일반론을 소개하고, 이어 소통의 수단으로 눈 귀 코 입 등 감각기관을 중심으로 설명을 전개하며,

 

西洋의 고대와 中世의 認識論도 과감하게 활용하여,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대상세계를 神氣에 저장하고, 다시 외부에 응용하는 새로운 認識方法論을 제시한다.

 

또한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의 대기설도 수용하여 자신의 氣哲學의 논리를 보완하고 있으며, 따라서“기측체의”에서는 理學의 견고한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추측록(推測錄)”에서는 氣의 응용을 논하며, 새로운 공부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즉 性理學時代의 궁리(窮理)라는 진리 탐구에서, 이제 추측(推測)이란 새로운 공부 방법으로 전환이 시도되고 있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미루어 나가(推)는 원리나, 대상을 헤아린다(測)는 추측의 공부 방법을 통하여, 최한기는 서양의 정치. 법제도가 좋은 법이고 훌륭한 제도라면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西洋에서도 東洋의 좋은 법과 훌륭한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이며, 東이든 西든, 南이든 北이든 서로의 앞선 법제와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이 계속되어온 것이다.

 

崔한기는 인간이 지구를 일주한 사실에 대하여, 캄캄한 긴 밤을 지나 태양이 환하게 떠오르는 상황으로 묘사했으며, 심지어‘天地의 개벽(開闢)’이라고 찬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었다.

 

이제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시대가 인간과 인간은 물론, 지구촌의 여러 나라가 두루 소통하여 변통하는 일이 절실한 시기라고 보았다.

그래서“기측체의”에서 주통(周通)과 변통(變通)을 매우 강조한 것은 그 때문이다.

 

崔한기는 일생을 서울에서 생활하며 당시 북경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서적은 모두 사서 읽느라, 가산을 탕진할 정도로 지적 호기심에 불탔으며, 최한기는 東西古今의 책을 서재에 비치하고 학문연구에 일생을 바쳤던 것이다.

 

모든 인류가 평화롭고 모든 민중이 자각하는 문명세계를 꿈꾸며 그려온 청. 장년기에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기측체의”는 이제 性理學의 시대를 마감하고, 氣學이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임을 예견(豫見)하고 알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에서 벗어나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새로운 문명을 갈망하며 씌어 진,“기측체의”는 시간이 흘러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고전으로 남을 것이며, 새 시대 새 문명에 대한 갈망(渴望)으로 조선을 흔들었던 책이,“기측체의(氣測體義)”인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은 전통적인 儒學思想을 實證的 科學的인 태도로 발전시킴으로써, 그 근본정신을 시대적으로 살리려 했다.

 

이는 당시 實學派의 학자들과는 달리, 일관된 원리에 입각하여 自覺的인 연구의 결과이다.                                           

                                                                碧 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