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사상

여름을 보내며.

碧 珍(日德 靑竹) 2009. 8. 10. 08:36

    여름을 보내며.

     

     

     

     

    올 해는 윤달이 있는 여름이라 그런지 태풍과 집중호우가 겹쳐 길어지면서 무더위는 무척 더웠다.

     

    매년 여름이면 시장가를 지나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콩가루 물에 띄운 우무를 보면, 입속에서 콩가루의 구수하고 우무의 시원한 맛이 돌면 어느새 외할머님이 생각난다,

    며칟날 전, 동네 재래시장을 지나다 나이 체통 불구하고 천오백원을 주고 한 그릇을 사서 먹으니, 시원하고 콩의 향기 그윽한 그 맛 속에 외할머님이 계시고 그리움이 눈을 가리 운다.

     

    어릴 적 여름을 나면서 남은 기억은, 음식으로는 삼계탕, 손으로 밀어 썰어 끓여 먹는 칼국수, 우물물에 막걸리.간장을 태운 물, 우무, 미숫가루 물, 우물에 담가둔 수박 참외, 그리고 가끔 아이스케키 정도가 아닌가 싶고, 저녁이면 동네 개울 연못에 멱 감기, 마당에 모깃불 피우기, 부체가 필수였고, 목침이, 발, 죽부인, 등걸이, 모시나 삼베 옷 등이 무더운 여름을 살아남는 생활필수품이었다.

     

    세월이 많이 변하여 여름을 나는 의복도 음식도 생필품도 많이 변화하였으며, 마당에 모깃불 대신에 에어스프레 한통이나 전기모기향이면 모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깊은 우물 속에 넣어두었다 올린 수박대신에 냉장고에 수박 참외 여름과일 등이 여름을 즐겁게 하며, 천연수에 막걸리에다 간장 타서 마시던 생수는 천연음료와 아이스크림으로 대체되어 또한 우리의 여름을 나게 한다.

     

    또한 부채대신에 에어컨이 더위를 잊게 하는 무엇보다 좋은 해결사 노릇을 하는 최고의 문명의 이기중 하나다. 올 여름에는 모시 삼베 대나무돗자리 등 기타 여름나기 제품도 특별히 돈 들여 구입하지 않고 여름을 보냈다.

     

    경제적으로 전대미문의 불황을 잘 극복한 것인가 생각하나, 하루 팔아 하루 사는 상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러나 어떡하랴, 다른 사람의 장사보다 내가 사는 게 우선이니,

     

    금년은 일조량이 많아 사과도 배도 감도 포도도 대부분의 과일이 당도가 높고 풍작이라 하고, 몇 칠전 울진을 다녀오면서 보니 논마다 벼농사도 풍년이 예고하고 있었다. 또 고추 마늘도 풍년이고 배추 무우 농사도 아직까지 잘 자란다니 올 김장은 걱정 없을 듯도 하나, 언젠가 부터 우리 농촌에 풍년이 들어도 기쁘지만은 아니하다.

     

    올해는 한미 FTA문제 때문에 농촌의 결실이 더욱 우울한 가을이 될지 않을까 싶고, 풍년도 걱정이고, 흉년도 걱정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도시의 사람들 중에 농촌 태생의 사람들이 많기에 농촌의 풍요로움이 도시인에게 격려이고 즐거움이다.

     

    도시의 공장은 가동률이 높아 생산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적자가 쌓인다니 어느 곳 하나 안전하고 마음편한 구석이 없는 게 우리의 현 실정이다.

     

    그러나 작열하던 태양은 몇 칠전 처서(處暑)를 고비로 이젠 우리 곁을 떠나려 하고 있다. 봄여름 가을 겨울이 바뀜에 있어서는 그 차례가 분명해서 엇나감이나 뒤틀림이 없으며, 계절은 말없이 순환하며 하늘 땅 사이에 존재하는 온갖 것이 생성소멸 함에 있어서도 다 그러한 이치를 지니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은 가을의 문턱임을 예고하니 비와 바람 그리고 더위와도 아듀 할 때가 되는가 보다.

     

      '태양이 어찌 사사로이 비추었으랴

       이 꽃은 뭣 때문에 그 은혜를 못 잊고서

       해질녁 쓸쓸한 바람 속에

       고즈넉이 지는 해를 바라만 보고 섰는가.'

     

    이는 명나라의 전사승(錢 士升)이 지은“해바라기(秋祭)라는 시이다.

     

    가을에 피는 꽃 중에 해바라기는 키가 제일 크며, 능소화는 담장이나 기둥을 타고 뻗어 하늘을 향하지만 홀로 서는 꽃이 아니고, 나팔꽃도 줄기를 뻗어 떨기로만 피는 것이어서 그 기상이 해바라기와는 사뭇 다르다.

     

    해바라기는 시골집 토담 한쪽 구석 양지바른 곳에서 자리 잡고 종일토록 해를 바라보며 서 있어, 충절을 상징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첨꾼의 비굴한 모습으로도 비쳐지기도 한다.

     

    맑고 높아가는 하늘, 써늘한 바람, 고추잠자리, 익어가는 과일 등 이모두가 여름을 보내며 가을의 문턱에서 다음 계절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는가 보다.

     

    필아야, 시간은 영겁(永劫)을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고, 사람은 그 시간의 띠 위에 한 점 외로운 존재 일뿐이다, 이 밤을 지새우면 다시 뜨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립고 보고 싶고 생각나는 사람에게 진솔한 마음을 보낼 수 있어 그 아니 좋은가.

     

    올 지루한 장마와 무더위에 그래도 잘 참고 보내신. everrkorea.net 사이트 동지들과 우리 一柱門 카폐 가족 여러분은 오는 가을을 가슴 열고 맞이하여 부처님의 가피 가득하시길 기원 합니다.

    日德. 碧 珍 合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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