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사상

참된 사람(人)이라면, 정체성(正體性)이 있다.

碧 珍(日德 靑竹) 2008. 11. 30. 16:38

참된 사람(人)이라면, 정체성(正體性)이 있다.

 



西山大師께서 부른,


“그대 거문고 안고 큰 소나무에 기댔도다.

  큰 소나무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도다.

  나는 노래를 길게 부르며 푸른 물가에 앉았도다.

  푸른 물은 마음을 맑고 허허롭게 하도다.

  마음 이 마음 이,

  나와 그대. ”라고 , 淸虛歌(청허가.<청허>는 서산대사의 호)에서,


이 노래를 통하여“그대”와“나”는 바로 자신을 가리키며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다짐하고, 소나무와 푸른 물의 그 意象(의상)을 표현 하시어 인간의 삶에 대한 의미인 정체성을 말씀하신 것이 아리하게 생각난다.


무릇 사람은 스스로 자기 중심을 잡아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인 정체성(正體性)을 갖고 사는 사람이 사라답게 사는 것이지, 밥 먹고 일하고 부부생활. 부모로서 생활. 사회생활. 신앙생활 등을 한다고 다 사람 사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오직 동물적 생활을 유지하는 거와 다름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혼이 심어지지 않고 세월 따라 흐르는 데로 하는 생활은 무의한 생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정체성이 없이 우왕좌왕하며 가자미눈처럼 시각을 가진 인간은, 언제 가는 모두 다에게 배척당하거나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東西古今의 사실이다.


우리 사람에게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낯설게 보이는 수가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보통 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즉 정체성이 확고하지 못하고 흔들림으로 자기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얄팍한 이중적인 사고 마음 깊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무엇이든 새롭게 바라보면 낯설어지나, 매일 똑 같이 보던 것인데도 , 어느 날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 그럴까?.


어떤 때에는 그 사람, 그 사물이 너무나 사랑스러울 경우도, 또 그 반대로 너무나 二重星을 가진 사람. 사물로도 보인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그것을 보지 못 한자가 너무 바보 같아 보이는 인유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느낀 것을 글로 쓰거나 말하자 않을 수가 없으며, 글을 쓰는 사람이 그 사람과 사물을 새롭게 만나 느낀 감동과 믿음을 가지는 반면, 또 반대로 비애와 불신을 말하지 않고는 전달할 수가 없어 글을 적는 것이다.


사람은 이따금 카멜레온을 변신의 대명사로 자주 말로서 글로서 표현하는데, 사람의 이중성 다양성이 이 카멜레온을 능가하는, 카멜레온이 갖고 있는 이중. 다양성과 변화적응 능력을 지닌 동물이라 보면 옳은 일이다.


어디서 왔는가,                 (來從何處來 래종하처래)

어디로 가는가,                 (去向何處去 거향하처거)

가고 옴에 자국이 없거늘,       (去來無定蹤 거래무정종)

사람들은 마냥 살 생각을 하네.  (悠悠百年計 유유백년계)


중종 때 松江 정 철의 스승으로 河西(하서) 金麟厚(김인후)선생의 남긴“題沖庵 詩券 (제충암 시권)”에 있는, 인간이‘산다는 것의 의미’를 표현한 말이 더욱 생각나는 새벽녘 이다.       碧  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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