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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왜 좌파 정면 비판 나섰나.

碧 珍(日德 靑竹) 2008. 11. 30. 16:37

    김지하 시인, 왜 좌파 정면 비판 나섰나.

     

     


    김지하 시인은 9일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발표한 글 '좌익에 묻는다'를 통해 한국 사회의 '극좌' 세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 시인은 시청 앞 촛불시위를 정권 탈취 운동에 이용하려고 한 일부 좌파 운동가들을 '극좌'라고 지칭하면서 "진보는 극좌가 아니다. 더욱이 나 같은 몽양계 중도 진보는 극좌와는 거리가 멀다"고 선언했다.


    김지하 시인은 지난 7일부터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를 프레시안에 매일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좌우 양극단을 버리되 중간도 아닌 것. 전체적인 차원 변화의 참 중도"를 향한 최근 생각을 설파하고 있다. 이미 생명평화사상운동을 실천해 온 김 시인이 '참 중도'론을 제시한 까닭은 촛불시위로 인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양극단 현상을 비판하고 극복하자는 것이다. 김 시인은 "촛불의 생명과 평화의 길 몇 개월 간에 이미 좌우 양쪽의 두 극단의 오류가 얼굴을 드러낸 바 있다"고 지적해왔다.


    김 시인은 특히 촛불시위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한 일부 세력을 가리켜 프랑스어 '까쇠'(Casseur)라고 부르면서, "시민들의 평화적인 시위에 복면을 쓰고 끼어들어 이렇게 저렇게 난장판을 만드는 자를 말하는 것"이라며 "나는 이것을 약간 비틀어 '까부수고(파괴) 까불고(난동) 까발리는(선동) 것을 본업으로 하는 쇠'(마당쇠의 그 쇠)를 요약한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김 시인은 "그러나 그런 좌파 '까쇠'들의 등장을 손꼽아 기다리며 폭력적 진압 사유와 현 정부의 엉터리 독단을 합리화시켜 세상을 제 멋대로 하려 드는 우파 집단 역시 나에겐 똑같은 '까쇠'로 보인다"고 말했다.


    1970년대 현실을 판소리풍으로 풍자한 담시 '오적'으로 투옥되면서 민주화 운동의 수난을 상징했던 김 시인은 1980년대 이후 생태 환경 운동으로 관심을 돌리면서 생명 사상을 제창했고,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치사사건으로 운동권의 분신이 이어지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해 극렬 운동권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히기도 했다.


    김 시인은 "(극렬 좌파들은) 감옥에 간 나를 철두철미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불굴의 혁명투사로 만들어 그 비극적 명성으로 저희들의 탈권 기획을 성사시키려 했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처형당하도록 만들어 국제적인 선전전에 이용해 먹으려고 했고, 저희 말을 안 듣자 배신자, 변절자로 몰아 모략중상을 상시화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심지어 어떤 선배란 자는 술에 취해서 왈. '지하는 감옥에서 죽어 버렸어야 해!' 이젠 웃음조차도 안 난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그들과) 수십 년을 호형호제하던 사이"라고 털어놓으며, "그들은 막상 횃불이 아닌 촛불을 위장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라. 이용해 먹으려 했던 것"이라고 질타했다.


    1970년대 고위 공무원과 재벌, 군 장성들을 비판한 담시 '오적'을 썼던 김 시인은 이번엔 노무현 전(前)정부를 향해 신랄한 풍자 정신을 발휘했다. "나는 그들의 본질을 지난 5년 노 정권 당시에 똑똑히 알았다. 더 이상 쓸만한 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모조리 사기꾼이다. 한마디 말없이 다 보았다. 날치고 설치고 까불어대는 자들의 속치마 고쟁이(요즘에도 그런 게 있나? 있다) ××속까지 다 보아버렸다. ×이 몇 개인지도 다 안다. 어느 날은 대구 갔다와, 차 속에서 자신만만한 운동권 출신 고급 관료 둘이 대구에 좋은 골프장이 있어 골프 치러 갔다 온다고 뻔뻔하게 떠벌리는, 술로 홍조를 띤 상판을 본 일도 있다. 그날은 공휴일도, 일요일도 토요일도 아니었다"고 적었다.


    2005년부터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을 맡아 저술과 강연을 통해 생태환경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 중인 김 시인은 최근 연작시 '못난 시'를 발표하면서 시적(詩的) 이력에 새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이제와/ 진종일 앉아/ 멍청하게 멍청하게 후천개벽을 생각한다// 지금 안 와도 좋고/ 지금 오면 더 좋고…'라는 '못난 시' 연작을 통해 김 시인은 비폭력에 의한 현실변혁을 여전히 꿈꾸고 있다.


    이번 글에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철학적 배경을 설명한 김 시인은 오늘날 좌파 운동권의 문제점이 좌파 이념의 한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유물론은 더 이상 철학 구실도 못한다. 인도 철학자 사르카르(아난무르타)는 유물론처럼 오류투성이 과학은 더 없다고 개탄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는 그 출생 때부터 과학을 앞세워서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과학이면 과학일수록 실험실 운명을 못 벗어난다.(…) 변증법은 더 이상 정확한 논리가 아니다.(…) 결국, 마르크스의 이론은 한때 덧없는 민중 정열의 서정시였다는 결론이 된다."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