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교육이 人性교육 아닌가.
(1).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지만 人性敎育이 잘못되었다고들 하면서도, 그 대책에 대하여는 누구나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한마디씩 거론하는 풍토가 정작 교육 문제로서는 큰 걱정거리의 하나가 된지도 오래이다.
근래 들어 사람들 사이나 방송. 신문 등 언론에서‘밥상머리교육’이란 말이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다.‘밥상머리교육이’란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다소 권위적인 느낌이 들지만, 함께 밥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의 인격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기에 아주 다정한 교육법이자 人性교육이 아닌가 한다.
‘밥상머리교육’이란 가족들과 오붓하게 식사하며 자녀들에게 人性 함양과 더불어 우수한 성적 효과까지 낼 수 있도록 식사 도중에 자연스럽게 자녀들의 학습을 돕는 것을 말한다, 이 밥상머리교육은 1석2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가정에서도 손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밥상머리교육을 어떻게 하는가 그 방법과 그 실천하는 법을 개발 발전시켜야 하겠다.
다시 말하면 가족 간의 식사자리는 그야말로 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교육의 장으로, 특별한 교재나 교구 없이도 다양한 음식들로 미각, 촉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이 총 동원되어 아이의 뇌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교육 효과가 탁월하기에, 아이는 대화하기 위하여서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또 이야기에 집중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지난날에는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각자 바쁜 life-style(생활형태) 때문에 한 식탁에 앉기도 어려운 게 오늘날 현실이다, 또 같이 밥을 먹더라도 hand phone을 보거나 통화를 하거나 TV를 시청하므로 밥상머리에서 대화가 적어 졌다, 그러기에‘밥상머리교육’이란 식구끼리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필요한 人性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어 주는 것이다.
‘밥상머리교육’이란 가족이 모여(가족시간 확보), 함께 식사하면서(식사공유), 대화를 통하여(소통과 공감), 가족 사랑과 人性을 키우는 시간(人性교육과 가족문화 형성)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누는 것은 밥상머리교육이 시작이고, 가족이란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은 식구이기에 지역과 시간을 초월하여 음식을 나누는 것은 유대감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이자, 가족식사는 대화하는 장으로의 밥상머리 교육은 가족들 간 하루 일과를 나누고 서로의 감정을 공감하는 소통의 시간이며, 밥상머리교육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인간형성의 기본적인 禮節교육, 人性교육, 社會性교육 등이 이루어지며, 그 속에서 가족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서로의 사랑을 만들고 확인하게 되는 장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말로 자식교육에 관하여 자기자식 예쁘다고 애지중지 사랑만 할 줄 알았지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못하는 경우를 뜻하는‘애이불교(愛而不敎)’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버릇이 되고 습관이 되어 나중에는 부모도 통제 불능이 되기에, 그 결과는‘짐승으로 기르는 꼴(수축지야.獸畜之也)’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겸허히 받아들여 자식교육에 motto(座右銘)로 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결국은‘밥상머리교육’이라는 이름이 거창하여 부담스럽다면‘밥상머리 대화’를 통하여 자연스레 예의(禮儀)와 존중(尊重), 배려(配慮)를 배우는 인간(人性)교육을 하라는 것으로 받아드리면 될 것이다, 그러기에‘밥상머리교육’이 一回性 교육이 될지라도 밥상머리교육을 소통기회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라 하겠다.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에 관하여는 가정에서‘밥상머리교육’부터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잘 되어야 하겠다, 그래야만 우리 국가. 사회.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人性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어 맑고 아름다운 교육이 이루어져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국가 사회를 이룩할 수 가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밥상머리교육’과‘人性교육’은 불가분의 관계라 하겠다.
(2).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사람을 연구 또는 교육의 대상으로 삼는 철학가, 종교가, 교육가, 정치가, 사회학가, 심리학가 등 모든 사람들은 사람의 心性(人性)문제에 대하여 흥미를 갖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사람의 人性에 대하여 전하여 오는 속담에‘사람은 열 번 변한다’와,‘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도 있기에, 人性은 변하는 걸까, 변하지 아니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면 정답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인성교육(人性敎育)’이란?.
‘인성(人性, personality)’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 보면 일반적으로‘사람의 성품(性品)’또는‘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이라 정의하고 있다, 작금 고도화된 사업화와 급격한 사회발달로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반면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예절, 가치관 등의 교육은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예절과 가치관 등을 포함하는 人性교육이란 무엇일까요?, 사회가 발달할수록 소외되고 있지만 결코 중요성이 소외되어서는 안 되는 교육이 바로 人性교육이다.
人性교육의 시작은 아마 父母에서부터라 하겠다, 무엇보다 인성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기틀은 부모를 통하여 시작되는 것으로,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즉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 자녀는 부모를 통해 보고, 듣고, 배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와의 간단한 일상 대화에서부터 인성교육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인성교육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매일 일상 속에서 자리 매김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부터 실천하는 것이 좋다.
人性교육은 바른 가치관과 예절, 겸양,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 참을성, 공동체 의식 및 규칙준수, 기본매너, 타 문화에 대한 이해 및 포용 등을 전부 아우를 수 있는 교육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의 바름과 옳고 그름을 잘 구분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 받을 것이고, 어디에서나 환영 받는 우리아이가 될 수 있게 가정에서부터 올바른 인성교육을 하여야 하겠다.
조선 후기의 文臣, 무명자 윤기(無名子 尹愭)는 그가 쓴 무명자집(無名子集) 제11책‘잡기(雜記)’8조목에‘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다(愛而不敎 獸畜之也 애이불교, 수축지야)’라는 글이 있는데, 이글의 내용이 우리가 걱정하는 人性교육에 대하여 그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윤기가‘잡기(雜記)’에서‘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다(愛而不敎, 獸畜之也)’라고 하였다. 이어‘주자가례’에 실린‘어려서부터 제 자식 귀하고 아까운 줄만 알아 그저 오냐오냐하면, 아이는 좋고 나쁨을 구분 못 해 나쁜 짓을 하면서 그래도 되는 줄 안다. 이것이 성품을 이룬 뒤에는 화를 내며 못 하게 해도 막을 수가 없다. 결국 부모는 자식을 미워하고, 자식은 부모를 원망해, 잔인하고 패역함에 이르게 된다. 이는 부모가 깊은 식견과 먼 염려가 없어서 작은 싹이 자라남을 막지 못하고, 작은 사랑에 빠져 그의 악행을 길러주었기 때문이다’라는 글을 인용하였다.
孟子가‘사랑하기만 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다(愛而不敬 獸畜之也)’라고 하였으니, 이는 현자(賢者)를 대우하는 도리로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자식을 기르는 것으로 말하자면 또 마땅히‘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다(愛而不敎 獸畜之也)’라고 말할 수 있겠다. 존경하지 않으면 본래 짐승으로 기르는 것인데 가르치지 않아도 금수로 기르는 것이니, 만약 사람으로 대하고자 한다면 어찌 가르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비천한 부류들도 오히려 가르침이 없어선 안 되거늘 하물며 사대부의 자제들은 그리하였겠는가 한다.
옛날에는 태중(胎中)에서도 가르쳤는데, 하물며 이미 태어난 자식임에랴. 자식이 태어나 지각이 있기 전에도 본디 예(禮)로 키우는데, 하물며 이미 지각(知覺)이 생겼음에는 어떠하였겠는가 한다.
孔子께서는‘어려서 이루어진 것은 천성과 같고, 습관은 자연과 같다(幼成若天性 習慣如自然)’라고 하였고, 안씨가훈(顔氏家訓)에서는‘며느리는 처음 들어왔을 때 가르치고, 자식은 어려서 가르치라)’라고 하였다.
자식을 기이한 보물이라도 얻은 듯이 여겨 제멋대로 굴게 놓아둔다. 사람을 때리거나 남의 물건을 망가뜨리면 기개가 있다고 자랑하고, 패악스러운 말과 해괴한 행동을 해도 졸렬하지 않다고 칭찬한다. 남이 제 자식을 잘못 건드리면 갖은 욕설과 사나운 낯빛으로 대한다. 제 자식이 상스러운 욕설을 해도 크면 자연히 나아지겠지 하고 내버려둔다.
조금 자라 성질을 못 이겨 집안을 뒤집거나, 이웃에 해를 끼치면 그제서는 막지도 못하고 야단칠 수도 없다. 아이는 속으로‘누가 감히 나를 대항하랴’하며, 마음에 들면 제가 먼저 차지해 무턱대고 빼앗고, 부형이 시키는 일은 동쪽으로 가려다가도 서쪽으로 간다. 교만 방자해져서 눈을 부라리며 멋대로 날뛴다. 마침내 부모를 속이고 미움을 품어, 도둑질까지 하기에 이른다. 어울리는 자는 부랑배요, 즐기는 것은 도박과 술자리다. 그제야 막으려 드니 번번이 충돌만 심해진다. 모른 체하자니 내 자식이요, 말을 하자니 제 얼굴에 침 뱉기라 숨겨 참고 지내다 보면 속이 다 썩어 문드러진다.
윤기는‘이는 모두 지난날 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아 짐승으로 기른 탓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 그러해서 일찍이 이 같은 투식을 벗어난 자가 없다. 인재가 일어나지 않고, 세상의 도리가 날로 무너지는 것을 또 어이 괴이타 하랴!(此皆前日愛而不敎, 獸畜之過也. 然而人人皆然. 曾無免得此套者. 人材之不興, 世道之日壞, 又何足怪乎)’라고 글을 맺었다.
우리 헌법 34조 1항은‘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 뜻은 국가가 인간다운 삶의 최종 목적인 평등을 정의롭게 관리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으로, 문제는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고 하였는데 노력하여도 가난은 대물림되는 것이 현실이고 人性 또한 그렇다고 하겠기에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소위 배웠다는 사람인 사회지도층, 즉 고급 소득자인 의사, 변호사, 큰 기업의 사장, 공직자 등등은 무엇보다도 국민들에게 모범적인 人性을 보이고 청렴하여야 하겠다.
따라서 사람은 人性의 발로, 즉 天心으로 주위, 가정, 사회에서 배웠다는 사회지도층부터 바른 人性을 솔선수범하여야 하는 사회가 지금의 사회 아닌가 한다.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웃 서로간은 利己에 관대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중요시하며 사람다운 삶을 원하기에, 어떤 삶에서도 수준 높은 人性을 중요시 하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人性 문제에 대하여 자신은, 내 주위는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보아야 하겠다.
|
'시. 산문. 편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친구(親舊)란 말에 대한 단상(斷想). (0) | 2016.09.22 |
---|---|
[스크랩] 친구(親舊)란 말에 대한 단상(斷想). (0) | 2016.09.20 |
[스크랩] 꿈에도 그리운 故鄕山川. (0) | 2016.09.16 |
[스크랩] 추석을 혼자 보내면서. (0) | 2016.09.14 |
[스크랩] 원고료 청구, 때로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0) | 2016.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