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스크랩] 초파일 희양산 봉암사를 다녀오며.

碧 珍(日德 靑竹) 2016. 5. 17. 07:22

 

 

초파일 희양산 봉암사를 다녀오며.

 

 

    대웅보전 과 대웅전(금색전)

 

(1).

해마다 고향집 뒤 언덕에 복사꽃이 피어나고 질 무렵이면, 가신님 생각으로 그리움에 애절한 가슴으로 살아 계실 그때를 생각 합니다라고 아버님을 그리며 못내 아쉬워하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산 골골에는 흰 꽃이 나무를 덮을 때 마치 흰쌀밥처럼 보인다는 이팝꽃이 밝고 환이 피어나고, 산등성이 마다 연붉은 산철쭉 만발하여 붉은 바다를 이루고, 들에도 하얀 찔레꽃 피어나고 산길이나 강둑에는 희고 연분홍 벚꽃이 흰 눈처럼 흩날릴 때가 되면, 으래 40여 년 전 우리 칠남매를 두고 홀연히 가신 아버님 모습이 떠오르며 그리워하는 가슴에는 애절함으로 쌓여지는 불기 2560년 4월 8일 부처님오신 날입니다.

 

자연의 섭리대로 해마다 음력 사월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고 기화요초(琪花瑤草)가 피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初八日이 오며 내 마음에 내 곁에는 부처님만 오시는 게 아니라 외할머님. 아버님. 어머님, 가신님들이 오셔서 모두 함께 이내 가슴에 자리한다, 그러면 님들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山寺를 향합니다.

 

오늘은 불기 2560년 사월 팔일 부처님오신 날이라 발길은, 일 년에 한번 '부처님 오신날' 에는 山門을 여는 문경군 가은읍에 있는 禪門九山의 하나인 대한불교조계종 종립선원 희양산 봉암사(曦陽山 鳳巖寺)로 가고 있었습니다. 봉암사는 1982년부터인가 수행 전문 도량으로 바뀌면서 일 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 날만 개방한다는 원칙이 있기에, 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15년 전 초파일에 다녀 온 후 이번이 두 번째 발길로 다시 가 볼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다.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봉암사를 가는 그 자체가 공부이다. 하차 후 왕복 15여리가 넘는 길을 걸어야 하는데 오늘은 교통통제 하는 사찰측과 경찰의 배려로 일주문(一柱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하차하였다, 봉암사 올라가는 계곡 따라 걸으면 참으로 좋다, 늦봄 초록이 짙어가는 희양산, 山河는 초록과 늦봄을 봄답게 하는 꽃들, 계곡의 물소리는 그 자체로 마음에 편안함이 절로 일게 하는 곳으로, ​사찰 초입 길부터 계곡에서 물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린다.

 

初八日(초파일)에 부처님은 오십니까,부처님오신 날 또는 석가탄신일(釋迦誕辰日)은 불교에서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로, 음력 4월 8일이다. 8일이므로初八日(초파일)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나무 아래서 탄생하셨는데,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씩 걷고 나서 사방과 상하를 둘러본 부처님은 오른손을 위로 왼손을 아래로 가리키며 사자후를 외쳤다.

 

부처님께서 옮기는 걸음마다 수레바퀴 같은 연꽃송이가 피어올라 그 발걸음을 받쳐주었으며,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즉 하늘 위와 하늘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에 해매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 탄생게는 생명 존재 가치의 존엄성, 절대성을 보여주고(天上天下唯我獨尊), 괴로움이라는 인간 존재의 실상을 일러주고 있으며(三界皆苦), 그 괴로움 해결에 대한 부처님의 대자비심(我當安之)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는데, 우리는 이 게송(偈頌)을 통하여 부처님께서 왜 이 사바예토(裟婆穢土)에 오시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은, 天上天下唯我獨尊이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 존엄의 엄숙한 선포인 것으로,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작금 현실 바로 이 자체의 모습으로서 온전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불기 2560년 4월 8일, 오늘은 부처님오신 날입니다, 그러나 오늘만 부처님오신 날이 아닙니다, 날, 날마다 부처님오신 날이며, 나의 참 생명과 마주하는 그 순간순간이 바로 부처님이 우리 곁에 오시는 순간인 것입니다, 온갖 번뇌와 괴로움과 집착을 비워 놓아버리고 참나 주인공과 마주하는 순간순간이 부처님오신 날이라 하겠습니다.

 

부처님오신 날은 한마음 다잡아 용맹스레 정진하여 일체의 집착을 일으키는 모든 인연을 버리는 방하착(放下着) 생활수행의 밝은 원력을 세울 일이기에, 날마다 매 순간마다 우리의 마음이 부처님오신 날 밝은 날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 앞에 고개 숙여 귀의하며,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청정하고 밝은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밝은 수행자가 되고자 크게 發心하는 날이 바로 오늘 부처님오신 날이 아닌가 합니다.

 

 

       금색전 편액(앞)  과  대웅전 편액(뒤)

 

 

(2).

부처님오신 날 봉암사를 왔다는 그 자체가 부처님공부가 아닐 수가 없다고 하겠다,

 

봉암사(鳳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희양산파(曦陽山派)의 종찰(宗刹)로서, 지금부터 약 1100여년전 879년 신란 헌강왕 5년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지선(智詵. 智證國師)이 창건한 이래 현재까지 선도량(禪道場)으로 일관해 온 선찰(禪刹)이다.

 

즉 봉암사는 고찰(古刹)로서 선종산문(禪宗山門)인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일맥인 희양산문(曦陽山門)으로 그 사격(寺格)이 매우 당당하다. 당시 이곳은 신라 문화의 정수인 선풍을 크게 일으켜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파의 주봉을 이루었던 곳이다. 특히 신리 제49대 헌강왕은 화풍을 소폐하고 혜해로 유고할 유신정치를 뜻하고 있었는데 이런 헌강왕의 개혁의지에 이념을 제공한 것이 지증대사의 선이었다. 

 

봉암사는 불기 2526년(1982)부터 종립선원으로 희양산 남쪽 넓은 터에 자리하고 있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의 단전에 해당하는 높이 999m의 거대한 바위산으로 서출동류(西出東流)하는 30리 계곡을 끼고 있어 천하 길지로 이름나 있다. 멀리서 보면 우뚝한 모습이 한눈에 영봉임을 알 수 있는데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르고 있어 예로부터 봉암용곡(鳳巖龍谷)이라 불리어 왔다. 

 

봉암사 앞뜰에 하얀 연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봉암사에서 결사(結使)를 하신 스님들이 생각난다, 봉암사는 1947년봉암사 결사로 잘 알려진 사찰이다, 1947년 성철스님과 더불어 청담. 자운. 우봉스님 등 4인이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원을 세우고 결사도량을 찾은 곳이 봉암사 이였으며, 그 후 행곡. 월산. 종수. 보경. 법전. 성수. 혜암. 도우 등 20인이 결사에 참여하였다. 당시 결사대중은 공주 규약을 제정하여 추상같은 법도를 세워 오늘날 수행의 근간을 세웠던 것이나, 이러한 결사정진도 1950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단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하게 된다. 

  

1982년 6월 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여 성역화 의지를 표명, 희양산 봉암사 지역은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이어서 선풍 진작과 종단 발전을 위하여 봉암사를 종립선원으로 결정하였다.

 

봉암사에는 보물과 문화재로 봉암사 3충석탑. 지증대사 적조탑과 적조탑비. 마애보살 좌상 등이 많이 있기에 특히 눈여겨볼만한 것 또한 많다,

 

희양산 鳳巖寺 일주문(一柱門)은 山門을 들어가는 전면에는曦陽山鳳巖寺(회양산봉암사)라고 씌여진 편액이 걸려 있고, 절에서 나오는 뒤편에는‘鳳凰門(봉황문)이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일주문 안쪽에는南無阿彌陀佛나무아마타불이라고 한글로 적은 암각글씨로 되어 있다.

 

                                             일주문 앞 과 뒤 편액

 

 

일반적으로 법당, 대웅전에 석가모니불의 좌우 협시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혹은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모신 경우에는 대웅전(大雄殿)이라 하고, 삼세불. 즉, 현세의 석가모니불, 과거의 연등불인 제화갈라보살,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신 경우는 그 격을 높여서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부른다. 물론 이러한 규칙을 반드시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이와 같은 예에 의하여 부처님이 모셔지고 있다.

 

봉암사에는 大雄殿(金色殿)과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있다, 대웅전을 전면에서 면 大雄殿이란 현판이 있고, 뒤편에서 보면 金色殿이란 현판이 있어 다른 사찰과는 특이하다. 봉암사도 많은 전각의 중심영역에 대웅보전이 있다.

 

대웅전 부처님과 대웅보전 부처님의 수인(手印 손 모양)을 자세하게 보면 다르다.

大雄寶殿의 부처님은 바른손으로 왼손의 둘째손가락 윗부분을 감싸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바로 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고 왼손은 중생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결인은 중생과 부처님이 하나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主尊인 비로자나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계신다, 반면에 大雄殿(금색전)부처님은 부처가 결가부좌 상태로 참선, 즉 선정에 든 것을 상징하는 선정인(禪定印)에 왼손을 그대로 두고 위에 얹은 오른손을 풀어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계신다. 이 수인은 결가부좌한 좌상에만 취하는 입상이나 의상에서는 볼 수 없다.

 

봉암사(鳳巖寺) 극락전(極樂殿)은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55호로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법당으로서는 유례가 드문 2층 전각으로, 서까래 모양이나 건물의 구조가 특이하며, 특히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현존하는 희귀한 목탑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에는어필각(御筆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아미타불상과 1904년에 조성한 극락회상도를 봉안하였다. 

 

봉암사지증대사 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은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봉암사에 있는 통일신라의 탑비로, 높이 273㎝, 너비 164㎝, 두께 23㎝. 보물 제138호. 최치원(崔致遠)의 사산비명(四山碑銘)의 하나로 유명하다. 비신은 청석(靑石)으로 귀부(龜趺)·이수(螭首) 및 비좌(碑座)의 조각이 뛰어나다. 지증대사는 17세에 부석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뒤에 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파(曦陽山派)의 창시자로 봉암사를 창건하였으며, 그가 882년 헌강왕 8년 봉암사에서 입적하자 왕은‘지증(智證)’의 시호와‘적조(寂照)’라는 탑명을 내리고 당에서 귀국한 최치원에게 비문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출처 : 벽진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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