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사상

注書와 史官.

碧 珍(日德 靑竹) 2008. 12. 1. 17:55

注書와 史官.



조선시대 歷史의 기록을 담당하는 직책을‘史官’이라 하며, 史官에 의하여

쓰여 진 역사기록을 우리는 正史라 한다.


史官에 대하여는 잘 알고들 있어나, 注書는 조금 생소 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관원으로 승정원에 속하는 注書라는 직책도 있다,


注書와 史官의 관계에서 차이는 무엇일까?


조선역사기록인“朝鮮王朝實錄”과“承政院日記”는, 조선시대의 기록문화의

탁월성을 입증하는 자랑스럽고 위대한 文化遺産이다.


“注書”이란 王命의 출납을 담당하고 있던 승정원의 정 7품 관원이며, 

승정원의 승지(承旨)가 정책관여 등 중요국사에 참석하는 고위관직인데 비해,

注書는 그 밑에서 문서를 작성 기록하던 행정실무자의 신분이다.


“注書”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承政院日記의 作成과 입시(入侍)이다,


“入侍”란 王과 臣下들이 만나는 자리에 동석해 그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는 일을 말하며, 承政院日記의 入侍 기록에는 대화뿐만 아니라

행동거지 또한 눈앞에서 보는 듯이 기록되어 있다.


承政院日記에 있는 실례로, 승정원 注書였던 민응세가“영조 40년 10월 1일,

여느 때와 같이 저녁공부(夕講)를 마치고 약방에서 들인 탕제를 마시던 英祖는

갑자기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놀라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라고,

이렇게 英祖의 돌발적인 행동까지 우리가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은,

저녁공부에 入侍했던 注書가 承政院日記에 남긴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英祖는 탕평책과 균역법을 시행하여 조선의 르네상스기를 열었으며,

사도세자인 아들을 뒤주 속에서 죽게 할 정도로 강했던 英祖에 대한

邪心없이 기록한 것을 보면, 注書나 史官은 차이가 없는 것 같이 사료된다.


우리는‘역사의 기록자’라고 하면 史官을 말하는데,

넓은 의미로 볼 때는 注書 또한 조선역사 기록의 한축을 담당한 史官이었다.


좁은 의미의 史官이 예문관 소속의 대교. 봉교. 검열을 가르치는데 반해,

注書는 승정원 소속으로 별도의 직책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史官의 기록과 注書의 기록의 차이점은 즉,

“朝鮮王朝實錄”과“承政院日記”의 기록에서 그 차이를 볼 수 있듯이,


史官의 기록이 朝鮮王朝實錄으로 편집 되어 있으나

전말이 자세하게 되어 있지 않는 반면에,

注書의 기록인 承政院日記는 월별로 일기를 만들어 졌으며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注書와 史官은 承政院日記와 朝鮮王朝實錄을 기록하여 펴낸

조선의 기록문화(記錄文化)를 꽃피운 主役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注라는 관의 이름을 알아두면 

歷史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碧   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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