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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보릿고개 때가오면 생각나는 故 朴正熙 대통령.

碧 珍(日德 靑竹) 2010. 3. 22. 16:09

     

    보릿고개 때가오면 생각나는 故 朴正熙 대통령.

     

      

     

                                               

     

    무슨 사연들이 그리도 시간을 앗아갔는지 4월 말이 다되어 월력을 넘기다 보니 5월로 넘겨버렸다. 5월 초부터 6월 중순까지는 지난 1945년대부터 1970년 중반까지는 쓰라리며 참담하고 잔인했던 춘궁기(春窮期)시대이었다.

     

    우리 서민들에게는 춘궁기(맥령기,麥嶺期)는 진저리가 나는 기억인 동시 서러운 말인“보릿고개(麥嶺)”가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강직했던 지도자인 고 朴정희 대통령이 마음에 떠오른다.

     

    8.15해방을 거치며 6.25남침이란 비극의 동족상쟁의 전쟁을 겪으며, 춘곤기인 보릿고개는 무엇보다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하던 일년 중 가장 비참하고 잔인한 계절이 춘궁기(맥령기.麥嶺期)였음을 기억한다.

     

     

    봄의 막바지인 하얀 들 찔레꽃이 피는 보릿고개 철이 되면, 집집마다 보리 한 톨. 옥수수 감자 한 알마저 떨어지는 때이었는데, 그래도 봄이라 山河에는 자연의 순리대로 백초가 돋아나고 꽃들이 다투어 피는데,

     

    그중에 하얀 들 찔레꽃 피고, 논에 모를 심을 때부터 보리타작을 할 때까지는 보릿고개가 절정에 달한다,

     

    가난한 농부나 도시의 노동자에게는 먹을 것이 없어, 들과 산에서 나물을 캐어다 보리 몇 줌을 넣고 죽을 끓여 먹거나, 가축사료로 나오는 딩기로 개떡을 쪄서 먹기도 하고,

     

    산골에서는 소나무껍질을 벗겨다 곡식 몇 줌으로 죽을 끓여 허기진 배를 채우는 집들도 있었다, 진풍경이라기보다 잔인한 참상을 볼 수가 있었던 시대를 우리네 어버이와 형제들은 살아 왔었다.

     

    오늘날 사십대 미만에게 民草들이 겪었던 배고픔의 서러움과 고통을 말하면, 아마 먼 나라 아프리카나 꿈속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도리어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다.

     

     

    사람이 받는 고통 중에, 배고픔의 고통과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는 서러움은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고 옛 부터 전해오는 말이며, 식욕은 인간에게 가장 기본 되는 욕구인 것이다.

     

    나이가 지긋이 든 사람은“보릿고개”란 말은 듣기 싫은 말이나, 생각해보면 대한민국과 국민의 운이 다하지 않았는지 역사의 수레바퀴는 당시 젊은 군인출신의 혁명가들에 의해 사회전반, 특히 경제개혁을 단행하는 운을 만났다.

     

    오늘날의 번영을 가능케 하는 기단을 세워, 경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을 지나 선진국 반열에 발돋움을 하게 되므로, 오늘날 대다수 국민은 배고픔의 고통과 서러움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그들 젊은 혁명가들과 주도한 고 朴정희 대통령의 구국의 일념으로 부단한 개혁의 성공으로 인한 것이다.

     

    당시 대학생. 지식인 층, 특히 左派 정치인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았으나, 강력하게 경제개혁을 주도하고 단행한 고 朴정희 대통령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기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고 살아와 서민들의 배고픔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 중 한사람이었다.

     

    돌이켜 보면, 한나라의 운명과 국민들이 잘 살고 못사는 것은 위대한 지도자를 만날 수 있나 없나에 따라 극명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서야 그 결과를 놓고 보면 이 평범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고 朴정희 대통령 시대에 우리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을 보아온 세대로서 “경제발전과 민족의 개념이 충돌하던”그 당시, 해마다 하얀 들 찔레꽃피던 늦봄은 우리 民草들에게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혼란하던 나날들이었으며, 참담한 배고픔의‘보릿고개’시대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62년, 대구종합운동장에서 새까만 얼굴에 작달막한 키의 박정희 육군 소장을 처음 뵈웠을 때, 정치인들처럼 연설은 제대로 하지 못하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혁명의 당위성과 국가정체성. 민생문제에 관하여 연설하는 것을 보고, 깐깐하고 강인한 그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 강인한 모습의 뒷면에는, 그도 가정과 가족문제에 있어서는 일반 가장들과 다름없이 감상적이고 다정다감한 사람 이였음이,‘春三月 素描(춘삼월 소묘)’라는 제목의 시조를 보고, 강인하고 독하게 보이는 사람도 자기 가족에 대한 감정은 모두가 같은 것인가 한다.

     

    고 朴 대통령도 사실을 알고 보면, 평소에 일백여 편의 시를 습작하고 있었던 詩人이시다.

     

    춘삼월 소묘(春三月 素描).

     

    벗 꽃은 지고 갈매기 너울너울

    겨울 같은 호수에 나룻배 하나

    경포대 난간에 기대인 나와 영(英).

     

    老松은 정정 亭子는 우뚝

    복숭아꽃 수를 놓아 그림이고야

    여기가 경포대냐 古人도 찾더라니.

     

    거기가 동해냐 거기가 경표냐

    백사장 푸른 솔밭 갈매기 날으도다

    춘삼월 긴긴 날에 때 가는 줄 모르도다.

     

    바람은 솔솔 호수는 잔잔

    저 건너 봄 沙場에 갈매기 떼 날아나네

    우리도 노를 저어 누벼 볼거나. - 1951년 4월 25일 경포대에서 -

     

    이 글은 고 朴 대통령이, 9사단 참모장직으로 동부전선을 지키면서 動中靜생활 속에서 詩感을 키워 오던 중 지은 글이다.

     

    ‘춘삼월 소묘(春三月 素描)’는 고 朴 대통령과 陸 여사가 함께 지은 것으로, 고 박대통령 내외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詩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그때 陸 여사가 일선을 찾아 갔을 때, 경포대 바닷가에서 나란히 앉아 그 詩를 몇 번이고 읊었다고 하였으며, 말이 별로 없으며 빙그시 웃기만하고 무표정하기만 한, 고 朴 대통령에게도 이런 감상적인 마음을 아내에게 전달한 것은 한편의 詩로서 사실상 사랑의 표현인 것이며, 고 朴 대통령 내외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부부임을 느끼게 한다.

     

    평소 매스콤에 나오는 고 陸 여사의 모습을 보면, 여자로서 매력 포인트는 우아하고 사냥한 미소를 늘 띠고 있는 목련꽃 같은 자태이다.

     

    영부인이 된 陸 여사의 미소는 평범하고 서민적인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마음속에 다가가 따뜻한 정 있는 미소로 전달되었고, 이에 국민들은 친근감과 희망. 보람을 가졌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를 선진국화 반열에 들게 하고 서민들에게‘보릿고개’를 잊게 하여준 고 朴 대통령의 통치력. 창의력과 육 여사의 서민적이고 자상한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게 해준 것이며,

     

    들에 핀 하얀 들 찔레꽃을 보면, 가신지가 27년이 지난 오늘날도‘보릿고개’철이 되면 고 朴정희 대통령을 생각이 나면서 아쉽고 그리움이 가슴 가득하여 진다.

     

                                                                                    極樂往生 하소서

     

                                                                    碧 珍.

     

                                                                                    
출처 : 대한민국 박사모 (박사모)
글쓴이 : 벽 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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