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비(風雨).
어느 때인가 부터 맨 방바닥에 벗이 만들어 준 앉은뱅이 ㄷ자형 간이 책상에서
거적 거리는 게 걸상을 사용하는 책상보다 훨씬 좋아하는 버릇이 되었다.
사실 그는 우리 토종 장판지를 선호 하는데, 여름이면 싸늘한 촉감에 홑 삼배를
깔고 누우면 그 맛 하나 일품이며,
겨울이면 약간 따뜻한 온기위에 그대로 누우면 다가오는 따뜻함이
어머님의 품안 같이 편온 하고 좋았다.
어쩌다보니 연일 마셨는지라 오늘 하루는 두문불출하고 있는데,
초저녁 무렵부터 감질나게 비가 오더니 갑자기 천둥 번개를 동반하고
비에다 바람까지 창문을 뚜드리니,
마음은 나가서 비를 흠뻑 맞고 싶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바람과 비, 바람이나 비가 사람에게는 이로움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엄청난 재앙을 끼치기도 하나, 사람은 바람이나 비에 대하여
특별히 고마워하지도 않고 그리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바람이나 비가 하나의 자연현상으로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때문이다,
다만 밤과 비는 이를 잘 다루는 사람에게는 이로움을 많이 주고 해를 저게 준다.
風, 漂物者也,(풍, 표물자야)/ 바람은, 물건을 불어 날린다,
風之所漂, (풍지소표) / 바람이 불어 날림에 있어서는,
不避貴賤美惡.(불피귀천미악)/ 귀하고 천하고 곱고 밉고 가리지 않는다.
雨, 濡物者也,(우, 유물자야)/ 비는, 물건을 적신다,
雨之所墮, (우지소타) / 비가 내림에 있어서는.
不避小大强弱.(불피소대강약)/ 작고 크고 강하고 약한 것을 가리지 않는다.
관자‘형세해(管子 形勢解)’에 있는 말이다.
바람은 우주공간에 가득하여 부는 그 방향이나 강약은 일정하지 않으며,
그리고 비도 하늘에서 땅으로 내림에 있어 수량이 일정하지 않는다.
당나라 왕발(王勃)은‘상유우상서(上劉右尙書)에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위에서 맑은 물이 흐르면 맑은 물이 아래로 흐르고,
위에서 더러운 물이 흐르면 더러운 물이 아래로 흐른다.
그리고 빛이 일정한 물체를 투영되면 그 물체의 반대쪽에 그림자가 생기며,
물체의 모양이 곧으면 곧은 그림자가 생기고,
물체의 모양이 굽으며 굽은 모양의 그림자가 생기는데,
이는 하나의 과학적 현상이요 사실이다.
마치 바람과 비, 빛의 현상이 우리 사람 사는 세상 이치와 다를바 없는데,
현금 정치 상황도 종교계 시국기도나 법회도 그렇고,
불자로 배우겠다고 하는데 가르치는 스승도 시류에 편승하는 것을 보면
바람과 비. 빛의 현상과 다를바 없는 것이라,
그래도 깨달음이 모자라는 중생이 참 진리와 자아를 찾아 보고자하는 것도
한낱 바람과 비와 다를바 없다고 마음에 고인다.
우리나라 속담에‘윗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다분히 비판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흔히 윗물이 맑지 못하니까
아래물이 흐린다고 그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해 인용 되는데,
세월 따라 변하다 보니 요즈음은 시류에 편승하고 영악한 생각을 가진 탓에
윗물만 탓할 것이 아니라, 중간 아래 물을 더 탓할 일들이 많아
세월을 무상하게 하는 일이 흔히들 있기에 사회지도층 인사들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할 말이다.
우리나라 물은 본디 물이 맑고 산 빛이 고와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하여 왔는데,
방방곳곳 위에서 아래까지 맑은 물이 흘러 사람들은 그 물에 얼굴을 비추어 보고
손으로 그 물을 떠서 마시며 마음까지 곱게 씻었다.
그런데 산업화 과정에서 江山이 급속히 오염되어 계곡에 흐르는 물이
온통 탁하고 흐려서 그 물을 마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물에 모습을 비추어 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기에 세상변화와 더불어 온통 변화의 물결이 소용돌이 치는 가운데
그래도 참 진리와 정체성을 유지하여야 할 종교계도 예외없이 혼탁 속으로
일부는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면 배우는 사람으로는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까지 자주 흐려져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어 가고 있으나,
이제 江山과 마음을 함께 되살리는 일을 펼쳐 나가야 하며, 하루 속히산빛이 곱고
맑은 물에 얼굴을 비추어 보고 발 담그고 박주나 한잔하고 싶다.
바람과 비가 쳐대니 마음이 우울하다보니
'회남자 설산훈(淮南子 說山訓)’에 있는 말이 생각난다.
淸之爲明, (청지위명) / 맑으면 밝아서
杯水見眸子, (배수견모자) / 접시 물에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으나,
濁之爲暗, (탁지위암) / 흐리면 어두워서
河水不見太山. (하수불견태산) / 강물에도 큰 산이 비취 보이지 않는다.
碧 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