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碑石)과 소문(所聞).
살아가다 보면 시간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도 있다, 이럴 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능하면 우리 땅의 江山과 역사가 숨 쉬는 사적지 명성지 등 사람이 사는 곳을 많이 들러보는 게,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리라 학창시절부터 생각하고 있어, 사회에 나와 생활하면서 여유가 있을 때면 가볼만한 곳을 두루 다녔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나라 곳곳, 사적지. 명성지. 산과 강가 정자. 소위 명문대가의 사당.제실.묘역. 옛관청. 현관청. 향교. 개신교성지. 절 앞 등에 왜?,이리도 선정. 공덕. 잘난 비석들과 공적을 기리는 기념 조형물이 많은가 생각하고 짧은 한문 실력으로 읽어 보고하는데 그런대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석들과 기념 조형물을 볼 때마다, 우리민족 중 民草들이 살아온 역사 속삶을 생각할 때마다 무언가 석연치 못한 마음 항상 이었다.
그래서 비석에 관한 옛 글을 읽으며 마음을 정리해본다.
卷君不用鐫頑石,(권군불용전완석) / 대에게 권하노니 딱딱한 돌에다 자기공적을 새기려 하지 말라, 路處行人口以碑.(노천행이구이비) / 길가는 나그네의 입이 바로 비석 이니라. 송나라 보제(普濟)가“오정회원(五朾會元)”에서 한 말이다.
金石에 치적이나 공로를 새겨서 후손에게 전하고, 靑史에 이름을 남기는 일은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마음들이다.
우리나라 방방곳곳에는, 조정중신 지방관의 善政이나, 특정개인의 功德을 기리는 비석과, 신교의 성지 앞에도, 절 앞에도, 고관을 지낸 이의 묘 앞에도, 양반가문의 사당.제실.정자 앞에도 비석들이나 공덕의 표식이 유별히 많이 있다. 이들 비석들에 새겨진 내용이 모두가 진실을 바탕으로 한 것 이라면,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드물 만큼 훌륭한 인물(인재)이 많았고 살기 좋은 나라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들이 조작이나 강요에 의하여, 혹은 고위 벼슬을 한사람이나 양반 대가의 가문이 명성을 위해서나, 종교단체도 자기들의 교세확장이나 과시를 위해서 세워 졌던 것이라면, 오히려 부끄러운 역사요 현상이요 산 증거물이다.
돌이켜 보면, 단군 이래 5천년 역사중 그래도 사실에 가까운 기록이 존재하는 2천년동안, 과연 우리 백성, 민초들이 얼마나 사람답게 잘 살아왔는가?, 역사상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난(亂)과 위정자 양반계급들의 학정과 수탈에 사람취급 받지 못하고 고생하며 죽어 갔는가는 역사가 말을 하고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그 많은 비석들의 주인공과 유림. 사대부. 종교지도자 등 인물과 배웠다고 으스대 든 사람들은 어떠하게 백성을 위해 일을 하고 무엇을 했단 말인가, 역사는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지금도 일부의 크나 작으나 관직에 있는 자가 국민의 公僕(공복,머슴)임을 잊고, 공익을 위한 사회단체의 지도자와 종교단체의 지도자가 정치 사업에 관여하고 교세확장 교권다툼으로 자기 분수도 모르고 갈지자(之) 걸음을 걷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행태의 사람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떠나 가버려야 우리가 사는 세상 사회가 아름답고 살고 싶은 세상이 되는 것임을, 알고나 살아야 할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天地自然은 말이 없지만 아름답고 分明하며 合當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은 왜? 이리도 말만 많고 추악한가,
왜? 사람들은 역사는 모든 것을 기록이나 口傳으로 잘. 잘못을 남겨 후세에 전하여 줌을 모르는가. 碧 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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