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술과 그리고 인연들(8). - 막걸리 단상(濁酒 斷想).
(1). 우리가 일본지배 하에서 8.15해방을 맞이한 뒤인 1950년대부터 배고픔으로 인하여‘보릿고개’란 말이 전국곳곳에서 유행병처럼 펴져 돌고 있어 민심이 매우 뒤숭숭하였기에, 이 시절 대부분의 도시서민 농민들의 살기가 심각할 정도로 어려워 많은 국민들이 배고픔을 견디기에 어려웠던 시절로, 하루에 세끼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그래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산나물이나 소나무껍질(松皮)에다 좁쌀이나 보리 몇 줌을 넣고 끄려 먹기가 일쑤였고, 사료용인 등겨로 개떡을 만들어 도시락대용으로 가져오는 급우들은 그래도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다보니 농군 노동자들조차 막걸리 한 사발 먹기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이제 희수(喜壽)를 맞이하고 보니 여생도 그리 길지 않다는 느끼며 지나온 삶을 되새겨보면, 나(我)와 술(酒)은 원초적으로 불가분 관계를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 학생시절이나 사회 진출한 초 젊은 시절은 주머니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지라 이따금씩 동무. 친구들과 어울려 막걸리(濁酒)집에서 소금이나 푸성귀 나물을 안주 삼아 왕대포나 막걸리에 소주를 썩어 마신 기억이 그저께 같고, 그 후 30대 후반을 넘어서는 술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자연서리 술과 더욱 가까이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막걸리(탁주,濁酒)가 국민의 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 술로 보통 쌀이나 밀에 누룩을 첨가하여 발효시켜 만든‘막걸리(濁酒)’를 농주(農酒), 재주(滓酒), 회주(灰酒)라고도 한다. 이는 삼국시대 이후 전래된 전통 술로 쌀, 보리, 밀 등을 원료로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후 체로 걸러 내어 만들며, 원료에 따라 찹쌀막걸리 등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한국의 전통술인‘막걸리’는 막 걸러낸 술이라고 하여 이름이 붙었고, 색깔이 탁하여 탁주(濁酒)나 탁배기, 농사를 지을 때 먹는 술이라고 하여 농주(農酒), 거르는 과정에서 찌꺼기가 남은 술이라고 하여 재주(滓酒), 신맛을 없애기 위해 재를 섞는다고 하여 회주(灰酒)라고도 하며, 역사가 오래된 술로 빛깔이 뜨물처럼 희고 탁하며 알코올 성분이 적은 6~7도의 술로 흔히 농사를 지을 때 먹는 農酒로 전래되어 왔었다.
막걸리의 유래는 언제부터 음용(飮用)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삼국시대에도 막걸리와 유사한 술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여지고 있으며,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의 글에 맛이 텁텁하고 색이 진한 서민용 술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고려시대에도 막걸리를 담가 먹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가 있다. 고려 때부터 잘 알려진 막걸리인 이화주(梨花酒)는 막걸리용 누룩을 배꽃이 필 무렵에 만든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는데, 후에는 아무 때나 막걸리를 만들어서 그 이름도 사라졌고, 추모주(秋牟酒)도 막걸리의 일종이다.
막걸리는 조선양조사에‘중국에서 전래된 막걸리는 처음 대동강 일대에서 빚기 시작해서 전 국토에 전파되어 민족고유주가 되었다’고 씌어 있는데 그 진위는 가리기 어려우나 토속성이 짙은 술임은 분명하다.
우리 애주가(愛酒家)들이 즐겨 마시는 술(酒)은 그 제조 방식 중 거른 형태에 따라 탁주(濁酒 막걸리)와 청주(淸酒.소주)로 대별할 수가 있다. 소주(燒酒)를 발효시켜 증류하기 위하여서는 곡식이 많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조선 초기 소주는 특정 계급인 양반들에게만 접근 가능한 기호품이었고 사치스러운 고급주로 인식되었듯이 이는 자연스럽게 대중 술과 고급술로 나눌 수가 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청주를‘聖人’으로 탁주를‘賢人’에 빗대어, 즉 청성탁현(淸聖濁賢)이라며 표현하기도 하였다고 하며,‘술(酒)’이란 때로는 良藥이 되기도 毒藥이 되기도 한다.
술에 대하여는 나라마다 국민들이 즐기는 술이 있는데 日本의 청주가 英國의 위스키,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가 대표적인 술이라 할 수 있듯이 그 나라마다 고유의 전통 술이 있듯이 선진국마다 양조산업을 육성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또한 선진국치고 양조산업을 육성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프랑스 부르고뉴 보졸레 지방에서 재배된 가메이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세계적인 名酒로 손꼽히는‘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도 처음부터 고급술은 아니었듯이, 이제라도 우리 막걸리(탁주)도 세계적인 명주로 육성할 수만 있다면 韓食의 세계화와 더불어 막걸리 또한 한몫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나친 것일까 한다.
(2). 오래 전에 적어 두었던 졸필(拙筆)이 기억나 독송(讀誦)하다,
‘박주산채(薄酒山菜) 안주삼아.
우거(寓居)인들 어떠하랴 산가(山家)인들 어떠하랴
심산유곡(深山幽谷) 발 담그고 찬 산(山)바람 맞으면서
薄酒에 山菜 안주삼아 달빛 별빛 벗 삼아서
주발(酒鉢)들고 벗과 함께 잔(盞)기울며 살고 싶다.’
고 적고 나니, 밤을 새워 술을 마셔도 주정을 부리거나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기로 유명한 東卓 趙芝薰님이 생가난다, 그는 일찍이‘주도유단(酒道有段)’이란 수필에서 酒道에도 단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술을 마시는 사람의 자세와 행태에 따라 구분하는 말이라 생각된다.
(3). 막걸리는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즐겨 마시던 술로, 어려워 궁핍하였던 시절에 허름한 뒷골목 술집에서 왕소금이나 멸치 따위의 간단한 안주로 대폿잔을 기울이며 울울한 심사를 달래면서 마시던 술이기도 하다. 또한 공무원. 월급쟁이. 친구나 선후배 등과 어울려 서민들이 드나들기가 좋았던‘무림식당’‘성주집’‘행복식당’‘고향집’‘봉산식당’등등 소문난 막걸리집이 뒷골목마다 문패도 없는 허름한 소문난 막걸리집이 대구 뒷골목에도 많았다. 특히 文人들이 6.25 피란살이의 시름을 달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술이고 술집이었다.
막걸리(濁酒)제조는 술을 빚을 때에 빨리 발효하도록‘누룩’에다, 찹쌀이나 멥쌀. 보리 등을 물에 불려 시루에 찐 밥인‘지에밥’과 함께 조금 넣는 묵은‘밑술’을 발효시킨 다음, 청주(淸酒)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체에다 뭉개 큰 술지게미를 걸러낸 술이 탁주(濁酒)인데, 여기에다 물을 적당량 섞어 다시 한 번 자루나 체에 걸러낸 술이 막걸리이다. 예전에는 지에밥에 누룩을 섞어 빚은 술을 오지그릇 위에‘井’자 모양의 징그레를 걸고 올려놓아 체에 거르면 뿌옇고 텁텁한 탁주가 된다. 이 때 술통에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걸러 낸 술이 청주(淸酒)이다.
또한 전통적으로는 淸酒를 걸러 낸 나머지를 다시 체에 걸러 막걸리를 만들기도 하였었는데, 이때 찹쌀이 원료이면‘찹쌀막걸리’이며, 거르지 않고 그대로 밥풀이 담긴 채 뜬 술이‘동동주’라 한다. 좋은 막걸리 맛은 단맛, 신맛, 쓴맛, 떫은맛이 잘 어울리고 감칠맛과 맑고 시원한 맛이 있으며, 그러기에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농부들의 갈증을 덜어주는 농주(農酒)로 애용되어왔었다.
예로부터 막걸리를 大邱의 술이라고 하였듯이 그만큼 대구사람들은 막걸리를 좋아하였다는 뜻이며, 大邱지역에도 이름 있는 막걸리로 大邱 막걸리. 八公山不老막걸리. 靑道막걸리. 가야산 伽泉막걸리. 靑松 막걸리, 慶州法酒 막걸리 등 많다.
막걸리는 어느 나라 술도 흉내 낼 수 없는 개성 있는 술로 자랑거리가 많은 술이다. 또한 맛이 진하지 않고 달콤 쌉쌀한 첫맛이나 톡 쏘는 뒷맛이 매우 좋은데다가 특히 여러 음식과 궁합을 잘 맞출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하고 효모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건강과 미용에 좋은 술이라고들 한다.
막걸리가 되면 알코올 도수가 6~8도를 넘지 않으며, 도수가 높지 않아서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이나 여성들도 마시기에 좋으며, 또한 막걸리는 부침개 튀김, 파전, 물판전, 빈대떡, 보쌈 등 한국의 pancake와 같은 음식과 음식 궁합이 잘 맞듯이 주변의 다른 음식과 어우러질 때 제 맛을 내는 술이 막걸리이다, 특히 이 pancake와 함께 먹는 것은 종종 비 오는 날과 관련된 좋은 관습이 아닌가 한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변하다보니 오늘날에는 막걸리가 나이 든 사람들만의 술이 아니라 젊은이들도 즐겨 마시는 술이 되면서며 변신하여, 딸기 키위 포도 블루벨리 같은 과일이 빚어내는 빨강 노랑 보라 등 화려한 칵테일이 젊은 여심을 사로잡고 있듯이 다양한 칵테일의 등장으로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변신을 하고 있다. 아무튼 주스 같은 음료수이기도 와인 같기도 한데 각자마다의 취향에 따라 색다른 맛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오늘날 막걸리집의 자화상이다.
특히 막걸리는 값이 싸고 건강에 좋다는 소문에 여성들이나 외국인들까지 너도나도 막걸리를 찾고 있어 국내외에서 막걸리 열풍이 세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너와 나 사람들과 어울려 막걸리 잔을 주고받다보면 그 맛에 취하고 향에 취하고 사람의 정에 취한다. 이게 막걸리 문화이고 술의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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