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불성과 개시오입 단상(佛性과 開示悟入 斷想).

碧 珍(日德 靑竹) 2019. 6. 16. 18:26

 

불성과 개시오입 단상(佛性과 開示悟入 斷想).

 

 

 

 

이따금 읽거나 듣는불성(佛性)’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모든 중생이 본디 가지고 있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을 뜻하며, 부처의 본성을 뜻하는 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개시오입(開示悟入)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부처가 이 세상에 태어난 네 가지 의미로 진리를 열고, 보여 주고, 깨닫게 하고, 그 길에 들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

모든 중생은 佛性을 지니고 있어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이 사상은 원시불교(原始佛敎)의 가르침에서 유래한 것이다.열반경(涅槃經)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불성을 지니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고 명시한 최초의 대승경전이다. 부파불교(部派佛敎)시대까지는 부처와 보살만이 成佛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5세기경의 인도의 승려 바수반두(世親)의佛性論에 의하면 중생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진 불성은 없지만 후천적인 수행에 의한 불성은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실유불성(悉有佛性); 중생에게는 누구나 다 부처가 될 본성이 있다는 말.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러 보살과 부처의 개념이 일반화되면서 중생의 성불이 어떻게 가능한가가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이에 따라 佛性論도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중국과 한국에서 성립된 여러 종파에서 불성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禪宗에서는 佛性의 有無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본래면목을 깨달음으로써 見性成佛 할 것을 가르쳤었다. *견성성불(見性成佛); 자기가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을 깨달아 부처가 됨.

 

불성(佛性 buddha-dhatu)이란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일지라도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며불종성(佛種性)이라고도 하며, 또한 범어 buddha-bhatu 또는 gotra의 번역으로여래성(如來性)또는각성(覺性)이라 한다. 즉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근본 성품. 미혹이나 깨달음에 의하여 변하는 일 없이 본래부터 중생에게 갖추어져 있는 근본 성품이다. 이러한 불성사상은 중생의 마음은 번뇌의 때에 가리어져 있지만 본래 맑고 깨끗하다는 원시불교의 교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람에게는 佛性이 있기 때문에 부처가 될 수 있고 불교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성에 대한 연구는 우리나라의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에서 다 같이 연구되고 중요시되었던 근본 명제가 되었다.

 

마음의 본성은 청정하고 번뇌는 객진(客塵)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데서 발단된 불성사상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부처의 씨앗,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에 서 있다. 사후에 윤회(輪廻)하는 여섯 개의 세상, 즉 육도(六道)를 내왕하는 인간에게는 윤회에 얽매인 부자유의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유롭게 깨달은 중생의 길을 택할 수 있고 그들 스스로가 깨달음의 세계로 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중생에게 갖추어져 있는데 그것을 불성이라고 보는 것으로, 불성 속에는 아직은 감추어져 있지만 좋은 인연과 실천수행을 통해서 자기를 완성하고 남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훌륭한 공덕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佛性이 없으면 부처는 존재하지 못한다. 불성은 여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에게 한 결 같이 갖추어져 있으며,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기 때문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뚜렷한 명제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 佛性思想이다. 즉 불성사상은 바로 이러한 부처의 지혜와 자비 그리고 중생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실을 한다.

 

전통적으로 불성은 二佛性. 三佛性. 三身佛性. 五佛性 등으로 분류되었다. 二佛性은 법상종(法相宗)의 분류방법으로 이불성(理佛性)과 행불성(行佛性)으로 나누어진다. 이불성은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의 체(體)에 해당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의 묘리를 말하며, 행불성은 이불성을 개발하는 행업(行業)으로서, 모든 중생에게 이불성이 다 갖추어져 있는 것과는 달리 행불성은 성(成)과 불성(不成)의 구분이 뒤따른다. 三身佛性은 삼인불성(三因佛性)이라고도 하는데, 정인(正因). 요인(了因). 연인(緣因) 불성(佛性)으로 분류된다.

 

천태종에서 주장하는 삼인불성에다가 과불성(果佛性)과 과과불성(果果佛性)을 더한 것이 五佛性이다. 이 중 과불성은 수행한 결과로 얻는 보리(菩提)의 지덕(智德)이며, 과과불성은 온갖 번뇌를 모두 끊고 대자재를 얻는 열반의 덕(德)이다.

 

(2).

개시오입(開示悟入)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한 근본적인 목적 4가지를 제자 舍利弗에게 설명한 내용으로묘법연화경 방편품(妙法蓮華經 方便品)에 있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법문을 개시하여 불교의 깊은 이치를 깨닫게 한다는 뜻으로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한 근본적인 목적 4가지 일을 말하는 것이다.

 

개시오입(開示悟入)이란,개(開)는 佛法을 펼치신 것으로 부처님의 지견을 연다(開)는 뜻은 우리에게도 본래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正因)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시(示)라는 것은 보여준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지견을 보여준다(示)는 뜻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조그만 자기에 얽매여 탐낸다든가 미워한다든가 하는 그러한 삼독(三毒)의 마음을 버리게 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의 존귀함을 알게 하는 것이다.

 

오(悟)는 깨닫다 는 뜻으로 부처님의 知見을 깨닫게(悟)한다는 것이다. 깨닫게 한다는 뜻은 노력하기를 권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심을 일으켜서 발분하는 것인입(入)이라고 하는 것은 들어간다는 뜻으로 깨달았으면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즉 우리를 인도하여서 成佛이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니 불퇴전의 보살행을 쌓아서 마침내 성불할 때까지 꾸준히 노력하도록 가르치시는 것이다. 분발(發奮)하여 노력해야만 우리의 불성(緣因)이 발휘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즉 開示悟入은 중생(衆生)들을 열반(涅槃)의 길로 인도 한다는 뜻으로, 개(開)는 불법을 펼치신 것이고. 시(示)라는 것은 보여준다는 뜻으로 묘법의 공덕을 실증(實證)하여 중생들에게 보여주신 것이고. 오(悟)는 깨닫다 는 뜻이고, 입(入)이라고 하는 것은 들어간다는 뜻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완전히 묘법(妙法)을 체득하게 하여 깨달음의 세계로 들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께서는 중생(衆生)들에게 佛法을 열어 보이시고, 法을 통해 眞理를 보게 하시고, 중생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으로 이것을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고 하며, 이는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은 중생들로 하여금 고통의 윤회(輪廻)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에 중생은 부처님의 이런 뜻을 확실히 알고 철저히 믿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확실히 믿는 마음이라야 선업(善業)을 지을 수 있는 것이고 선(善)한 마음이라야만 참 나를 볼 수 있는 것이고, 참 나를 볼 수 있어야만 저 피안(彼岸)의 세계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잘못 믿으면 사도로 가는 수가 있다, 사도(邪道)라고 하는 것은 헛된 것이고 망상이고 허망한 것이어서 진리를 구할 수 없고, 사도를 믿는 자는 결국에는 천길 나락(奈落)으로 떨어지게 되므로 반드시 정도(定度)를 가야만 진리를 구하고 견성(見性)을 할 수 있는 것이다.

 

(3). 삼인불성(三因佛性)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佛性이 있는데, 佛性은 삼인불성(三因佛性)이라고 하여 정인불성(正因佛性), 요인불성(了因佛性), 연인불성(緣因佛性)의 3가지로 나누어진다.정인불성(正因佛性)이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갖추고 있는 성질로 敎나 道의 가르침을 전혀 몰라도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식을 위하여 자신을 무조건 희생하는 것과 같은 父性이나 母性 등과 같은 희생하는 마음인 우리 인간의 本性을 말한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버리고 타인의 기쁨을 자기의 기쁨으로 삼으며, 타인의 괴로움을 자기의 괴로움으로 삼는 이러한 귀중한 성품은 누구에게나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것으로 단지 그러한 本性을 발휘하느냐 않느냐의 하는 것이 문제이다.

 

요인불성(了因佛性)이란 이러한 사람의 本性은 그대로 내버려두면 좀처럼 발달하지 않으므로 本性을 개발하기 위하여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양(修養)하여 우리의 佛性을 가꾸어나가야 한다.연인불성(緣因佛性)이란 일상의 배움과 근행과 기도 속에서 우리의 불성을 꾸준히 키워나감으로서 비로소 成佛의 인연(因緣)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나, 因緣에 의하여 실제로 행하여보고 그리하여 그것을 완전히 파악하여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만 하여서는 佛性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기에 실제로 행하여 보아야 완전한 자기의 것으로 할 수 있다.

 

그러기에정인(正因)이란 태어나면서부터 갖추고 있는 것이고,요인(了因)은 배움으로서 그 불성이 발휘된다는 것이며,연인(緣因)은 일상생활의 실행을 통하여서 자기의 것으로 하여 나간다는 것으로 이 3가지는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편의상 3가지로 나눈 것일 뿐 그 근본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생에게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이 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일대사 인연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우리도 成佛할 수 있음을 개시오입(開示悟入)하신 것이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알고, 배우고, 깨닫고, 수양하도록 함으로서 成佛의 길로 들어서게 격려하는 것 바로 이것이 부처님의 一大事因緣이고 開示悟入의 目的인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지혜로서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쳐주시어 우리의 佛性(了因)을 가꾸어나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배우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으며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4).

천태종(天台宗)에서는 개시오입(開示悟入)을 교(敎), 행(行), 인(人), 리(理)로 해석하여 부처의 깨닫는 것, 즉 지견(知見)에 이르는 正道를 보여주는 중요한 법문(法文)이라고 말하며, 또 법화문구(法華文句) 권4에서는 개시오입을 4지(知), 4문(門), 4위(位), 관심(觀心)의 4류(類)로 분류 해석하기도 하였다. 이는 법화경 방편품제이(法華經 方便品第二)에 있는 광개삼현일(廣開三顯一)의 글로 그 경문(經文)은 다음과 같다.

 

광개삼현일(廣開三顯一)이란널리 삼(三)을 열어서 일(一)을 나타낸다’, 널리 성문과 연각과 보살의 삼승을 열어서 일불승(一佛乘)을 드러내는 법화경의 이치를 말함이다. 법화경(法華經)에서 이승작불(二乘作佛)을 밝히고, 널리 일승(一乘)의 교법(敎法)을 열어서 一佛乘의 哲理를 나타낸 것으로, 법운(法雲)의 법화의기권이(法華義義記卷二), 천태(天台)의 법화문구권삼하(法華文句卷三下)등에 있다.

 

    所以者何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소이자하 제불세존 유이일대사인연고 출현어세),

     / 어찌하여 그러한고? 모든 부처님께서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하여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 

 

    舍利弗 云何名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사리불 운하명 제불세존 유이일대사인연고 출현어세)

     / 사리불아,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 세존이 오직 일대사 인연으로 하여 세상에 출현하신다 하는고.

 

    諸佛世尊 欲令衆生 開佛知見 使得淸淨故 出現於世(제불세존 욕령중생 개불지견 사득청정고 출현어세)

     / 모든 부처님 세존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어 주사 청정함을 얻게 하고자 세상에 출현하시며(開),

 

    欲示衆生 佛之知見故 出現於世(욕시중생 불지지견고 출현어세)

     / 중생에게 부처님 지견(知見)을 보여 주고자 세상에 출현하시며(示),

 

    欲令衆生 悟佛知見故 出現於世(욕령중생 오불지견고 출현어세)

     /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 지견을 깨닫게 하고자 세상에 출현하시며(悟),

 

    欲令衆生 入佛知見道故 出現於世(욕령중생 입불지견도고 출현어세)

     /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도(知見道)에 들여놓고자(入)하므로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

 

    舍利弗 是爲諸佛 唯以 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사리불 시위제불 유이 일대사인연고 출현어세)

     / 사리불아,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서 오직 일대사 인연으로 하여 세상에 출현 하신다고 함이니라.

 

이를 풀어보면, 개시오입(開示悟入)의 四佛知見은 衆生이 원래 가지고 있는 佛界를 개발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개삼현일(開三顯一)이 되는 것이다. 知見이란 佛界를 지견하고 각지(覺知)하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체득(體得)하는 것이다. 개시오입(開示梧入)은 부처의 염원(念願)이며, 그 근본은 三大秘法의 어본존(御本尊)이 되며, 또한 信心에 의해서만이 개시오입(開示梧入)할 수가 있는 것이다.

 

불지견(佛知見)이란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진리를 남김없이 깨달아 조견하는 부처님의 지혜를 말한다, 이지(二智) 가운데 일체종지(一切種智)의 用이 되므로 지체(智體)에 대한 知라 한 것이고, 오안(五眼) 가운데 佛眼의 用이 되므로 眼에 대한 見이라 한 것이다. 佛知見에는 개시오입(開. 示. 悟. 入)의 次第가 있으니, 처음의 십주위(十住位)에서 1分의 無明을 끊고 少分의 知見을 얻음으로 개불지견(開佛知見)이라 하며, 내지 十地에 이르러 知見이 원명(圓明)하게 되는 것을 入佛知見이라 한다.

 

개삼현일(開三顯一)이란 開三의은 성문, 연각, 보살의 셋을 뜻하며, 소승의 낮은 교만으로 깨달음을 연 성문과 연각, 그리고 대승의 수행을 하고 있는 보살, 이 세 가지는 결국은 하나의 부처님이 될 것이다 하는 것이셋을 열어서 하나를 나타낸다(開三顯一)는 것이다.개(開)란 그것을 해부해서 자세히 구명하는 것이니 그 성문, 연각은 낮은 수행이 결국은 부처님이 되는 큰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임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개삼현일의 사상이다.

 

법화경 방편품제이(法華經 方便品第二)에는 개시오입에 대해서는 어의구전상(御義口傳上)에 개불지견(開佛知見)의 開란 信心의 이명(異名)이며, 시불지견(示佛知見)이란 示의 南無妙法蓮華經(나무묘법연화경)을 나타내고, 오불지견(悟佛知見)의 悟란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깨닫는 것이며, 입불지견(入佛知見)의 入이란 깨달은 당체(當體)가 직지도량(直至道場)으로 된다는 것 등 상세한 해석하고 있다.

 

이글을 쓰다 보니 二乘作佛과 開三顯一의 思想은 方便品에 있어서 확실하게 나타나 있는 思想, 다시 말하면 法華經의 전반을 일관하여 있는 사상이란 것이다. 되돌아보니 佛敎란 오직 그 目的이 하나. 나도 너도 다같이自他一時成佛道즉, 法界의 모든 중생들, 나도 남도 다 함께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루어 自身도 他人도 일시에 부처의 길(佛道)를 성취하는 것이 불교의 궁극 목표인 것이다.

 

 

* 追言.

이 글은 法華經으로 깨치신 여러분들이 쓴 글에서 발췌하고 참고하였으며, 더불어 韓國(嶺南)佛敎大學. 大觀音寺 會主이신 無一 又學(우학)스님 著, 경전.조사어록 시리즈 5권法華經(妙法蓮華經 第二 方便品)참조하였습니다.